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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벨기에를 떠도는 방랑자 (Vagabundo en Francia y Bélgica)


이 단편 역시 <서울생활>에 싣게 됐는데, 세 편으로 나눈 것을 하나로 묶고 가독 편의상 한 줄씩 띄움. (그나저나 원제의 "vagabundo"를 링크된 곳 이미지 상에는 "vegabundo"라고 했군.)


1편 / 2편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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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가 프랑스에 입성했다. 그는 이곳을 돌아다니고 가진 돈을 탕진하며 5개월을 보낸다. 희생적인 의식, 의미 없는 행동, 피로. 가끔씩 메모는 하지만 글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읽기만 한다. 무엇을 읽는가? 프랑스어로 된 경찰 소설. 프랑스어를 잘 모르지만, 그 때문에 소설이 더욱 흥미로워질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않아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챈다. 한편 프랑스는 스페인보다 덜 위험하다. B는 위험 수치가 낮은 지역에 있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B가 프랑스에 왔을 때 돈이 있었던 이유는, 출판사에서 아직 출간하지 않은 책의 인세를 미리 받았기 때문이다. 받은 돈의 60%를 아들 통장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그는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다. B는 바르셀로나에서 페르피냥 행 열차를 탔다. 30분 동안 페르피냥 역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파악했다. 그러고 나서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고 영국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 오후가 되어 그는 파리 행 직행 열차를 탔다.


  파리에서 B는 생-자크Saint-Jacques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숙박한다. 첫째 날엔 룩셈부르크 공원을 방문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후 생-자크 거리를 돌아다니고 저렴한 식당을 찾아내 거기서 식사를 한다.


  둘째 날, 소설 읽기를 끝내고 나서(소설에서 범인은 노인 병원에서 지내는데 그건 루이스 캐롤을 반영한 것 같다) 그는 헌책방을 돌아다닌다. 비외 콜롱비에Vieux Colombier 거리에 있는 헌책방에서 잡지 <루나 파크Luna Park> 2호를 발견한다. 그래픽 디자인(혹은 서기법) 특집 버전이었고, 로베르토 알트만, 프레데릭 발, 롤랑 바르트, 자크 칼론, 칼프리드리히 클라우스, 미르샤 데르미사체, 크리스티안 도트레몽, 피에르 기요타, 브라이옹 기쟁, 앙리 르페브르, 소피 포돌스키의 텍스트와 디자인(텍스트는 디자인이고 디자인 또한 텍스트이다)이 수록되어 있다.


  잡지는 1년에 세 번 나오거나 나왔는데, 마크 다치의 주도로 시작되었고, 브뤼셀에 있는 트랑세디씨옹TRANSédITION 출판사에서 – 앙리 반 주일렌Henry van Zuylen 거리에 사무실이 있거나 있었다 – 59호까지 출간했다. 로베르토 알트만이 유명한 아티스트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누가 로베르토 알트만을 기억할까? B는 생각한다. 칼프리드리히 클라우스도 마찬가지다. 피에르 기요타는 주목할 만한 소설가였다. 하지만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B는 기요타처럼 되고 싶었다. 한때, B가 젊은 시절에, 기요타의 작품을 읽던 시절에. 대머리에 힘이 센 기요타. 다락방의 어두운 곳에서 무엇이든 먹을 준비를 하는 기요타. 미르샤 데르미사체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게 없지만, 그녀의 이름은 뭔가를 떠오르게 한다. 아마도 아름다운 여자, 거의 확실하게 우아한 여자라는 점을. 소피 포돌스키는 그와 그의 친구 L이 이미 멕시코 시절부터 소중히 생각하는(심지어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이었다. B와 L이 멕시코에 살 때 그들은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였다. 롤랑 바르트는, 그렇지, 전 세계 사람들이 롤랑 바르트가 누구인지 안다. 도트레몽에 대해서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게 있다. 아마 예전에 잃어버린 시 선집에서 그의 시를 몇 개 읽었던 것 같다. 브라이옹 기쟁은 버로스의 친구였다. 버로스는 기생에게 컷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앙리 르페브르. B는 르페브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유일하지만 르페브르의 이름은 그 헌책방에서, 마치 어두운 방에서 빛나는 성냥처럼, 밝게 빛난다. 최소한 B는 그런 식으로 느낀다. B로서는 횃불처럼 빛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두운 방이 아니라 동굴. 하지만 분명한 건 르페브르가, 르페브르라는 이름이, 다른 식으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짧게 빛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B는 그 잡지를 구입한다. 그리고 파리 거리에서 길을 헤맨다. 길을 헤매면서 몇 날 며칠을 지내려고 갔던 곳이다. 비록 그렇게 헤매는 동안 B에게는 태양빛의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잡지 루나 파크가 든 검은 비닐 봉지를 손에 덜렁덜렁 들고 거리를 걸을 때면 그런 이미지는 폐색된다. 마치 그 오래된 잡지(물론 잘 편집되었고, 헌책방에서 쌓인 먼지와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거의 새것처럼 보존되었다)가 그런 일식 상태를 야기하고 만들어낸 것처럼. B는 그 일식이 앙리 르페브르라는 것을 안다. 일식은 앙리 르페브르와 문학 사이의 관계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다. 일식은 르페브르와 글쓰기 사이의 관계다.


