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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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 Etcétera

울리세스의 죽음Muerte de Ulises

 

 볼라뇨 15주기

 

 <악의 비밀>에 있는 단편입니다

 

 슬프고 좋은

 

 난 이 말밖엔 못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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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노, 친애하는 우리의 벨라노가 멕시코시티에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있은 지 20년 이상 지났다. 비행기가 멕시코시티 위를 날고 있고, 벨라노는 갑자기 잠에서 깬다. 여행 내내 지속됐던 불쾌감이 더욱 예민해진다.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그는 과달라하라 행 비행기로 환승해야 한다. 거기서 그가 초청 받은 도서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벨라노는 지금 확실하게 명성을 획득한 저자이고 무수한 곳에서 그를 초청하곤 하지만, 그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는다. 이번이 20년 남짓 만에 처음 하는 멕시코 여행이다. 작년에 두 차례 초청을 받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재작년엔 네 차례 초청을 받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3년 전엔 이제는 기억도 안 날 만큼 수차례 초청을 받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시티에 있다. 멕시코시티 공항에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뒤를 따라 걷는다. 그를 과달라하라로 데려다 줄 비행기를 타기 위해 환승 센터로 향한다. 환승 통로는 유리로 된 미로다. 벨라노는 대열의 끄트머리에 있다. 그의 걸음걸이는 갈수록 더 느려지고 더 주저하게 된다. 대기실에, 역시 과달라하라로 가는 젊은 아르헨티나 작가가 얼핏 보인다. 벨라노는 곧장 기둥 뒤로 숨는다. 그 아르헨티나 남자는 신문을 읽고 있다. 아마도 문화면. 도서전에 대한 내용만 있다. 얼마 후, 마치 관찰 당한다는 걸 의식하기라도 한 듯, 그는 고개를 들고 전후좌우 살펴보지만, 벨라노를 보지는 못한 채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잠시 뒤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아르헨티나 남자에게 접근하더니 뒤에서 키스를 한다. 벨라노는 그 여자를 안다. 아르헨티나 남자의 부인으로,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난 멕시코 여자다. 둘은, 아르헨티나 남자와 멕시코 여자는,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고 벨라노는 그들의 친구이다. 멕시코 여자와 아르헨티나 남자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어째서인지 둘은 관찰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벨라노는 그들의 입술 모양을 읽어보려 하지만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기둥 뒤에 숨은 채, 그는 거기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들이 빈틈을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환승 통로에서 빠져나왔을 땐 이미 과달라하라행 비행기 환승구로 향하던 대열은 사라진 상태였고, 점점 안도감이 커져가면서, 벨라노는 깨닫는다. 자신은 과달라하라로 여행가는 데에도 관심이 없고 도서전에 참여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그저 멕시코시티에 머물고 싶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렇게 한다. 그는 출구로 향한다. 여권을 보여주고 잠시 후 공항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탄다.

 

 또 다시 멕시코라니. 그는 생각한다.

 

 택시기사는 그를 바라본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벨라노는 멕시코시티의 택시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히 공항 인근에서의 급습에 대해.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지금 희미해진다. 형씨, 어디로 갑니까? 자기보다 더 젊어 보이는 택시 기사가 묻는다. 벨라노는 그에게 울리세스 리마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주소를 건넨다. 알았습니다, 택시기사는 말하고, 액셀을 밟고, 택시는 도시 내부로 진입한다. 벨라노는 눈을 감는다. 마치 거기 살았을 때 눈을 감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 그는 몹시 피곤하고 그래서 거의 곧바로 다시 눈을 뜬다. 이 도시, 그가 오래 전에 청소년기를 보낸 도시가 그에게 계통 없이 펼쳐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는 생각한다. 비록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날 아침은 묘지의 아침이다. 하늘은 흙빛 노란색이다. 구름은, 남에서 북으로 느리게 이동하는데, 그들이 쪼개지는 순간, 사라진 묘지들처럼 보이고, 회색 하늘의 파편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아무에게도, 심지어 그에게조차도 들리지 않는, 메마른 땅이 마찰하는 소리 속으로 흡수되는데, 그 소리가 그의 두통을 야기하고, 그건 마치 그가 청소년이었을 때, 린다비스타 지역이나 과달루페-테페약 지역에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다.

 

 인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같고, 어쩌면 훨씬 젊겠지만, 어쩌면 그가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걸었을 때 그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겠지만, 사실상 1968년에, 1974년에, 1976년에, 그가 본 얼굴들은 모두 같다. 택시 기사는 대화를 시도하려 하지만 벨라노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마침내 그가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자 자신이 타고 있는 택시만을 본다. 자동차들로 가득한 대로를 미끄러져 가고 있다. 전속력으로. 그러는 동안 다른 택시들은 새치기를 당하고 거기에 탄 손님들은 공포심으로 죽어간다. 공허하게 유사한 행동과 말들. 두려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잠에 빠져든다. 마치 우물 속에 있는 돌멩이처럼.

 

 다 왔습니다. 택시기사가 말한다.

 

 벨라노는 창밖을 본다. 울리세스 리마가 살았던 거리 위에 서 있다.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멕시코에는 처음이십니까? 택시기사가 묻는다. 아니오. 오래 전에 여기 살았었죠. 그가 말한다. 멕시코인입니까? 잔돈을 거슬러주며 택시기사가 묻는다. 어느 정도는. 벨라노가 말한다.

 

 인도 위에 홀로 남겨지자 그는 건물의 정면을 응시한다.

 

 벨라노는 머리 길이가 짧다. 원형 탈모증 덕에 정수리가 훤하다. 더 이상 이 거리를 싸돌아다니던 긴 머리의 젊은이가 아니다. 지금 그는 검은색 가죽 재킷과 회색 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고 마르티넬리 구두를 신고 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작가 컨퍼런스에 초청 받아서 왔다. 그 컨퍼런스에는, 최소한 그의 친구 두 명이 참여한다. 그의 책들은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비록 많이는 아니지만) 읽히고 있고 전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그는 생각한다.

 

 그는 건물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주소록 수첩을 꺼낸다. 울리세스 리마가 살았던 호수의 버튼을 누른다. 세 번의 긴 차임벨 소리.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호수의 버튼을 눌러본다. 어떤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울리세스 리마의 친구입니다. 벨라노가 말한다. 갑자기 연결이 끊긴다. 다른 호수의 버튼을 누른다. 어떤 남자가 누구냐고 소리 친다. 울리세스 리마의 친군데요. 점점 더 흥미를 더해가며 벨라노가 말한다. 지지직 하는 전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벨라노는 3층까지 가기 위에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3층에 다다르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땀이 나기 시작한다. 세 개의 문이 있는 긴 복도는 채광이 좋지 않다. 울리세스는 말년을 여기서 보냈지. 그는 생각한다. 차임벨을 누를 때 그는 헛된 희망이 있었다. 문 반대편에서 그의 친구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이후 그의 친구가 열린 문 틈 사이로 웃는 얼굴을 내밀리라는.

 

 아무도 그의 호출에 대답하지 않는다.

 

 벨라노는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근처, 콰우테목 지역에서, 그는 호텔을 발견한다. 오랫동안 그는 호텔 침대에 앉아 있는다. 멕시코 티비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이제 그가 아는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옛날 프로그램들이 새 프로그램들 속으로 스며들고, 벨라노는 모니터를 통해 로코 발데스Loco Valdés의 얼굴을 본다. 아니면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믿는다. 더 나중에, 채널을 돌리다가, 그는 틴-탄Tin-Tan의 영화를 발견하고 끝날 때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틴-탄은 로코 발데스의 형이었다. 틴-탄은 벨라노가 멕시코에서 살러 왔을 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로코 발데스 또한 이제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자 벨라노는 샤워실에 들어갔고, 이후, 아직 덜 마른 상태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자동 응답기만 있을 뿐. 그러나 벨라노는 아무 메시지도 남기지 않기로 한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옷을 입는다. 창가로 가서 리오 파누코Río Pánuco 거리를 바라본다. 사람도 자동차도 나무도 보이지 않고, 단지 회색 포장도로와 태곳적 고요함뿐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가 나타나고 젊은 여자가 나타나고, 어쩌면 아이의 누나이거나 엄마인 것 같고, 그들은 맞은편 인도 위를 걷는다. 벨라노는 눈을 감는다.

 

 배가 고프지 않다. 꿈도 꾸지 않는다.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다시 침대 위에 앉아 잇달아 담배를 피우면서 계속 텔레비전을 본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그 후 검은색 재킷을 입고 거리로 나간다.

 

 부지불식간에, 마치 자기도 모르게 유행가를 흥얼거리듯, 그는 다시 울리세스 리마의 집으로 향한다.

 

 멕시코시티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할 즈음, 벨라노는 이미 문을 열기 위해 여러 차례 쓸모없는 시도를 한 이후였고, 한 이웃이 그에게 문을 열어준 상태였다. 다시 미쳐버린 게 틀림없군.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두 계단씩 층계를 오른다. 높이는 아무 상관없어. 식사를 안 한 것도 아무 상관없어. 멕시코시티에 혼자 있는 것도 아무 상관없어. 잠시 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행복함을 느끼며, 그는 벨을 누르지 않은 채 울리세스의 문 앞에 있다. 차임벨을 세 번 누른다. 그가 발길을 돌려 건물을 떠나려고 할 때(하지만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문이 열리고, 삭발한 거대한 머리통이, 구릿빛이지만, 마치 벽이나 천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듯, 번뜩거리는 붉은 뭔가가 어슴푸레 보이는 머리통이, 문틈으로 나타나더니,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벨라노는 처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울리세스 리마를 찾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갑자기 대꾸할 마음이 사라진다. 그래서 입을 다문 채 상대편을 주시한다. 그 머리통은 젊은 축에 속하고, 스물다섯 살을 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벨라노가 봤을 때, 상대편은 무언가에 씌었거나, 혹은 무언가에 씌인 상태로 오랫동안 살았다고 추측한다. 이 방은 비었습니다. 젊은 남자가 말한다. 이미 알고 있어요. 벨라노가 말한다. 그럼 왜 벨을 누른 겁니까? 젊은 남자가 말한다. 벨라노는 그의 눈을 보고 입을 떼지 않는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머리칼 없는 젊은 남자는 복도로 나온다. 그는 뚱보이고, 구식 가죽 벨트로 허리를 조인, 통이 넓은 청바지만 입고 있다. 벨트 버클은 사이즈가 크고, 메탈 소재로 되어 있다. 비록 젊은 남자의 복부가 버클 일부분을 먹고 있긴 하지만. 한 방 먹일 셈인가? 벨라노는 생각한다. 잠시 동안 둘은 서로를 응시한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우리의 아르투로 벨라노는 어느덧 마흔여섯 살이나 먹었고, 모두들 아는 것처럼, 혹은 알아야 하는 것이, 간이 좋지 않고, 심지어 췌장과 결장마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복싱을 할 줄 알고, 보는 것만으로도 맞은편의 살집 있는 남자에 대해 계산이 떨어진다. 그는 멕시코에 살 때 숱하게 싸우고 다녔음에도 결코 패배하지 않았고, 지금으로선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학교에서의 싸움, 그리고 선술집에서의 쌈박질. 그래서 벨라노는 지금 젊은 뚱보를 보고 있고, 그가 어떤 순간에 덤벼들고 어떤 순간에 한방 먹일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 그러나 뚱보는 벨라노를 보기만 한다. 그러고 나서 자기 집 안쪽을 본다. 그때 다른 젊은 남자가 나타난다. 이 남자는 갈색 운동복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그 옷엔 세 명의 남자가 때려 부술 듯한 포즈로 쓰레기가 뒤덮인 거리 가운데 서 있다. 옷 윗부분에는 붉은 글자가 있다. 로스 아모스 델 바리오Los Amos del Barrio(동네 주인들).