  오랜 시간 정처 없이 돌아다닌 후 B는 자신의 호텔로 돌아온다. 기분이 좋다. 휴식을 취한 것 같고 책을 읽고 싶어 한다. 바로 전, 루이 16세 광장의 벤치에서 공연히 르페브르의 그래픽을 해독해보려 했다. 그 문양은 난해해 보인다. 르페브르는 자신의 글자를 마치 풀잎이 흔들리는 것처럼 그린다. 글자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풀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목초지, 흩날리는 솔방울. 그것들을 관찰하면서(왜냐하면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이 그 글자들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B는 마치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청소년기, 남반구에서,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네잎클로버를 찾아다녔던, 사라진 시골 마을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서, 이 기억은 어쩌면 진짜 삶이 아니라, 실제로 어느 영화에서 봤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앙리 르페브르의 삶은 단순하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는 1925년 마스뉘 생-장Masnuy Saint-Jean에서 태어나 1973년 브뤼셀에서 죽었다. 즉, 칠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해에 죽은 것이다. B는 1973년을 기억해보려 하지만 무용한 일이다. 그는 너무 많이 걸었고, 비록 쉬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피곤한 상태이기에,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B는 잠을 잘 수 없어서 뭔가 먹으러 나간다. 옷을 입고(그는 옷을 벗고 있었다. 비록 언제 옷을 벗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머리를 빗고 거리로 나간다. 에콜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가 앉은 테이블 옆에는 역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마주보며 웃었고, 함께 밖으로 나온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그녀를 초대한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말을 하고 B는 마치 커튼을 통해 그녀를 보는 것처럼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여자는 중구난방으로 말을 한다.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 뜨개질을 하는 노인, 구름의 움직임, 그리고 소음 – 물리학자에 의하면, 외부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소음이다. 소음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녀가 말한다, 죽음마저 소리가 없대요. 어느 순간, B는 대화를 계속하고자,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자신이 창녀라고 답한다. 아, 좋네요, B는 말한다. 하지만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한 것이다. 실제로는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여자는 결국 잠이 들었고, B는 <루나 파크>를 찾는다. 잡지는 침대 아래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다. 그는 앙리 르페브르를 읽는다. 그는 1925년에 태어나 1973년에 죽었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녹음이 짙은 벨기에의 시골 마을이었다. 이후 그의 아버지가 죽는다. 그의 어머니 줄리아 니스는 그가 18살에 재혼한다. 유쾌한 사람이었던 그의 의붓아버지는 그를 반 고흐라고 부른다. 반 고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당연하게도, 자신의 의붓아들을 놀리기 위해서였다. 르페브르는 독립하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함께 지낼 것이다. 그녀가 죽는 1973년 6월까지.