 

 잠시 동안, 벨라노는 티셔츠의 디자인에 큰 관심을 보인다. 티셔츠에 있는 애처로운 세 남자들이 그에게 친숙해 보인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고. 아마 친숙해 보이는 것은 그 거리일 것이다. 수 년 전에 내가 거기 있었지, 그는 생각한다, 수 년 전에 그 거리를 거닐었지, 차분하게, 모든 것을 보면서, 아무 목적 없이.

 

 이 티셔츠 남자는, 처음 문을 열어준 남자만큼이나 뚱보인데, 물 끓는 듯한 목소리로 벨라노에게 질문을 하지만 벨라노는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시비조의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뭐라고요? 벨라노가 말한다. 로스 아모스 델 바리오의 팬이에요? 티셔츠 뚱보가 다시 묻는다.

 

 벨라노가 미소 짓는다. 아니오, 난 이 동네 사람 아닙니다. 그가 말한다.

 

 그 후 두 번째 뚱보를 밀면서 세 번째 뚱보가 나타나더니 - 이쪽은 좀 더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콧수염이 있는 아스테카 타입의 뚱보다 - 자기 룸메이트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3대 1이라니, 벨라노는 생각한다, 떠날 시간이군. 콧수염 뚱보는 벨라노를 보더니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이 사람이 울리세스 리마의 집 차임벨을 누르고 있었어. 첫 번째 뚱보가 말한다. 울리세스 리마를 압니까? 콧수염 뚱보가 말한다. 알죠, 벨라노가 말한다, 내 친구였으니까.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티셔츠 뚱보가 말한다. 이후 아르투로 벨라노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나서 이제 돌아갈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쪽들을 귀찮게 한 것 같군요. 하지만 이번에는 세 뚱보가 엄청 흥미 있는 눈으로 그를 본다. 마치 제3의 눈으로 그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티셔츠 뚱보가 웃으며 말한다. 농담 마세요, 당신이 아르투로 벨라노일 리가 없잖아. 비록 그가 그런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벨라노가 깨달은바, 비록 확신할 수는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벨라노는, 뚱보들의 집 안에서, 이들에게 안내를 받으며, 마치 너무 슬퍼서 절대 볼 것 같지 않은 영화를 보기라도 하는 듯, 자기 자신을 본다. 그들이 맥주를 건네준다. 고맙지만, 이제 술은 안 마셔요. 벨라노가 말한다. 시든 꽃무늬 문양이 있는 지저분한 소파에 앉으면서. 손에는 물 한 컵이 있지만 마실 마음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멕시코시티의 물은, 사람들이 알려주기도 했거니와 그 역시 항상 알고 있던 바에 의하면, 위장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뚱보들도 근처의 소파에 자리를 잡는데, 웃통을 벗고 있는 한 명은 예외적으로, 바닥에 앉는다. 마치 자신의 몸무게 때문에 소파가 부서질까봐 염려라도 되는 듯이.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지면 룸메이트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라도 되는 듯이.

 

 웃통 벗은 뚱보는 무슨 노예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군. 벨라노는 생각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혼란스럽고 감정적이다. 뚱보들은 벨라노에게 자신들이 울리세스 리마의 마지막 제자들이었다고 알려준다(그들은 ‘제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울리세스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의문스러운 자동차, 그러니까 검은색 임팔라에 치여서 사망했어요. 그리고 울리세스의 인생에 대해서도 말한다. 셀 수도 없이 이어진 숙취의 나날들이 그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마치 울리세스 리마가 속이 안 좋아서 토했던 술집이나 방이, 그의 작품 전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것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락 밴드 엘 오헤테 데 모렐로스El Ojete de Morelos(모렐로스의 멍청이)의 멤버이고 멕시코시티 교외의 디스코텍에서 연주를 한다. 그들은 음반을 하나 발매했지만 노랫말 때문에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작은 방송국에서는 하루 종일 그들의 노래를 틀고 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유명해지고 있어요, 그들이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반항적이죠. 그것이 울리세스 리마의 방식이고, 그들이 말한다, 울리세스 리마의 예광탄이며, 멕시코의 가장 위대한 시인의 시죠.

 

 그러고 나서 그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러니까 CD 플레이어로 엘 오헤테 데 모렐로스의 음반을 틀고, 벨라노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들의 노래를 듣는다. 여전히 입에 대지도 않은 물 컵을 손에 꽉 쥔 채, 더러운 바닥과 벽을 보면서. 벽에는 로스 아모스 델 바리오와 엘 오헤테 데 모렐로스와 그가 모르는 다른 밴드들 - 아마도 로스 아모스 델 바리오나 엘 오헤테 데 모렐로스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밴드 형태일 것이다 - 의 포스터가 가득하다. 멕시코 청년들은 사진에서, 어쩌면 지옥에서, 벨라노를 본다. 자신의 전자 기타를, 마치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혹은 추위로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다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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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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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La Gira


어느덧 1년이 흘러 볼라뇨 14주기. 작년까지만 해도 출간될 가망성이 없는 줄 알었던 <악의 비밀>이 계약됐다고 하니 언젠가 한국어 번역본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 전에 우선 맛보기(?)로 <악의 비밀>에 수록된 짧은 단편, 미완결처럼 보이는 짧은 단편 "투어"를 읽어보도록 합니다. 



내 꿈은 존 말론John Malone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라진 뮤지션이었다. 5년 전부터, 말론은 전설들이 거주하고 있는 어두운 지역에 머무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실상, 새로운 소식이란 없다. 비록 팬들은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지만. 1970년대에 말론은, 제이콥 몰레이Jacob Morley와 댄 엔디코트Dan Endycott와 함께, 브로큰 주Broken Zoo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이었고, 브로큰 주는 그 시기 가장 성공한 락 밴드 중 하나였다. 1966년에 브로큰 주는 첫 번째 LP를 녹음했다. 그 시기 영국에서 나온 가장 높은 수준의, 끝내주는 음반이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그 시기란,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활동하던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잠시 후 두 번째 LP가 출시되자, 모든 사람들이 놀랐는데, 첫 번째 음반보다 더욱 좋았던 것이다. 브로큰 주는 유럽 투어를 시작했고, 이후 전미 투어를 진행했다. 북미 투어는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들이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는 동안 그들의 음반은 판매 차트에서 상승 곡선을 유지했고 마침내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런던으로 다시 돌아와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했다. 몰레이는 런던 근교에 막 구입한 맨션에 틀어박혔다. 맨션에는 개인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다. 엔디코트는 밴드 주변에서 우글거리던 모든 예쁜 여자들과 섹스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은 런던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집 한 채를 장만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한편, 말론은 가장 차분했던 것 같다. 브로큰 주의 몇몇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그는 기이한 파티에 드나들었다. 비록 그들 전기 작가들이 기이한 파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그 시절의 은어로, 마약과 섹스가 뒤범벅이 된 파티를 의미하는 것 같다. 얼마 후 말론은 사라졌고,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심사숙고의 시간이 지난 후, 밴드 매니저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을 인정했다. 존 말론은 그 어떤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밴드를 탈퇴했습니다. 얼마 후 몰레이와 엔디코트가, 드러머 로니 팔머Ronnie Palmer와, 또 다른 멤버 코리건 Corrigan과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그 시간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로니 팔머만 빼고, 말론은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그는 사라지고 나서 3주 정도 팔머에게 전화로 연락했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찾지 말라고, 다시 돌아갈 생각 없으니 자신을 기다리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밴드가 끝날 것이라고 여겼다. 말론은 최고였고, 그가 없이 브로큰 주가 살아남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몰레이는 런던 근교에 있는 맨션에 한 달인가 몇 달인가 틀어박혔고, 엔디코트는 매일 몰레이의 집을 드나들며 열 시간 이상 작업하였기에, 마침내 밴드의 세 번째 LP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비평가들의 예상과 다르게 브로큰 주의 세 번째 음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음반보다 더욱 훌륭했다. 첫 번째 음반에선, 곡의 70퍼센트 정도가 말론의 작품이었다.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까지. 두 번째 음반에서도, 곡의 70퍼센트는 말론의 것이었다. 나머지의 30퍼센트와 25퍼센트는, 각각, 몰레이와 엔디코트의 작품이었다. 두 번째 LP의 한 곡만은 몰레이와 팔머가 함께 가사를 썼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 번째 음반에서는, 대조적으로, 곡의 90퍼센트가 몰레이와 엔디코트의 것이었고, 나머지 10퍼센트는 공동 작업이었다. 팔머, 몰레이, 엔디코트, 그리고 새로운 멤버 ㅡ 말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나서 밴드에 들어온 ㅡ 베너블Venable이 함께 한 작업. 음반에는 말론에게 바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그 어떤 비난도 없었다. 오직 우정과 찬사뿐. 제목은 “너 언제 다시 돌아올래?”였고, 싱글 형태로 발매됐으며, 2주 만에 런던 탑 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물론, 말론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시기 많은 기자들의 그를 찾아보려고 했음에도, 그 모든 시도들은 결실 없이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그가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 죽었다는 말이, 시신은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브로큰 주에 대해서라면, 세 번째 음반에 이어 네 번째 음반이, 만장일치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나왔고, 네 번째 이후에 다섯 번째 앨범이 나왔으며, 그러고 나서 여섯 번째 더블 앨범, 우상이 되었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LP. 그 이후 그들은 한동안 공연을 하지 않았지만, 그 후 충분히 좋은, 일곱 번째 LP를 출시했다. 이후 여덟 번째 음반, 80년 대 중반에는 아홉 번째, 또 다시 더블 앨범을 발표했고, 몰레이와 엔디코트가 악마와 계약을 한 것 같았으며, 그래서 아홉 번째 음반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에서 네덜란드까지, 뉴질랜드에서 캐나다까지, 타일랜드의 태풍처럼 휩쓸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그 이후 밴드는 해체한다. 비록 이따금씩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장소에서, 뜻 깊은 날, 다시 모이기는 했지만. 1995년에 롤링 스톤즈의 한 기자가 말론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 기사는 단지 브로큰 주의 첫 번째 비닐 음반을 보관하고 있을 만큼의 열혈 팬들만을 동요시켰다. 독자들 대부분은, 다수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여기는 한 인물의 운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말론의 삶은, 그 모든 시기 동안, 어떻게 보면,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런던을 떠나고 했던 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2년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물렀다. 자신의 이전 밴드 멤버들이 우주를 향해 박차 오르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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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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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의 아들El Hijo del Coronel

 

볼라뇨 13주기를 추모하며, 판매량이 저조하여 더 이상 출간될 가망성이 거의 없는 볼라뇨의 남은 책들 중 단편집 <<악의 비밀>>에 수록된 단편 <대령의 아들>번역해서 포스팅합니다. 

 

"볼라뇨의 마지막 픽션 작품(<<2666>>)에서 드러나는 특징적 묘사들, 사진들, 문학 세계, 상류 사교계에 대한 묘사들, 그리고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해 거대한 똬리를 이루는 그의 창작적 특성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서술해 내는 행위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악의 비밀>>에 수록된 작품 <대령의 아들>은 이런 실례를 잘 구현하고 있는데, 작가는 좀비들을 다룬 B급 영화를 본 한 관객의 목소리에서 시작해서 한 번도 듣거나 본 적 없는 것들을 재구성한다. 영적 공간의 초자연적 소리와 소음들을 해석하는 EVP, 즉 전자 음성 현상(1)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청각적 파레이돌리아(2) 효과가 아이러니하게 표현되고 있다.

 

(1) 전자적으로 음성과 유사한 소리를 생성하지만, 의도적인 음성 녹음이나 랜더링의 결과로 얻어지기는 불가능한 것, 귀신이나 유령의 목소리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전자 기계로 녹음하는 방식.

(2) 한 개인에 의해 희미하고 애매한 자극이 명쾌하고 변별적으로 인지되는, 일종의 환영(幻影) 현상."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에서) 

 

 


  너희들은 안 믿겠지만, 어젯밤, 그러니까 새벽 네시 경에, 티비에서 영화 한 편을 봤어. 그건 내 전기, 아니면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였어. 이 빌어먹을 지구에서의 나날들을 요약하고 있었지. 오줌을 지릴 만큼 겁이 났고, 충격 때문에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지.

 

  그대로 얼어붙었어. 불현듯 그게 구린 영화라는 걸 깨달았어. 우리들이 - 가련하고 불행하기도 하지 - 구리다고 생각한 이유는, 배우도 엄청 안 좋았고 연출도 아주 안 좋았으며 특수 효과도 몹시 안 좋았으니까. 실제로 굉장히 저예산의 영화였고, 순수 B급 영화였어. 말하자면, 너희들에게 확실히 밝혀두기 위해서인데, 4유로나 5달러 정도로 찍은 영화였어. 투자를 받기 위해 누구를 설득했는지 모르겠지만, 제작자는, 내가 이건 보장하는데, 팁 몇 푼만 줬고, 그걸 가지고 그럭저럭 만들어낸 거지.

 

  진심으로 말하거니와, 그 영화 제목조차 기억이 안 나. 하지만 난 그걸 <대령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죽을 거야. 너희들에게 하나 보장할 게 있는데, 여태껏 그토록 민주적인 영화는 본 적이 없어. 다시 말해, 진실로 혁명적인 영화였지. 그렇다고 그 영화 자체가 어떤 혁명을 이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지. 차라리, 애처롭기도 하지, 발작과 일상적인 장소로 가득해. 편견, 희화화된 인물들로 가득하지. 하지만 동시에 각 장면들이 혁명적인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고 있어. 혁명이 있다고 직감할 수 있는 그런 공기. 완벽한 혁명이 아니라, 너희들은 나를 이해하겠지, 아주 작은 단편의, 아주 미세한 혁명. 예컨대, 너희들이 <쥬라기 공원>에서 본 것처럼, 그러니까 어디에서도 공룡 한 마리 나오지 않는 것처럼. 아니 내 말은, <쥬라기 공원>에서는 누구도 그 빌어먹을 파충류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잖아, 하지만 이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고, 참을 수가 없는 존재지.

 

  너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나는 오스발도 람보르기니의 <프롤레타리안의 체임버 극>의 단 한 작품도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너희들에게 보장할 수 있는 건, 밤에 람보르기니의 마조히즘을 보는 것이 새벽 세네 시에 <대령의 아들>을 보는 것보다 낫다는 점이지. 무엇에 대한 영화냐고? 좋아, 웃지 말기를, 그건 좀비에 대한 영화야. 맞아, 맞아, 대강 조지 로메오의 영화와 비슷해. 의심할 것도 없는데, 어떤 점에서 보면, 조지 로메오에 대한, 그의 두 편의 위대한 좀비 영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로메로의 정치적인 밑바탕엔 칼 마르크스가 있어. 반면에 어젯밤에 본 영화의 정치적인 밑바탕엔 아르튀르 랭보와 알프레드 자리가 있지. 순수한 프랑스적 광기.

 

  비웃지 마. 로메로의 영화는 명확하고 비극적이야. 구렁텅이에 빠진 집단에 대해 말하고, 생존자들에 대해 말하지. 유머 감각도 있어. 그의 두 번째 영화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좀비들은 몰 주위를 헛되이 돌아다녀. 자신들의 과거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지. 근데, 어젯밤 영화는 좀 달라. 유머 감각도 많지 않고, 비록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제꼈지만, 집단적인 비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주인공은 청소년이야, 내 생각에, 도입부를 못 봤거든, 어느 날, 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장소에 여친과 함께 나타나. 도입부를 보지 못해서 확실치는 않아. 어쩌면 주인공 남자가 자기 아버지를 방문했다가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난 걸 수도 있고. 그녀 이름은 줄리. 예쁘고, 어리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아니면 그렇지 않게 보이려는 젊은이들 특유의 욕구가 있어. 남자는 레이놀즈 대령의 아들이야. 대령은 홀아비이고 아들을 사랑하지, 그건 첫 눈에 알 수 있어, 비록 그가 군인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아들을 대하는 그의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겉으로 드러낼 만한 장소가 없는 곳에서 대하는 방식이지.

 

  줄리는 그 기지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 피자를 가지고 왔다가 길을 잃어버린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레이놀즈 대령이 사용하는 모르모트 중 한 명의 여동생일 수도 있고. 그다지 납득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 도시를 떠나려고 버스 정류소로 가는 동안 대령의 아들을 만났을 수도 있어. 확실한 건, 줄리는 거기 있었고, 어느 순간, 지하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가 절대 열리면 안 되는 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열었지. 맞은편에 있던 좀비 한 마리가 그녀를 쫓기 시작했어. 줄리는 물론 도망쳤지만 그 좀비는 그녀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할퀴었지. 어느 순간엔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물기도 했고. 이 장면은 강간을 암시하는 뭔가가 있지. 그러고 나서 대령의 아들이 나타나. 이 여자를 찾고 있었거든. 둘이 힘을 합쳐서 그 좀비를 제압하고 죽여버려,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나서 그들은 점점 좁아지고 복잡해지는 지하 회랑을 따라 도망치다가 마침내 작은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오지. 도망치는 동안 줄리는 질병의 초기 증상을 느끼기 시작해. 피곤함, 허기짐. 그녀는 대령의 아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가라고, 자신을 잊으라고 부탁해. 하지만 남자의 완고함은 끄떡없어. 그는 줄리를 사랑했어, 아니 어쩌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수도(어쩌면 그가 그녀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일 수도 있어). 분명한 것은, 그에게는 극단적인 젊음의 관대함이 있고, 운명에 따라 그녀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상으로 나왔을 때 줄리의 공복감은 통제가 안 되는 수준에 이르지. 반면, 도시의 거리들은 황폐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아마 그 지역은 북아메리카의 어느 도시 교외에 위치한 곳일 거야. 버려지고 반쯤 허물어진 동네. 돈 없는 영화인들이 한밤중에 영화를 찍는 곳. 그곳이 레이놀즈 대령의 아들과 줄리가 출현하는 장소지. 줄리는 배가 고팠기에 도망치는 동안 쉬지 않고 투덜대, 몸이 아파, 배가 고파. 대령의 아들이 못 들은 척하는 말들. 그는 줄리를 구하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군사 기지에서 벗어나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않을 작정이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흥미로워. 대령은, 이건 즉각적으로 파악되는데,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지.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넘어서서. 당연하게도, 그건 일방통행적인 사랑이야. 아버지를 이해하기에 아들은 아직 한참 부족하지. 고독을 이해하기에도, 모든 존재에게 처해진 슬픈 운명을 이해하기에도. 젊은 레이놀즈는, 요컨대, 청소년이고, 사랑에 빠져있으며, 그것 말고는 이야기할 게 없지. 하지만 유의할 점. 겉모습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대령의 아들은 멍청하고 분별없는 젊은이처럼 보이지. 무모하고 생각 없는 젊은이처럼 보여. 마치 우리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가 영어로 말을 하고 북아메리카에 있는 어느 거대 도시의 파괴된 동네에 고립되어 산다는 것만 빼고. 반면에 우리는 스페인어(나 그와 유사한 무엇으)로 말을 하고, 라틴아메리카 도시들의 황폐한 거리에서 숨 막힌 채 살아가지.

 

  그 커플이 지하의 거미줄 같은 회랑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난 풍경은, 어찌 됐건, 우리에게 친근하게 보이지. 불빛은 부족하고, 건물의 유리창들은 깨져 있으며, 자동차들은 거의 다니지 않거든.