  어머니가 죽고 이삼 일 후 앙리의 시체가 그의 책상 옆에서 발견된다. 죽음의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 B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거리를 주시한다. 르페브르의 죽음 이후 15킬로그램의 원고와 그림이 남았다. 그의 자기작품목록에는 짧은 메모가 남아 있다. “출간할 만한” 텍스트는 별로 없다Trés peu de textes “publiables”. 사실상 르페브르는 생전에 “앙드레 뒤 부셰 시의 위상Phases de la Poésie d’Anderé du Bouchet”이라는 제목의 작업물만을 출간했을 뿐이다. 앙리 드마스뉘Henri Demasnuy라는 필명으로, 1962년 3월, 신테세스Synthèses 190호에. B는 르페브르가 드 마스뉘de Masnuy 생-장 마을에 있는 것을 상상한다. 16살이었던 그를 상상한다. 두 명뿐인 독일 군인들이 독일 군용 트럭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편지를 읽고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앙리 드마스뉘, 마스니의 앙리. B가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나 가야 해요, 그녀가 말한다, 그를 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며. 여기 있어도 돼, B가 별 기대 없이 말한다. 여자는 알겠다고도 안 된다고도 말하지 않지만 얼마 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이틀 동안 B는 파리 거리를 배회하기로 작심한다. 이따금 박물관 입구까지 가기는 하지만 절대 입장하지는 않는다. 어쩔 때는 영화관 입구까지 가서 오랫동안 영화 포스터를 살펴보고는 그대로 가버린다. 뒤적거리던 책을 구입해서는 절대 끝까지 읽지 않는다. 잘 모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랜 시간 식후 타임을 즐긴다. 파리가 아니라 시골 마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담배를 피우고 카모마일 차를 마시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만한 것도 없으면서.


  어느 날 아침, 두어 시간 자고 나서 B는 브뤼셀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곳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칠레 망명자 남자와 우간다 출신 여자의 흑인 딸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는 않기로 한다. 몇 시간 동안 브뤼셀 중심가를 돌아다닌 후 북부 지역을 향해 걸어간다. 호텔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거리에 자그마한 호텔이 나타날 때까지. 호텔 옆에는 메마른 땅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는데, 그 안에는 쓰레기와 함께 잡초가 자라고 있다. 맞은편에는 폭탄에 맞은 듯한 집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대부분 빈 집이다. 일부는 유리창이 깨져 있고 창닫개는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마치 바람이 그렇게 해놓은 것처럼. 하지만 이 거리엔 바람이 거의 없잖아, 자신의 방 창으로 밖을 내다보던 B는 생각한다. 또한 생각한다. 차를 한 대 빌려야겠어. 또 다시 생각한다. 운전을 할 줄 모르잖아. 이튿날 그는 친구를 보러 간다. 그녀의 이름은 M이고 현재 혼자 살고 있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만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신발은 벗고 있다. 그를 보고는 처음 몇 초 동안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내려 애쓴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녀는 B가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


  잠시 망설이다가 B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스페인어로 말한다. B라고 해. 그제야 M은 그를 기억해내고 미소 짓는다. 비록 그를 보게 되어 즐거워서 짓는 미소가 아니라 복잡함이 담긴 미소이기는 하지만. B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그녀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그가 뜻밖의 즐거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그런 복잡함이 담긴 미소였다. 어쨌거나 그를 집으로 들이고 마실거리를 대접한다. 얼마 동안 그들은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눈다. B가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그녀의 학업에 대해, 벨기에에서의 삶에 대해 묻는다. M은 비껴가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B의 건강이 어떤지, 책은 잘 나가는지, 스페인에서 잘 살고 있는지 묻는 방식으로 질문에 대답한다.


  마침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다. M은 그 침묵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스물다섯 즈음으로 키가 크고 날씬하다. 그녀의 눈은 녹색으로 그녀의 아버지의 눈 색깔을 쏙 빼닮았다. 심지어 M의 기미 또한, 아주 눈에 띄는데, 칠레 망명자인 아버지의 기미와 비슷하다. B는 오래 전에 그녀의 아버지와 만났다. 얼마나 오래 전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M이 두세 살이거나 그 무렵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간다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학위를 이수하지는 못했다), 친구들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돈 없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했다.