 

  대령의 아들은 줄리를 식료품점까지 데리고 가. 새벽 세네 시까지 영업하는 전형적인 가게 모습이었어. 지저분한 가게였는데, 그 안에는 캔 음식들이 초코렛 과자와 감자튀김 봉지 옆에 늘어서 있었지. 점원은 한명밖에 없었고. 물론, 외국인이었고, 나이나 불안한 표정으로 봤을 때, 그의 불만 가득한 얼굴을 봤을 때, 가게 주인임이 틀림없었어. 대령의 아들은 줄리를 데리고 진열대로 갔어. 거기엔 도넛과 군것질거리들이 있었지. 그런데 줄리는 곧장 냉장고로 가더니 익히지 않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해. 가게 주인은 감시 거울을 통해 그녀를 관찰하더니 그녀가 토하는 장면을 보고는 그들에게 다가가 돈 안 내고 거기서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물어봐. 대령의 아들은 자기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지폐 몇 장을 그에게 던지지.

 

  그 순간 네 명의 인물이 가게에 들어와. 멕시코 사람들. 그들이 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지. 아니면 그 동네 길모퉁이에서 마약을 나눠주는 사람들이거나. 어쩌면 존 스타인백의 일용노동자들과 함께 토마토를 따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남자 셋에 여자 하나, 나이는 20대에, 분별없고 아무 거리에서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멕시코인들 또한 줄리의 구토물에 흥미를 보였어. 가게 주인은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대령의 아들은 그 돈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하고. 파손품들은 누가 지불하지? 이 오물은 누가 지불하고? 가게 주인이 짙은 녹색의 구토물을 가리키면서 말해. 그들이 언쟁하는 사이 멕시코인들 중 하나가 계산대 뒤로 몰래 들어가서 돈을 훔치고 있지. 그러는 동안 나머지 셋은 구토물을 살펴보고 있어. 그 안에 우주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게 주인은 멕시코인들이 돈을 훔친다는 것을 깨닫자 권총을 꺼내서 그들을 위협하지. 그 순간 대령의 아들은 가게 주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매대에 있는 군것질거리들을 집어 들고 줄리에게 자신을 따라오길 부탁해. 이곳을 벗어나자고. 하지만 줄리는 다시 생고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등심살을 찢으면서 울기 시작하지. 그러더니, 이해가 안 된다고, 뭔가 좀 해보라고 젊은 레이놀즈에게 애원하지. 멕시코인들은 가게 주인과 대치 상태에 있어. 그들은 잭나이프를 꺼내서 식료품점의 인공 불빛으로 칼을 번뜩이게 하지.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가게 주인의 총을 빼앗아 그에게 발포하지. 가게 주인은 바닥으로 쓰러져. 멕시코인들 중 하나가 술 매대로 가서 몇 병을 가지고 와. 어떤 종류의 알코올이 함유됐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가 줄리 옆을 지나갈 때, 줄리는 그의 팔을 깨물어. 그 멕시코 남자는 울부짖고. 줄리는 자신의 이빨로 남자를 깨문 채 놓아주지 않아. 대령의 아들이 애걸복걸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발포 소리가 울리지.

 

  누군가가 외쳐. 어서 가자, 얼른 뜨자고. 멕시코 남자는 줄리의 이빨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는 데 성공하고, 통증으로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합류하지. 젊은 레이놀즈는 쓰러진 가게 주인의 몸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해. 아직 살아 있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안 돼, 줄리가 말하지, 여기다 두고 가면 경찰들이 도와줄 거야. 둘은 비틀거리면서 동시에 빠른 속도로 그곳을 떠나지. 그들은 가게 옆에 주차된 검정 왜건을 보고 그 차를 훔쳐. 젊은 레이놀즈가 시동을 걸었을 때 가게 주인이 나타나더니 도와달라고, 자신을 병원에 데려달라고 애원해. 줄리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지. 가게 주인의 하얀 티셔츠는 피로 얼룩져 있었어. 대령의 아들은 그에게 타라고 말하지. 그가 차 안으로 들어와서 차를 출발시키려고 할 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와. 그러자 가게 주인은 내리고 싶다고 말해. 그럴 순 없지, 대령의 아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가속 페달을 밟지.  

 

 경찰들은 추적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총을 쏘아대지. 가게 주인은 왜건 뒷문을 열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치고. 그는 빗발치는 총알 세례에 쓰러지고 말아. 앞좌석에 있던 줄리는 몸을 돌려서 어둠 속을 살펴봐. 그녀는 그가 우는 소리를 들어. 가게 주인은 고통에 신음하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지. 불

면과 노동으로 점철된 채, 외국에서 쉬지도 못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했던 자신의 삶을.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렸지.

 

  그 후 줄리는 앞좌석을 비워두고 왜건의 뒷부분으로 건너와. 대령의 아들이 경찰을 따돌리는 동안, 줄리는 가게 주인의 가슴을 뜯어 먹기 시작하지. 젊은 레이놀즈가 환하게 웃으며 줄리에게 말을 건넸을 땐, 경찰들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났을 때였고, 그녀는 네 발로 엎드린 채, 마치 호랑이가 된 것처럼, 혹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만족으로 가득한 숨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허기가, 잠깐 사이에, 우리가 금세 확인할 수 있는바, 충족되었기 때문이지. 대령의 아들은, 당연하게도, 경악한 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어.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해. 무슨 짓을 한 거야, 줄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의 어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줄리가, 비록 인육을 먹었을지언정, 여전히,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자신의 여자라는 점이었어. 줄리의 대답은 간단하지. 배가 고파서.

 

  그 순간, 젊은 레이놀즈가 과장된 몸짓을 하는 동안, 경찰 차량이 다시 나타나고, 두 젊은이는 다시 도주를 개시하지. 어두침침하고 인적이 드문 거리를 통해서. 여전히 우리에겐 마지막으로 놀랄 일이 남아 있어. 경찰들이 도망자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왜건의 뒷문이 열리더니 가게 주인이 나타나지. 그는 굶주린 좀비로 변해버린 상태였어. 먼저 경찰들 중 한 명의 목을 물어뜯고 나서, 그의 동료에게 접근하는데, 좀비에게 대항할 권총의 탄창이 텅 비어버려 쓸모없다는 걸 깨닫고, 남자는 공포심으로 얼어붙어버리지. 그 후 가게 주인은 걸신들린 듯 그를 먹어치우고. 바로 그때 군사 기지에서 나온 두 대의 차량이 골목을 막아버리더니, 레이저 광선총처럼 생긴 굉장히 기이한 총으로, 가게 주인을 제압해버리지. 그러고 나서 좀비가 된 두 명의 경찰들도 제압하고. 차량들 중 한 대에서 레이놀즈 대령이 내리더니 군인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거기에 있는지 물어봐. 군인들은 없다고 대답하고. 또 다른 차량이 그 골목에 나타났는데 거기에서 어떤 여자가 내려. 란도프스키 대령이었어. 그녀는 레이놀즈에게 이렇게 말하지. 이 순간부터 작전 통제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레이놀즈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해. 그까짓 작전 통제권은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지 알아내는 거야. 당신 아들은 이미 감염된 게 분명해, 란도프스키 대령이 말하지. 흥미로운 장면이야. 란도프스키는 청소년을 희생할 준비가 된 "아버지"의 역할을 당당하고 있는 반면, 레이놀즈는 자신의 아들이 생존하기만을 바라는 "어머니" 역할을 맡고 있거든.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차량이 모퉁이에 정차해 있는데, 차량에선 아무도 내리지 않아. 아까 그 멕시코인들이 타고 있던 차였어.

 

  그들은 식료품점에 있던 왜건을 알고 있었지. 그 차를 타고 연인들이 도주하고 있다는 것도. 멕시코인들 중 한 명, 그러니까 줄리에게 물어뜯긴 남자는, 완전히 감염된 상태였어.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지. 먹고 싶어. 그는 친구들에게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피력하지.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멕시코 여자가 그를 부축하면서 현명하게 말하지.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해. 나머지 둘은 알았다고 하지만 그 전에 추초Chucho를 물어뜯은 그 구미호를 찾고 싶다면서 그녀에게 결코 잊지 못할 가르침을 주고 싶다고 하지.

 

  모든 것은 결국 잊혀지기 마련이고, 지금으로선, 그들이 그녀를 죽이자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기억하고 있어. 그들 둘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지. 그들은 명예에 대해, 존경에 대해, 품위에 대해, 신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그러고 나서 차에 올라타더니 점점 멀어지지. 군인들은 어떤 순간에도 그들을 보지 못해. 마치 그 유령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이어지는 장면에서 줄리와 젊은 레이놀즈가 다리 위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여. 어디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 젊은 레이놀즈가 자문하지. 줄리는 그에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말해. 다리 건너편에는 공중전화 박스가 있지. 여기서 기다려, 젊은 레이놀즈는 그녀에게 말하고 나서 전화박스를 향해 달려가. 도착하고 나서 그는 낙담하고 말지. 전화번호부도 없고 수화기도 뽑혀 있었거든. 그곳에서 그는 줄리가 다리 난간에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해. 그는 외치지. 줄리, 그러지 마! 그리고 그쪽으로 달려가. 하지만 줄리는 몸을 던져. 그녀의 몸은 물 위로 떠오르지. 비록 물살에 휩쓸려서 금세 멀어지고 말지만. 머리만 물속에 잠기 채로. 대령의 아들은 작은 계단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 강물은 30센티미터 정도로 별로 깊지 않았어. 깊은 곳은 50센티미터. 운하로 이용되는 강이라 강바닥에도 포장이 돼 있었지. 한 흑인 떠돌이가 그 청년을 바라보고 있지. 아래쪽에서, 콘크리트 말뚝 아래 어두운 곳에서. 청년 역시 흑인 떠돌이를 발견하더니 그에게 다가가지. 떠돌이는 이렇게 말해. 여자는 이미 죽었을 테니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대령의 아들은 싫다고 말하더니 흑인 주변에서 계속 그녀를 찾아보지.

 

  여자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물웅덩이 위에 떠 있었어. 줄리, 줄리, 그녀의 연인은 그녀에게 소리치고, 소녀는, 얼마나 오랫동안 물속에 머리가 잠겨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헛기침을 하더니, 남자의 이름을 불렀어. 내 좆같은 삶에서도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어. 흑인이 말하지.