  잠시 동안 그는 이 세 명, M의 아버지와 M의 어머니와 두세 살 무렵의 M을 상상한다. 녹색 눈을 하고, 흔들리는 현수교에 에워싸인 그들을. 사실 그녀의 아버지와 아주 친하게 지낸 적은 없어, B는 생각한다. 실제로는 현수교도 없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녀의 집에서 나오기 전에 그는 자신이 머무는 호텔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날 밤 그는 어떤 여자를 찾으며 브뤼셀 중심가를 걸어다닌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이라고는 유령 같은 사람들, 마치 퇴근 시간이 미뤄진 듯한 관료와 은행 직원들뿐이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문을 열어줄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문지기는 젊고 마른 남자다. B는 그에게 팁을 주고 나서 어두운 계단을 따라 방으로 올라간다.


  이튿날 아침 M의 전화 소리에 잠을 깬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고 한다. 어디에서? B가 묻는다. 어디서든요, M이 말한다,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 어디든 가요. 옷을 입으면서 B는 르페브르의 어머니인 줄리아 니스를 생각한다. 그녀는 아들의 마지막 텍스트 일부에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여기에서 살았어, B는 생각한다, 브뤼셀에서, 이 지역의 어떤 집에서 살았어. 갑자기 일진광풍이 그의 머릿속을 가로지르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마을의 집들을 흐릿하게 만든다. 면도를 하고 나서 B는 창문 밖으로 이웃한 건물을 관찰한다. 전부 어제와 같다. 거리를 걷는 중년 여자는, 아마도 B보다 고작 몇 살 정도가 많아 보이는데, 텅 빈 쇼핑 카트를 끌고 있다. 몇 미터 앞에는 개 한 마리가 주둥이를 치켜든 채 멈춰서서 저금통 투입구 같은 째진 눈을 호텔 창문에 고정하고 있는데, 그 창문에서 아마 B가 그 개를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전부 어제와 같아, 하얀 셔츠에 검은 재킷과 검은 바지를 입으며 B는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M을 기다리러 호텔 로비로 내려간다.


  이게 뭐라고 생각해? 차에 올라, <루나 파크>에 있는 르페브르의 페이지를 가리키며 B가 M에게 묻는다. 포도송이 같은데요, M이 말한다. 뭐가 쓰여 있는지 알겠어? 아니오, M이 말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르페브르의 글자를 보더니 말한다. 어쩌면,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날 아침, 존재에 대해 말한 사람은, 사실 M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잘못의 연속이었다고, 굉장히 아팠다고 이야기한다(어디가 아팠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뉴욕으로의 여행은 지옥으로의 여행과 유사하다고 털어놓는다. M은 프랑스어가 섞인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얼굴은 긴 대화 시간 내내 무표정함을 지속한다. 이따금씩 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자신에게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어떤 것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서로군, B는 생각한다.


  둘은 로리앙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카페는 노틀담 이마쿨레의 교회 근처에 있고, 교회는 M이 잘 아는 듯한데, 마치 최근에 카톨릭으로 개종한 듯하다. 그 후 그녀는 자연 과학 박물관에 가자고 말한다. 박물관은 레오폴도 공원과 유럽 의회 옆에 있는데, B에게는 그것이 왠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근데 왜 모순적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M이 한마디 한다. 집에 가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해요. B는 어떤 박물관도 구경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M은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M에게 그 말을 하자 M은 폭소를 터뜨린다. 약에 취한 사람 같아, M이 말한다.


  M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B는 의자에 앉아 <루나 파크>들 되작거리지만 곧 지루해한다. <루나 파크>와 M의 작은 집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사진과 그림을 열중해서 보고, 이후 거실에 있는 유일한 책장을 본다. 책장엔 책이 많지 않고, 그나마도 스페인어 책은 별로 없다. 그중에서 M의 아버지의 책을 알아본다. 단언컨대 M은 결코 읽지 않을 책들. 정치 평론 몇 권, 쿠데타의 역사 한 권, 마푸체 부족에 대한 책 한 권. 이 책들을 보며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가벼운 떨림이 동반된다. 부드럽다고도, 또는 메스껍다고도, 혹은 어떤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징후라고도 할 수 있는 떨림이다. 곧 M이 거실에 나타난다, 아니, 차라리 거실을 통과한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그녀의 방에서 화장실이 틀림없는 문까지, 어쩌면 옷이 널려 있는 세탁실까지. B는 그녀가 반쯤 입은 상태거나 반쯤 벗은 상태로 거실을 가로지르는 걸 지켜본다. 이 장면에 더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래된 책들이, B로서는 어떤 신호처럼 느껴진다. 근데 어떤 신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름 끼치는 신호다.


  아파트에서 나왔을 때 M은 어두운 색 치마와 윗 단추가 몇 개 끌러진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무릎까지 오는 몸에 꽉 들어맞는 치마에, 가슴골이 보이는 블라우스다. 그리고 하이힐을 신어 B보다 최소한 2센티미터는 크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M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고, 차를 세우지 않은 채 어떤 건물의 정면을 가리킨다. 다섯 블럭 이상을 지나서야 B는 M의 어머니에 대해 이해한다. 그녀는 칠레인 망명자이자 과부이며, M이 가리켰던 건물에 살고 있다. M의 어머니에 대해 묻는 대신, 그가 원했던 대로, 자연 과학 같은 테마의 박물관에 가는 일엔 흥미가 없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가 좀 얄미워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미미하고, 박물관까지 M에게 계속 끌려간다.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무심한 기운 같은 것이 사라지지는 않다.


  거기서 더욱 놀라운 것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M은 B에게 입장료를 건넨 후 카페에서 그를 기다린다. 카푸치노 앞에 둔 신문을 읽으며, 우아하면서 동시에 고독해 보이는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다. (그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B는 그 모습을 보며 진실하다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어떤 나이듦을 느낀다. 이후 B는 로비로 들어가 어떤 전시관까지 가는데, 거기엔 물결 모양의 기계가 있다. M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B는 자리에 앉으며 생각한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린다. 가슴에 미세한 통증이 인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여기서는 피울 수 없다. 통증은 조금씩 더 커진다. B는 눈을 감는다. 기계의 실루엣은 가슴의 통증처럼 계속 움직인다. 이 기계는 기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이해할 수 없는 조각상 같다. 무를 향해 나아가는, 웃으면서 괴로워하는 인류의 행진 같다.


  박물관의 카페에 돌아왔을 때 M은 계속 다리를 꼬고 앉아 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신문을 보고 있다. 아마 구직 섹션일 것이다. B가 나타나자 M은 감추듯 신문을 덮는다. 베기네스Bégines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둘은 함께 식사한다. M은 음식에 입을 거의 대지 않는다. 말도 별로 없다.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함께 묘지에 가자는 것이다. 나 이 동네 자주 와요, 그녀가 말한다. B는 그녀를 보며 묘지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식당에서 나왔을 때, 묘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M은 대답하지 않는다. 차에 오르고 3분도 안 되어 그녀는 손으로(B가 보기엔 가늘고 우아한 손이다) 뒤 카레벨트Du Karreveld 성, 데몰렌베크Demolenbeek 묘지, 테니스 코트가 있는 스포츠 센터를 가리킨다. B는 웃는다. 그와 반대로 M의 얼굴은 여전히 냉담하게 굳어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웃고 있을 거야, B는 생각한다.