  바로 그때, 그들이 있던 곳으로부터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멕시코인들이 나타나지. ('나타나다'라는 표현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날 거야.) 그들은 차 밖에서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지. 한 명은 차 보닛에 앉은 채, 나머지는 차 흙받기에 다리를 올린 채, 여자는 차 지붕 위에 있었고, 오직 부상자만이 유리창을 통해 그들을 보고 있어. 아니면 보려고 애쓰고 있거나. 멕시코인들은 위협적인 행동을 선보이지. 처벌과 무한한 고통과 모욕을 주리라 다짐하면서. 여긴 좀 별로니까, 흑인이 말하지, 날 따라와. 그들은 도시의 하수도 설비 체계 속으로 파고들어가. 멕시코인들은 그들을 뒤쫓지. 하지만 하수도 터널은 미로처럼 아주 복잡했기에 잠시 후 흑인과 청년들은 자신들의 추적자들을 따돌려. 마침내 당도한 은신처는 마치 디스코텍처럼 그들을 환영하는 듯했어. 여기가 내 집이야. 흑인이 말해. 그 후 자신의 인생을 늘어놓기 시작하지. 그가 지금껏 해왔던 일들.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 20세기 혹은 21세기 북미 노동자의 엿 같은 인생. 내 근육은 더 이상 버티질 못해. 흑인이 말하지.

 

  그의 집은 나쁘지 않아. 침대가 하나 있고 ㅡ 거기에 줄리를 눕혔지 ㅡ 그리고 책이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하수도에서 주운 것들이었어. 자기 계발서나 혁명에 관한 책들, 그리고 이를테면, 잔디 깎는 기계를 수리하는 방법 같은 게 나오는 기술 서적. 화장실도 있었데 거기엔 원시적인 샤워실이 있지. 여기선 깨끗한 물만 흘러나와, 흑인이 말하지. 천장의 갈라진 틈에서 계속적으로 유리 같은 물줄기가 나오는 거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손으로 은신처를 만들었어, 흑인이 그들에게 설명해. 그러고 나서 철제 막대기를 집더니 그들에게 말하지. 여기서 쉬어도 돼, 내가 감시하러 나갈 테니.

 

  하수도 안은 늘 밤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날 밤은, 마지막으로 평화로웠던 그날 밤은, 유달리 기이했지. 청년은 어질러진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어, 줄리와 사랑을 나누고 난 뒤지. 흑인 또한 잠들어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면서. 자지 않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여자는 이 방 저 방 들락거리고 있지. 다시 식욕이 솟구쳤기 때문이었어. 이전과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지금 줄리는, 자기 스스로 가하는 통증이 식욕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지.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장면을 보게 되지. 얼굴에 바늘을 꼽는다거나, 철사로 젖꼭지를 관통

시킨다거나.

 

  이후 멕시코인들이 다시 나타나더니 흑인과 레이놀즈 대령의 아들을 손쉽게 제압해. 그 후 그들은 여자를 찾으면서 위협적인 말을 내뱉어.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오지 않으면 흑인과 네 연인을 죽이겠다. 그 순간 문이 하나 열리고 줄리가 나타나지. 많은 것이 바뀌었어. 이제 그녀는 피어싱 여왕의 화신이 된 모습이었어. 멕시코인들의 우두머리는 (가장 강한 놈이었지)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 감염된 멕시코인은 바닥에서 자기를 병원에 데려달라고 애원하고 있고. 멕시코 여자가 그를 달래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줄리의 외양에 꽂혀 있어. 남은 멕시코 남자는 대령의 아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고. 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부짖고 있었거든. 마치 줄리가 성폭행 당할 (아주 분명한) 가능성이 자신의 인내심을 넘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흑인은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어.

 

  줄리와 멕시코인 우두머리가 단둘이 방 안에 들어가. 안 돼, 줄리, 안 돼, 안 돼, 안 돼, 젊은 레이놀즈가 오열하지. 문을 통해 멕시코인의 목소리가 들려. 네가 맘에 들어, 자기. 그거 벗어, 자기. 오 마이 갓, 자기, 남자 여럿 꼬셨겠는데. 무릎 꿇고, 자기,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엉덩이 들어, 완벽해, 아, 아. 이런 종류의 소리가 갑자기 고함 소리로 바뀌더니 구타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마치 누군가가 누군가를 발로 차고 있는 듯한 소리가. 마치 누군가를 벽에 휙 던졌다가 그를 들고 나서 다시 맞은편 벽에 던지는 듯한 소리가. 이후 고함 소리가 그치더니 뭔가를 물어뜯는 소리가 들려. 문이 열리고 줄리가 재차 나타날 때까지. 그녀의 입술은 (사실상 얼굴 전체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멕시코인의 머리가 그녀 손에 들려 있지.

 

  그 모습에 정신이 나간 다른 멕시코인은, 총을 꺼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모든 총알을 그녀에게 갈겨대. 총알은 물론 그녀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 줄리는 미소 짓더니, 만족한 얼굴로, 그 멕시코인의 티셔츠를 붙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끌더니 그의 목을 물어뜯어 구멍이 나게 해. 젊은 레이놀즈와, 의식이 회복된 흑인은,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지. 이와 반대로, 멕시코 여자는 충분히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탈출하려고 시도하지만, 그녀가 상층부 하수도의 입구가 나오는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안, 줄리가 그녀를 붙잡지. 멕시코 여자는 발길질을 하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지만, 줄리의 강력한 힘 앞에, 결국 쓰러지고 말지. 그러지 마, 줄리, 대령의 아들이 소리쳐보지만, 이미 그의 연인이 멕시코 여자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난 후였어. 그러고 나서 심장을 꺼내더니 그것을 씹어 삼키지.

 

  그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 네가 이긴 것 같지, 씨발년아? 줄리가 고개를 돌리자, 우리에겐 남은 멕시코인이, 이제 완전히 좀비가 된 멕시코 남자가 보여. 둘은 결투를 시작하지. 그 싸움에서 줄리는 흑인과 애인의 도움을 받아서 얼마 동안 이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 하지만 줄리에게 죽임 당한 시체들이 깨어나서 그 싸움에 동참해. 한눈에 봐도 좀비들이 일반적인 인간들보다 열 배는 더 강했기에, 싸움의 승기는, 당연하게도, 멕시코인들 쪽으로 기울어. 그래서 세 명의 주인공들은 도망치기 시작하지. 흑인은 그들을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틀어막고는 이렇게 말해. 어서 도망쳐, 내가 놈들을 막을 테니, 방법은 하느님이 알겠지. 줄리와 젊은 레이놀즈는 감사를 표하지도 못하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 도망치던 도중에, 줄리는 연인의 눈을 바라보더니, 눈빛으로 말했는지 실제로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에게 물어봐, 어떻게 아직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대답 대신 젊은 레이놀즈는 그녀의 뺨에 키스를 하지. 그러고 나서 자신의 입술을 닦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 사랑해, 이전보다 훨씬 더 사랑해. 그가 말하지.

 

  그 후 그들은 절규하는 소리를 듣고 흑인이 쓰러졌다는 걸 알아차려. 그들이 피신해 있던 방에는 출구가 없는 대신, 오래된 가구 더미들이 쌓여서 통로를 이루고 있었어. 일종의 미로였지. 곧 사라질 것들로 만들진, 버틸 의지 따위 없는 미로. 널 여기 남겨둬야겠어, 줄리가 말하지. 젊은 레이놀즈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줄리가 자신의 어마어마한 힘을 이용해서, 소파와 고장난 세탁기와 낡은 (못 쓰는) 텔레비전 아래로 그를 던져넣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여자가 희생할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녀에게 반응할 시간도 거의 없었어. 줄리는 밖으로 나가서 싸우지만 패배했고, 멕시코 좀비들이 이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젊은 레이놀즈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쓸모없는 가구 아래에서 자그맣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좀비들은 그를 발견하고 거기서 끄집어내려 해. 젊은 레이놀즈는 그들의 굶주린 얼굴을 봐. 거기에 흑인의 굶주린 얼굴이 더해지고, 나중에는 줄리의 얼굴 보여. 아무 감정 없이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그 순간 레이놀즈 대령이 세 명의 남자들에게 보호 받으며 문을 박차고 나타나 특수 총기로 모든 좀비들을 제압하기 시작하지. 총이 발사되는 동안 대령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걸 멈추지 않아. 여기 있어요, 아빠, 젊은 레이놀즈가 말하지.

 

  악몽은 끝이 났어.

 

  이어지는 장면에서 대령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 젊은 레이놀즈에게 알래스카 근처에서 쉬다가 오라고 제안하고 있어. 젊은 레이놀즈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하고. 서두를 거 없다, 아들아, 대령이 말하지. 그러고 나서 대령은 홀로 남아 혼자 헛웃음을 짓지,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거대한 운명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아들은 살아 있어. 그러는 동안, 젊은 레이놀즈는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나와 기지의 지하 통로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지. 그의 표정은 극도로 좋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사색을 방해해.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지. 울부짖고 있는 사람의 소리, 완전히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의 소리야. 부지불식간에 그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지. 오래 걸을 필요 없었어. 통로 끝에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을 열자, 내부에 있는 거대한 실험실이 눈앞에 펼쳐졌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알던 군과학자들이 그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했어. 그는 계속 돌아다녔고, 유리로 된 감옥을 발견하지. 그 내부에는, 각 감옥 당 한 명씩, 멕시코인들이 있었어. 그는 계속해서 걸었고, 줄리가 갇혀 있는 감옥을 발견하지. 줄리는 그의 얼굴을 보더니 그를 알아보지. 대령의 아들이 유리 위에 손을 대자 줄리가 그 손을 만져, 아니 만지는 시늉을 해. 아주 커다란 감옥에, 과학자들이 흑인을 준비시켜두지. 엄청난 전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들이 말해. 그들은 그의 머리에 전자 장치를 부착시키지. 흑인은 증오와 원한으로 가득해. 대령의 아들은 모서리에 숨어 있다가, 과학자들이 커피 브레이크를 가지러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흑인에게 다가가 자신을 알아보겠는지 물어봐. 흐릿하군, 흑인이 말하지. 내 모든 기억이 흐릿해. 게다가 더럽게 괴상해.

 

  우리는 친구였어요, 대령의 아들이 말하지. 우리는 강에서 만났어요. 트레인타 거리에 있는 집이 기억나, 흑인이 말하지, 그리고 어떤 여자의 웃음, 근데 내가 거기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어. 청년은 흑인의 쇠사슬을 풀어줘. 그는 이제 로보캅처럼 걷지. 좀비 로보캅. 나 공격하지 마요, 대령의 아들이 말해. 나는 당신 친구니까. 알겠어, 흑인이 말하지. 그는 무기 보관함으로 다가가 거기서 총기를 하나 꺼내들어. 과학자들이 흑인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총알 세례를 받지. 그러는 동안 청년은 줄리를 풀어주고, 그녀에게 다시 도망쳐야 한다고 말해. 그들은 키스를 하지. 군인들은 흑인을 제압하려 하고. 감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면서, 줄리는 멕시코인들을 풀어줘. 더 많은 군인들이 도착하지. 총알들이 어느 컨테이너 박스를 부수는데, 거기엔 시신들이 쌓여 있었어. 내장들과 척추뼈들이 실험실 바닥으로 흘러나오지.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해. 육탄전에서는 알 수가 없어, 어느쪽이 이기고 있는지, 두 편이 있기나 한지, 각 개인들이 자기 자신이 살려고 싸우는지 아니면 상대를 죽이려고 싸우는지. 확성기에서 어떤 목소리가 반복돼. 지하 5층 통로를 봉인해야 해. 아들아, 레이놀즈 대령이 외치지, 지하 5

층으로 미친 듯이 내려와라.

 

  흑인은 란도프스키 대령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지. 그녀는 멕시코 여자에게 물어뜯기고. 군인들은 피로 뒤덮인 인체 살덩이의 공격에 의해 후퇴하게 되지. 하지만 두 번째 공격에서, 방어선이 무너지고, 군인들은 날고기 파편들에 의해 먹히게 돼. 점점 더 좀비들이 늘어나지.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과 싸우고 있어. 대령은 지하 5층에 도착해서, 유리창을 통해 자신의 아들과 줄리를 바라보고, 어떤 통로가 아직 열려 있는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대령의 아들은 줄리의 손을 잡고 그의 아버지가 알려준 곳으

로 향해. 온몸이 아파, 줄리가 말해.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청년이 말하지, 우리가 여기서 멀어지면 넌 좋아질 거야. 나 믿지? 믿어, 줄리가 답하지.

 

  아직 봉인되지 않은 통로에 레이놀즈 대령이 무기도 없이 나타나. 땀으로 범벅이 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멈추지 않고 달려서이기도 하고, 지하 5층의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이기도 하지. 레이놀즈 대령의 얼굴이 변했어. 그의 행동이 마치 아브라함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지. 몸속의 세포 하나 하나가 반복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지. 군인으로서의 경력, 과학적인 작업들, 의미, 명예, 조국, 이 모든 것이 사랑의 급박함 앞에서 산산조각 나지. 여기서 도망쳐. 너희들 날 따라와. 서둘러. 잠시 후 문들이 자동으로 닫히지. 나와 같이 여기서 빠져나가자. 그는 대답으로 단지 아들의 슬픈 시선을 받을 뿐이지. 그 순간 아마 처음으로 아들은 아버지를 더 많이 알게 되지. 통로 끝에 있는, 아버지. 반대쪽 끝에 있는, 아들. 갑자기 문들이 닫히고, 그들은 영원히 헤어지게 되지.

 

  아들의 뒤편엔 불가마 같은 것이 있어. 그 불가마가 원래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격정적인 반역에 의해 만들어진 건지는 알 수 없지. 무시무시한 불길. 줄리와 청년은 서로 손을 잡아. 가자, 줄리, 청년이 말해, 겁먹지 마, 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 반대편에서, 대령은 헛되이 문을 부수려고 하지. 그의 아들과 줄리는 불길을 향해 나아가. 반대편에서, 대령은 주먹으로 문을 때리고 있고. 손가락 마디에서 피가 배어나와. 겁 안 나, 줄리가 말하지. 사랑해, 젊은 레이놀즈가 말해. 반대편에서, 대령은 헛되이 문을 부수려고 하지. 젊은 커플은 불길로 향하다가 사라지지. 화면이 짙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들리지. 그 이후, 폭파, 고함소리, 신음소리, 전기가 타닥타닥 튀는 소리들. 반대편에서, 모든 것과 동떨어진 채, 대령은 헛되이 문을 부수려고 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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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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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비밀El secreto del mal


 볼라뇨 11주기를 추모하며 단편집 <악의 비밀>에 있는 표제작 "악의 비밀" 포스팅. 아마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어딘가에 (왠지 누군지 알 것 같은) 다른 분이 번역한 "악의 비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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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비록 굉장히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또한, 미완결의 이야기이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에는 결말이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서의 어느 날 밤. 미국 신문기자가 자고 있다. 갑자가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국적 불명의 영어 액센트로, 그에게 조 A. 켈소에 대해 묻는다. 그 신문기자는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하고 나서 손목시계를 본다. 새벽 네 시. 그는 세 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피곤한 상태다.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건네줄 정보가 있다며 그에게 만나자고 한다. 신문기자는 어떤 내용인지 묻는다. 이런 유형의 전화가 흔히 그러듯, 그 목소리는 아무런 실마리도 내놓지 않는다. 신문기자는 최소한의 단서를 요구한다. 그 목소리는, 굉장히 정확한 영어로, 켈소보다 훨씬 더 정확한 영어로,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선호한다. 그러고는 곧장 덧붙이길,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어디에서요? 켈소가 문의한다. 목소리는 파리의 어느 다리를 언급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이와 유사한 약속을 수백 번 해본 신문기자가 대답한다. 30분 뒤에 거기 있을게요. 옷을 입으며 그는 생각한다. 밤 시간을 망쳐버리기 딱 좋은 방식이군. 하지만 동시에, 조금 놀라며 깨닫는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군. 그 전화가 잠을 날려버렸어.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그가 다리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한 것보다 5분 늦은 시간이었다. 자동차들만 보였다. 잠시 동안, 한쪽 끝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은 채 기다린다. 다리를 건넜지만 여전히 인적이 없었고, 다른 쪽 끝에서 몇 분 동안 기다려본 후, 결국 다시 다리를 건너와 그날 밤 약속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기로 결심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그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는 미국인이 아니었어, 그건 확실해. 그는 영국인도 아니었어.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남아프라카인이거나 호주인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는 생각한다. 아니면 네덜란드인. 아니면 북유럽 사람인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나서, 영어권의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익혔을 수도 있을 테고. 어느 도로를 건널 때 그는 누군가 부르는 것을 듣는다. 켈소 선생.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을 부른 사람이 다리에서 약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목소리는 어느 어두운 입구에서 흘러나온다. 켈소는 멈추라는 손짓을 해보지만 그 목소리는 그에게 계속해서 걸으라고 명령한다. 다음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신문기자 아무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혹에 흔들리지만, 잠시 망설인 후, 가장 좋은 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별안간 어떤 남자가 골목 입구에서 튀어나와 그에게 인사한다. 켈소는 그 인사를 돌려준다. 그 남자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사차 핀스키입니다, 그가 말한다. 켈소는 자신의 손을 뻗고 이름을 말한다. 그런 핀스키가 켈소의 등을 토닥이고는 위스키 한잔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다. 위스키 살짝 걸치지 않겠습니까. 배가 고픈지 물어본다. 그 시간까지 열려 있는 바를 알고 있다고 장담하면서. 막 구워낸 따뜻한 크로아상을 파는 곳이죠. 켈소는 그의 얼굴을 본다. 핀스키가 모자를 쓰고 있긴 하지만, 하얗고 창백한 낯빛을 알아볼 수 있다. 마치 수 년 동안 감금된 사람의 낯빛. 근데 어디에서? 켈소가 생각한다. 감옥이나 정신병원이겠지. 어찌됐건 약속을 지키기엔 너무 늦었고, 따뜻한 크로아상이 켈소를 유혹한다. 그 가게 이름은 셰 팡Chez Pain이고, 자신의 동네에 있었음에도, 비록 작은 거리에 있고 발길이 드문 곳이긴 했지만, 켈소는 처음으로 보고 처음으로 들어가 본다. 신문기자가 자주 들르는 가게들은 대부분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 있고, 그곳은 확인 불가능한 전설로 후광이 비치는 장소다. 스콧 피츠제랄드가 몇 번 먹은 술집이라든지, 조이스와 베케트가 아일랜드 위스키를 마신 술집이라든지, 헤밍웨이의 술집이나 존 더스패서스의 술집이나 트루먼 카포티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술집이라든지. 체 팡에 있는 크로아상은, 실제로 맛있었고, 막 구워냈으며, 커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사실로 인해 켈소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핀스키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인데, 동네 이웃인지도 몰라. 이런 가능성을 곰곰이 따져보다가 켈소는 소름이 돋는다. 무료하고, 편집증적이고, 관찰되지는 않으면서 관찰하기만 하는 정신 나간 사람. 떨쳐내는 것도 어려운 사람. 좋아요, 켈소는 결국 입을 뗀다, 말씀하세요. 창백한 남자는, 크로아상은 먹지 않고 커피만 홀짝거리더니, 켈소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의 미소는, 어떤 식으로 보든, 극도로 슬픈 미소이다. 또한 피곤한 미소인데, 마치 그 미소만으로도 고됨과 피곤함과 수면 부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미소를 거두자, 그의 낯빛에는 순식간에 냉담함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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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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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벨기에를 떠도는 방랑자 (Vagabundo en Francia y Bélgica)


이 단편 역시 <서울생활>에 싣게 됐는데, 세 편으로 나눈 것을 하나로 묶고 가독 편의상 한 줄씩 띄움. (그나저나 원제의 "vagabundo"를 링크된 곳 이미지 상에는 "vegabundo"라고 했군.)


1편 / 2편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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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가 프랑스에 입성했다. 그는 이곳을 돌아다니고 가진 돈을 탕진하며 5개월을 보낸다. 희생적인 의식, 의미 없는 행동, 피로. 가끔씩 메모는 하지만 글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읽기만 한다. 무엇을 읽는가? 프랑스어로 된 경찰 소설. 프랑스어를 잘 모르지만, 그 때문에 소설이 더욱 흥미로워질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않아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챈다. 한편 프랑스는 스페인보다 덜 위험하다. B는 위험 수치가 낮은 지역에 있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B가 프랑스에 왔을 때 돈이 있었던 이유는, 출판사에서 아직 출간하지 않은 책의 인세를 미리 받았기 때문이다. 받은 돈의 60%를 아들 통장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그는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다. B는 바르셀로나에서 페르피냥 행 열차를 탔다. 30분 동안 페르피냥 역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파악했다. 그러고 나서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고 영국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 오후가 되어 그는 파리 행 직행 열차를 탔다.


  파리에서 B는 생-자크Saint-Jacques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숙박한다. 첫째 날엔 룩셈부르크 공원을 방문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후 생-자크 거리를 돌아다니고 저렴한 식당을 찾아내 거기서 식사를 한다.