  오늘 밤엔 뭐할 거예요? 다시 호텔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묻는다. 글쎄, B가 말한다, 책을 읽겠지, 아마도. 잠깐 동안 B는, M이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날 밤 실제로 B는, 파리에 내팽개치고 오지 않은 소설들 중 하나를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덮어버리고는 침대 다리 쪽으로 책을 던져버린다. 그는 호텔에서 나온다. 한참 동안 목적지 없이 걷고 나서 유색 인종이 많은 지역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는 순간이고, 그 거리를 걸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다. 유색 인종이라는 말은 그가 결코 좋아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럼 어째서 그런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걸까? 흑인, 아시아인, 마그렙인, 이런 말은 괜찮아, 하지만 유색 인종은 아니잖아, 그는 생각한다. 잠시 후 그는 탑리스 바에 들어간다. 카밀레 차를 주문한다. 여자 종업원이 그를 보고 웃는다. 서른 살쯤 된 예쁜 여자로 금발에 키가 크다. B도 그녀를 보고 웃는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그는 웃으며 말한다. 여자가 카모마일 차를 그에게 내민다. 그날 밤 B는 흑인 여자와 잠을 잔다. 그 여자는 잠꼬대를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B가 기억하기로 원래 부드럽고 운율감이 있었지만, 잠꼬대를 하는 동안 걸걸하고 다급한 느낌이다. 마치 (B로서는 알 수 없는) 밤의 어느 순간에 여자의 성대가 변해버린 것 같다. 사실상 그를 깨운 것은 그 목소리다. 그에게는 마치 망치질하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여자가 단지 잠꼬대를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팔꿈치에 머리를 베고 잠시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가 그녀를 깨워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슨 꿈 꿨어? 그녀에게 묻는다. 여자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꿨다고 대답한다. 죽은 사람들은 평온하지, B는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생각한다. 여자는 마치 그의 생각을 곱씹어보는 듯하다가, 세상에 평온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반론한다. 지금 시대에도 없고, 아무튼 아무도 없어요, 여자는 확신에 가득차서 말한다. B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 대신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는 혼자다. 아침 식사를 거른다. 방에서 나가지 않고 책을 읽기로 마음먹는다. 청소 담당자가 침대 시트를 갈아줄지 물어보러 올 때까지 책을 읽는다. 로비에 앉아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M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은 뭐할 거냐고 묻는다. B가 뭐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M이 호텔로 그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날, B가 짐작한 것처럼, 그들은 다른 박물관에 들렀다가 어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식당 옆에는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아이들과 청소년들 여럿이 모여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여기에 얼마나 있을 거예요? M이 묻는다. 내일 떠날 생각이라고 B는 대답한다. 마스뉘 생-장으로 갈 거야, M이 어디로 갈지 묻기도 전에 그가 말한다. M은 그 지역이 벨기에의 어디쯤에 있는지 아는 바가 없다. 나도 몰라, B가 말한다. 많이 멀지 않으면 제가 차로 태워드릴 수도 있어요, M이 말한다. 거기에 친구는 좀 있어요? B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결국 그들은 호텔 문 앞에서 헤어지고, B는 약국이 보일 때까지 거리를 걷는다. 콘돔을 구입한다. 그러고 나서 전날 밤에 갔던 탑리스 바로 향하지만(그리고 도중에 여러 차례 길을 잃는다) 발견하지 못한다. 이튿날 도로가에 있는 식당에서 M과 아침 식사를 한다. M은 드문드문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슬플 때면, 차에 올라, 목적지를 명확하게 정해두지 않고 운전하기 시작한다. 단지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녀가 말한다, 브레멘에 도착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독일에 있다는 것만 알았죠. 아침에 브뤼셀에서 출발했다는 것만 알았어요. 그리고 이미 밤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했어? 대답을 추측하며 B가 묻는다. 몇 바퀴 돌다가 돌아갔죠, M이 말한다.