  둘째 날, 소설 읽기를 끝내고 나서(소설에서 범인은 노인 병원에서 지내는데 그건 루이스 캐롤을 반영한 것 같다) 그는 헌책방을 돌아다닌다. 비외 콜롱비에Vieux Colombier 거리에 있는 헌책방에서 잡지 <루나 파크Luna Park> 2호를 발견한다. 그래픽 디자인(혹은 서기법) 특집 버전이었고, 로베르토 알트만, 프레데릭 발, 롤랑 바르트, 자크 칼론, 칼프리드리히 클라우스, 미르샤 데르미사체, 크리스티안 도트레몽, 피에르 기요타, 브라이옹 기쟁, 앙리 르페브르, 소피 포돌스키의 텍스트와 디자인(텍스트는 디자인이고 디자인 또한 텍스트이다)이 수록되어 있다.


  잡지는 1년에 세 번 나오거나 나왔는데, 마크 다치의 주도로 시작되었고, 브뤼셀에 있는 트랑세디씨옹TRANSédITION 출판사에서 – 앙리 반 주일렌Henry van Zuylen 거리에 사무실이 있거나 있었다 – 59호까지 출간했다. 로베르토 알트만이 유명한 아티스트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누가 로베르토 알트만을 기억할까? B는 생각한다. 칼프리드리히 클라우스도 마찬가지다. 피에르 기요타는 주목할 만한 소설가였다. 하지만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B는 기요타처럼 되고 싶었다. 한때, B가 젊은 시절에, 기요타의 작품을 읽던 시절에. 대머리에 힘이 센 기요타. 다락방의 어두운 곳에서 무엇이든 먹을 준비를 하는 기요타. 미르샤 데르미사체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게 없지만, 그녀의 이름은 뭔가를 떠오르게 한다. 아마도 아름다운 여자, 거의 확실하게 우아한 여자라는 점을. 소피 포돌스키는 그와 그의 친구 L이 이미 멕시코 시절부터 소중히 생각하는(심지어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이었다. B와 L이 멕시코에 살 때 그들은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였다. 롤랑 바르트는, 그렇지, 전 세계 사람들이 롤랑 바르트가 누구인지 안다. 도트레몽에 대해서는 희미하게 떠오르는 게 있다. 아마 예전에 잃어버린 시 선집에서 그의 시를 몇 개 읽었던 것 같다. 브라이옹 기쟁은 버로스의 친구였다. 버로스는 기생에게 컷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앙리 르페브르. B는 르페브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유일하지만 르페브르의 이름은 그 헌책방에서, 마치 어두운 방에서 빛나는 성냥처럼, 밝게 빛난다. 최소한 B는 그런 식으로 느낀다. B로서는 횃불처럼 빛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두운 방이 아니라 동굴. 하지만 분명한 건 르페브르가, 르페브르라는 이름이, 다른 식으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짧게 빛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B는 그 잡지를 구입한다. 그리고 파리 거리에서 길을 헤맨다. 길을 헤매면서 몇 날 며칠을 지내려고 갔던 곳이다. 비록 그렇게 헤매는 동안 B에게는 태양빛의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잡지 루나 파크가 든 검은 비닐 봉지를 손에 덜렁덜렁 들고 거리를 걸을 때면 그런 이미지는 폐색된다. 마치 그 오래된 잡지(물론 잘 편집되었고, 헌책방에서 쌓인 먼지와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거의 새것처럼 보존되었다)가 그런 일식 상태를 야기하고 만들어낸 것처럼. B는 그 일식이 앙리 르페브르라는 것을 안다. 일식은 앙리 르페브르와 문학 사이의 관계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다. 일식은 르페브르와 글쓰기 사이의 관계다.


  오랜 시간 정처 없이 돌아다닌 후 B는 자신의 호텔로 돌아온다. 기분이 좋다. 휴식을 취한 것 같고 책을 읽고 싶어 한다. 바로 전, 루이 16세 광장의 벤치에서 공연히 르페브르의 그래픽을 해독해보려 했다. 그 문양은 난해해 보인다. 르페브르는 자신의 글자를 마치 풀잎이 흔들리는 것처럼 그린다. 글자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풀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목초지, 흩날리는 솔방울. 그것들을 관찰하면서(왜냐하면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이 그 글자들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B는 마치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청소년기, 남반구에서,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네잎클로버를 찾아다녔던, 사라진 시골 마을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서, 이 기억은 어쩌면 진짜 삶이 아니라, 실제로 어느 영화에서 봤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앙리 르페브르의 삶은 단순하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그는 1925년 마스뉘 생-장Masnuy Saint-Jean에서 태어나 1973년 브뤼셀에서 죽었다. 즉, 칠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해에 죽은 것이다. B는 1973년을 기억해보려 하지만 무용한 일이다. 그는 너무 많이 걸었고, 비록 쉬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피곤한 상태이기에,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B는 잠을 잘 수 없어서 뭔가 먹으러 나간다. 옷을 입고(그는 옷을 벗고 있었다. 비록 언제 옷을 벗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머리를 빗고 거리로 나간다. 에콜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가 앉은 테이블 옆에는 역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마주보며 웃었고, 함께 밖으로 나온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그녀를 초대한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말을 하고 B는 마치 커튼을 통해 그녀를 보는 것처럼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여자는 중구난방으로 말을 한다.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 뜨개질을 하는 노인, 구름의 움직임, 그리고 소음 – 물리학자에 의하면, 외부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소음이다. 소음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녀가 말한다, 죽음마저 소리가 없대요. 어느 순간, B는 대화를 계속하고자,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자신이 창녀라고 답한다. 아, 좋네요, B는 말한다. 하지만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한 것이다. 실제로는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여자는 결국 잠이 들었고, B는 <루나 파크>를 찾는다. 잡지는 침대 아래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다. 그는 앙리 르페브르를 읽는다. 그는 1925년에 태어나 1973년에 죽었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녹음이 짙은 벨기에의 시골 마을이었다. 이후 그의 아버지가 죽는다. 그의 어머니 줄리아 니스는 그가 18살에 재혼한다. 유쾌한 사람이었던 그의 의붓아버지는 그를 반 고흐라고 부른다. 반 고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당연하게도, 자신의 의붓아들을 놀리기 위해서였다. 르페브르는 독립하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함께 지낼 것이다. 그녀가 죽는 1973년 6월까지.


  어머니가 죽고 이삼 일 후 앙리의 시체가 그의 책상 옆에서 발견된다. 죽음의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 B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거리를 주시한다. 르페브르의 죽음 이후 15킬로그램의 원고와 그림이 남았다. 그의 자기작품목록에는 짧은 메모가 남아 있다. “출간할 만한” 텍스트는 별로 없다Trés peu de textes “publiables”. 사실상 르페브르는 생전에 “앙드레 뒤 부셰 시의 위상Phases de la Poésie d’Anderé du Bouchet”이라는 제목의 작업물만을 출간했을 뿐이다. 앙리 드마스뉘Henri Demasnuy라는 필명으로, 1962년 3월, 신테세스Synthèses 190호에. B는 르페브르가 드 마스뉘de Masnuy 생-장 마을에 있는 것을 상상한다. 16살이었던 그를 상상한다. 두 명뿐인 독일 군인들이 독일 군용 트럭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편지를 읽고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앙리 드마스뉘, 마스니의 앙리. B가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나 가야 해요, 그녀가 말한다, 그를 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며. 여기 있어도 돼, B가 별 기대 없이 말한다. 여자는 알겠다고도 안 된다고도 말하지 않지만 얼마 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이틀 동안 B는 파리 거리를 배회하기로 작심한다. 이따금 박물관 입구까지 가기는 하지만 절대 입장하지는 않는다. 어쩔 때는 영화관 입구까지 가서 오랫동안 영화 포스터를 살펴보고는 그대로 가버린다. 뒤적거리던 책을 구입해서는 절대 끝까지 읽지 않는다. 잘 모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랜 시간 식후 타임을 즐긴다. 파리가 아니라 시골 마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담배를 피우고 카모마일 차를 마시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만한 것도 없으면서.


  어느 날 아침, 두어 시간 자고 나서 B는 브뤼셀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곳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칠레 망명자 남자와 우간다 출신 여자의 흑인 딸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는 않기로 한다. 몇 시간 동안 브뤼셀 중심가를 돌아다닌 후 북부 지역을 향해 걸어간다. 호텔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거리에 자그마한 호텔이 나타날 때까지. 호텔 옆에는 메마른 땅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는데, 그 안에는 쓰레기와 함께 잡초가 자라고 있다. 맞은편에는 폭탄에 맞은 듯한 집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대부분 빈 집이다. 일부는 유리창이 깨져 있고 창닫개는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마치 바람이 그렇게 해놓은 것처럼. 하지만 이 거리엔 바람이 거의 없잖아, 자신의 방 창으로 밖을 내다보던 B는 생각한다. 또한 생각한다. 차를 한 대 빌려야겠어. 또 다시 생각한다. 운전을 할 줄 모르잖아. 이튿날 그는 친구를 보러 간다. 그녀의 이름은 M이고 현재 혼자 살고 있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만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신발은 벗고 있다. 그를 보고는 처음 몇 초 동안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내려 애쓴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녀는 B가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


  잠시 망설이다가 B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스페인어로 말한다. B라고 해. 그제야 M은 그를 기억해내고 미소 짓는다. 비록 그를 보게 되어 즐거워서 짓는 미소가 아니라 복잡함이 담긴 미소이기는 하지만. B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그녀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그가 뜻밖의 즐거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그런 복잡함이 담긴 미소였다. 어쨌거나 그를 집으로 들이고 마실거리를 대접한다. 얼마 동안 그들은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눈다. B가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그녀의 학업에 대해, 벨기에에서의 삶에 대해 묻는다. M은 비껴가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B의 건강이 어떤지, 책은 잘 나가는지, 스페인에서 잘 살고 있는지 묻는 방식으로 질문에 대답한다.


  마침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다. M은 그 침묵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스물다섯 즈음으로 키가 크고 날씬하다. 그녀의 눈은 녹색으로 그녀의 아버지의 눈 색깔을 쏙 빼닮았다. 심지어 M의 기미 또한, 아주 눈에 띄는데, 칠레 망명자인 아버지의 기미와 비슷하다. B는 오래 전에 그녀의 아버지와 만났다. 얼마나 오래 전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M이 두세 살이거나 그 무렵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간다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학위를 이수하지는 못했다), 친구들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돈 없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했다.