  마스뉘 생-장에서 그들은 암소들을 본다. 나무들. 휴경 중인 밭. 석면 시멘트로 된 헛간. 삼 층짜리 집들. B의 요청으로 M은 야채와 우편엽서를 팔고 있는 노파에게 줄리아 니스의 집이 어디인지 묻는다. 노파는 어깨를 으쓱한다. 하지만 그 후 웃음을 터뜨리더니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B는 그 이야기를 차창을 통해 듣는다. M과 노파 둘 다 손으로 제스처를 한다. 마치 시간이나 비에 대해 말하는 것 같군, B는 생각한다. 줄리아 니스의 집은 콜롱비에 거리에 있다. 넓고 손질이 안 된 정원과, 주차용으로 바뀐 캐노피가 있다. 집 벽은 노란 색이다. 오랫동안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잎이 무성해진 나무들이 집의 왼쪽 절반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쪽엔 창문이 없다. 노파가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아, M이 말한다, 이 집일 수도 있지만 다른 집일 수도 있어. B가 벨을 누른다. 집 안쪽에서 종소리 같은 것이 울린다. 잠시 후 15세 정도의 소녀가 나온다. 청바지를 입고 있고 머리는 젖은 상태다. M이 그녀에게, 여기에 줄리아 니스와 그의 아들 앙리가 사는 곳인지 묻는다. 소녀는 여기엔 마르토 씨네가 산다고 말한다. 언제부터? B가 묻는다. 오래 전부터요. 소녀가 말한다. 머리 감고 있었어? M이 묻는다. 염색하고 있었어요. 소녀가 말한다. B가 이해할 수 없는 짤막한 대화가 이어지고, 그러나 어느 순간, 울타리 쪽에서 하이힐을 신고 있는 M과, 맞은편에서 스키니진을 입고 있는 소녀가 어떤 그림의 주요 인물과 유사하게 보인다. 처음엔 평화롭고 조화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그들은 그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야기한다. 시간이 더 흐르고, 북쪽에서 남쪽 마을, 남쪽에서 북쪽 마을을 돌아다닌 후 그들은 도서관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간다. 여기에 마스니의 앙리가 책을 보러 왔을까? 불가능한 것 같은데. 도서관은 새로 만들어졌고 앙리 르페브르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도서관의 사용자임이 틀림없었다. 당신의 그 앙리와 지금 도서관 사이에 최소한 도서관이 두 개 더 있었어요, M이 말한다. 자기 나라의 공공 시설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저녁으로 B는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M은 샐러드를 먹지만 절반 정도를 남긴다. 나는 아저씨 친구가 죽었을 땐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M이 향수 어린 말투로 말한다. 친구는 아니었어, B가 말한다. 하지만 태어나긴 했잖아요, M이 농담조로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여행하고 있었어, B가 말한다.


  그 후, 그들이 식사하고 있는 식당은 텅 비어 창문 옆에 있는 테이블에 그들 둘만이 남아 있다. M은 <루나 파크> 2호를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멈춘다. 그 페이지엔 루나 파크 3호인지 4호인지(4호가 빛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에 실릴 작업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미래의 필자들 목록을 큰 목소리로 읽는다. 장-자크 아브라함스, 피에르트 베르소, 실바노 뷔소티, 윌리암 버로스, 존 케이지에서, 앙리 르페브르, 줄리아 니스와 소피 포돌스키에 이를 때까지. 전부 굉장히 친해진 것 같아요, M이 농담조로 웃으면서 말한다.


  모두 죽은 사람들이군, B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M이 더 이상 자주 웃지 않는 것이 어찌나 아쉬운지.


  넌 웃는 게 아주 예뻐, 그가 말한다. M이 그의 눈을 본다. 지금 저한테 작업거시는 거예요?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나, B가 중얼거린다.


  좀 더 시간이 기울어 그들은 식당에서 나와 차로 돌아간다. 이제 어디로 가요? M이 묻는다. 브뤼셀로 가야지, B가 말한다. M은 잠깐 생각하더니 그건 좋은 생각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국 시동을 켠다. 여기선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잖아, B가 말한다. 이 말은 돌아가는 여정 내내 그를 따라다닌다. 마치 유령 같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처럼.


  브뤼셀에 도착하자 B는 그날 아침에 나왔던 호텔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M에게 그것은 바보 같은 일로 보이는데, 자신의 집에 침대 형 소파가 있음에도 고작 몇 시간을 보내려고 돈을 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M의 집 옆에 정차시킨 채, 잠시 동안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결국 B는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내는 데 동의한다. 이튿날 아침 집에서 일찍 나와, 파리로 가는 첫 번째 열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브라질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채식 전용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새벽 세 시에 문을 닫는 식당이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나가는 손님이 된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M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한다. 잠깐 동안 B는 M이 자신의 전 생애를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M은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해, 뉴욕에 드나들었던 일에 대해, 불면의 나날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연인들이나 이전에 했던 일이나 광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M은 와인을 마시고 B는 이따금 담배를 피운다. 그들은 가끔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차창을 통해 차가 오고가는 것을 쳐다본다. 집에 도착해 M은 B가 침대 형 소파를 펴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B는 옷을 벗지 않은 채 마치 다른 행성의 언어로 쓰인 듯한 소설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그를 깨운 것은 M의 목소리다. 전날 밤의 그 창녀 목소리 같군, B는 생각한다, 잠꼬대를 하던 그 여자. 하지만 일어나서 M의 방으로 가 그녀의 악몽을 깨우고자 하는 의지를 모으기도 전에 그는 다시 잠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 그는 파리 행 열차를 탄다.

 

  생-자크 거리에 있는 호텔의 이전과 다른 방에 짐을 푼다. 초반 며칠 동안 그는 안드레 뒤 부셰의 어떤 책이라도 구해보고자 헌책방을 돌아다닌다. 어떤 책도 찾을 수 없다. 뒤 부셰는, 마스뉘의 앙리와 마찬가지로, 지도에서 사라졌다. 넷째 날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방으로 음식을 올려달라고 하지만 거의 먹지 않는다. 구입한 마지막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휴지통에 집어던진다. 잠을 자고 악몽을 꾸지만, 잠에서 깬 후 잠꼬대를 하지는 않았다고 확신한다. 다음 날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나서, 룩셈부르크 공원에 산책하러 나간다. 지하철을 타고 피갈레Pigalle에서 내린다. 라 브뤼예르La Bruyère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바랭Navarin 거리의 작은 호텔에서 창녀와 잠을 잔다. 그녀는 목덜미 쪽은 머리칼이 아주 짧지만 머리 위쪽은 아주 길다. 그녀는 자신이 4층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녀나 그녀의 친구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섹스를 하면서 여자는 농담을 던진다. B가 웃는다. 그 또한, 엉망진창의 프랑스어로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농담을 건넨다. 볼일이 끝나고 여자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B에게 샤워를 하고 싶은지 묻는다. B는 아니라고, 아침에 이미 샤워를 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그녀가 어떻게 샤워하는지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다.


  놀랄 것도 없이(최소한 그것을 엿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가 어떻게 가발을 벗어 좌변기 뚜껑에 올려두는지 목격한다. 그녀는 거의 빡빡머리였고, 숱이 많은 쪽 두피 위에 상대적으로 최근에 난 상처 두 개가 두드러진다. B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어쩌다 난 상처냐고 그녀에게 묻는다. 여자는 샤워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말을 듣지 못한다. B는 질문을 반복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나가지도 않는다. 의외로, 타일 바닥에 드러누워 샤워 커튼 반대편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바라본다. 평화로우면서도 체념한 상태로. 더 이상 가발도, 좌변기도, 담배를 들고 있는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밖으로 나오자 밤이었고 그들은 헤어진다. 이후 그는 걷기로 마음먹는다.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멈추지도 않는다. 몽마르트르Montmartre 묘지에서 퐁 루아얄까지Pont Royal,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는 길을 걷는다. 호텔에 도착해서 그는 거울을 본다. 두들겨 맞은 개를 보길 바랐지만 그가 본 것은 깡마르고, 산책으로 살짝 땀에 젖은 모습의 중년 남자이다. 그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눈을 찾고, 만나고, 피한다. 이튿날 아침 브뤼셀에 있는 M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나야, B가 말한다. 잘 지내요? M이 묻는다. 괜찮아, B가 말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만났어요? M이 묻는다. 아직 자고 있었던 게 틀림없군, B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말한다. 아니. M이 웃는다. 그녀의 웃음은 예쁘다.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신경 써요?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 묻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람한테 신경을 안 쓰거든, B가 말한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곧장 그는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해. 그리고 생각한다. M은 전화를 끊을 거야. 그는 이를 꽉 깨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의 얼굴에 경련을 일어난다. 하지만 M은 전화를 끊지 않는다.(끝)



* 원본 <Putas asesinas>, EDITORIAL ANAGRAMA,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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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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