  잠시 동안 그는 이 세 명, M의 아버지와 M의 어머니와 두세 살 무렵의 M을 상상한다. 녹색 눈을 하고, 흔들리는 현수교에 에워싸인 그들을. 사실 그녀의 아버지와 아주 친하게 지낸 적은 없어, B는 생각한다. 실제로는 현수교도 없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녀의 집에서 나오기 전에 그는 자신이 머무는 호텔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날 밤 그는 어떤 여자를 찾으며 브뤼셀 중심가를 걸어다닌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이라고는 유령 같은 사람들, 마치 퇴근 시간이 미뤄진 듯한 관료와 은행 직원들뿐이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문을 열어줄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문지기는 젊고 마른 남자다. B는 그에게 팁을 주고 나서 어두운 계단을 따라 방으로 올라간다.


  이튿날 아침 M의 전화 소리에 잠을 깬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고 한다. 어디에서? B가 묻는다. 어디서든요, M이 말한다,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 어디든 가요. 옷을 입으면서 B는 르페브르의 어머니인 줄리아 니스를 생각한다. 그녀는 아들의 마지막 텍스트 일부에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여기에서 살았어, B는 생각한다, 브뤼셀에서, 이 지역의 어떤 집에서 살았어. 갑자기 일진광풍이 그의 머릿속을 가로지르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마을의 집들을 흐릿하게 만든다. 면도를 하고 나서 B는 창문 밖으로 이웃한 건물을 관찰한다. 전부 어제와 같다. 거리를 걷는 중년 여자는, 아마도 B보다 고작 몇 살 정도가 많아 보이는데, 텅 빈 쇼핑 카트를 끌고 있다. 몇 미터 앞에는 개 한 마리가 주둥이를 치켜든 채 멈춰서서 저금통 투입구 같은 째진 눈을 호텔 창문에 고정하고 있는데, 그 창문에서 아마 B가 그 개를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전부 어제와 같아, 하얀 셔츠에 검은 재킷과 검은 바지를 입으며 B는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M을 기다리러 호텔 로비로 내려간다.


  이게 뭐라고 생각해? 차에 올라, <루나 파크>에 있는 르페브르의 페이지를 가리키며 B가 M에게 묻는다. 포도송이 같은데요, M이 말한다. 뭐가 쓰여 있는지 알겠어? 아니오, M이 말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르페브르의 글자를 보더니 말한다. 어쩌면,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날 아침, 존재에 대해 말한 사람은, 사실 M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잘못의 연속이었다고, 굉장히 아팠다고 이야기한다(어디가 아팠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뉴욕으로의 여행은 지옥으로의 여행과 유사하다고 털어놓는다. M은 프랑스어가 섞인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얼굴은 긴 대화 시간 내내 무표정함을 지속한다. 이따금씩 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자신에게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어떤 것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서로군, B는 생각한다.


  둘은 로리앙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카페는 노틀담 이마쿨레의 교회 근처에 있고, 교회는 M이 잘 아는 듯한데, 마치 최근에 카톨릭으로 개종한 듯하다. 그 후 그녀는 자연 과학 박물관에 가자고 말한다. 박물관은 레오폴도 공원과 유럽 의회 옆에 있는데, B에게는 그것이 왠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근데 왜 모순적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M이 한마디 한다. 집에 가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해요. B는 어떤 박물관도 구경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M은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M에게 그 말을 하자 M은 폭소를 터뜨린다. 약에 취한 사람 같아, M이 말한다.


  M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B는 의자에 앉아 <루나 파크>들 되작거리지만 곧 지루해한다. <루나 파크>와 M의 작은 집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사진과 그림을 열중해서 보고, 이후 거실에 있는 유일한 책장을 본다. 책장엔 책이 많지 않고, 그나마도 스페인어 책은 별로 없다. 그중에서 M의 아버지의 책을 알아본다. 단언컨대 M은 결코 읽지 않을 책들. 정치 평론 몇 권, 쿠데타의 역사 한 권, 마푸체 부족에 대한 책 한 권. 이 책들을 보며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가벼운 떨림이 동반된다. 부드럽다고도, 또는 메스껍다고도, 혹은 어떤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징후라고도 할 수 있는 떨림이다. 곧 M이 거실에 나타난다, 아니, 차라리 거실을 통과한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그녀의 방에서 화장실이 틀림없는 문까지, 어쩌면 옷이 널려 있는 세탁실까지. B는 그녀가 반쯤 입은 상태거나 반쯤 벗은 상태로 거실을 가로지르는 걸 지켜본다. 이 장면에 더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래된 책들이, B로서는 어떤 신호처럼 느껴진다. 근데 어떤 신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름 끼치는 신호다.


  아파트에서 나왔을 때 M은 어두운 색 치마와 윗 단추가 몇 개 끌러진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무릎까지 오는 몸에 꽉 들어맞는 치마에, 가슴골이 보이는 블라우스다. 그리고 하이힐을 신어 B보다 최소한 2센티미터는 크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M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고, 차를 세우지 않은 채 어떤 건물의 정면을 가리킨다. 다섯 블럭 이상을 지나서야 B는 M의 어머니에 대해 이해한다. 그녀는 칠레인 망명자이자 과부이며, M이 가리켰던 건물에 살고 있다. M의 어머니에 대해 묻는 대신, 그가 원했던 대로, 자연 과학 같은 테마의 박물관에 가는 일엔 흥미가 없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가 좀 얄미워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미미하고, 박물관까지 M에게 계속 끌려간다.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무심한 기운 같은 것이 사라지지는 않다.


  거기서 더욱 놀라운 것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M은 B에게 입장료를 건넨 후 카페에서 그를 기다린다. 카푸치노 앞에 둔 신문을 읽으며, 우아하면서 동시에 고독해 보이는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다. (그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B는 그 모습을 보며 진실하다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어떤 나이듦을 느낀다. 이후 B는 로비로 들어가 어떤 전시관까지 가는데, 거기엔 물결 모양의 기계가 있다. M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B는 자리에 앉으며 생각한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린다. 가슴에 미세한 통증이 인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여기서는 피울 수 없다. 통증은 조금씩 더 커진다. B는 눈을 감는다. 기계의 실루엣은 가슴의 통증처럼 계속 움직인다. 이 기계는 기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이해할 수 없는 조각상 같다. 무를 향해 나아가는, 웃으면서 괴로워하는 인류의 행진 같다.


  박물관의 카페에 돌아왔을 때 M은 계속 다리를 꼬고 앉아 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신문을 보고 있다. 아마 구직 섹션일 것이다. B가 나타나자 M은 감추듯 신문을 덮는다. 베기네스Bégines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둘은 함께 식사한다. M은 음식에 입을 거의 대지 않는다. 말도 별로 없다.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함께 묘지에 가자는 것이다. 나 이 동네 자주 와요, 그녀가 말한다. B는 그녀를 보며 묘지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식당에서 나왔을 때, 묘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M은 대답하지 않는다. 차에 오르고 3분도 안 되어 그녀는 손으로(B가 보기엔 가늘고 우아한 손이다) 뒤 카레벨트Du Karreveld 성, 데몰렌베크Demolenbeek 묘지, 테니스 코트가 있는 스포츠 센터를 가리킨다. B는 웃는다. 그와 반대로 M의 얼굴은 여전히 냉담하게 굳어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웃고 있을 거야, B는 생각한다.


  오늘 밤엔 뭐할 거예요? 다시 호텔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묻는다. 글쎄, B가 말한다, 책을 읽겠지, 아마도. 잠깐 동안 B는, M이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날 밤 실제로 B는, 파리에 내팽개치고 오지 않은 소설들 중 하나를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덮어버리고는 침대 다리 쪽으로 책을 던져버린다. 그는 호텔에서 나온다. 한참 동안 목적지 없이 걷고 나서 유색 인종이 많은 지역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는 순간이고, 그 거리를 걸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다. 유색 인종이라는 말은 그가 결코 좋아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럼 어째서 그런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걸까? 흑인, 아시아인, 마그렙인, 이런 말은 괜찮아, 하지만 유색 인종은 아니잖아, 그는 생각한다. 잠시 후 그는 탑리스 바에 들어간다. 카밀레 차를 주문한다. 여자 종업원이 그를 보고 웃는다. 서른 살쯤 된 예쁜 여자로 금발에 키가 크다. B도 그녀를 보고 웃는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그는 웃으며 말한다. 여자가 카모마일 차를 그에게 내민다. 그날 밤 B는 흑인 여자와 잠을 잔다. 그 여자는 잠꼬대를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B가 기억하기로 원래 부드럽고 운율감이 있었지만, 잠꼬대를 하는 동안 걸걸하고 다급한 느낌이다. 마치 (B로서는 알 수 없는) 밤의 어느 순간에 여자의 성대가 변해버린 것 같다. 사실상 그를 깨운 것은 그 목소리다. 그에게는 마치 망치질하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여자가 단지 잠꼬대를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팔꿈치에 머리를 베고 잠시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가 그녀를 깨워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슨 꿈 꿨어? 그녀에게 묻는다. 여자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꿨다고 대답한다. 죽은 사람들은 평온하지, B는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생각한다. 여자는 마치 그의 생각을 곱씹어보는 듯하다가, 세상에 평온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반론한다. 지금 시대에도 없고, 아무튼 아무도 없어요, 여자는 확신에 가득차서 말한다. B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 대신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는 혼자다. 아침 식사를 거른다. 방에서 나가지 않고 책을 읽기로 마음먹는다. 청소 담당자가 침대 시트를 갈아줄지 물어보러 올 때까지 책을 읽는다. 로비에 앉아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M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은 뭐할 거냐고 묻는다. B가 뭐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M이 호텔로 그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날, B가 짐작한 것처럼, 그들은 다른 박물관에 들렀다가 어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식당 옆에는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아이들과 청소년들 여럿이 모여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여기에 얼마나 있을 거예요? M이 묻는다. 내일 떠날 생각이라고 B는 대답한다. 마스뉘 생-장으로 갈 거야, M이 어디로 갈지 묻기도 전에 그가 말한다. M은 그 지역이 벨기에의 어디쯤에 있는지 아는 바가 없다. 나도 몰라, B가 말한다. 많이 멀지 않으면 제가 차로 태워드릴 수도 있어요, M이 말한다. 거기에 친구는 좀 있어요? B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결국 그들은 호텔 문 앞에서 헤어지고, B는 약국이 보일 때까지 거리를 걷는다. 콘돔을 구입한다. 그러고 나서 전날 밤에 갔던 탑리스 바로 향하지만(그리고 도중에 여러 차례 길을 잃는다) 발견하지 못한다. 이튿날 도로가에 있는 식당에서 M과 아침 식사를 한다. M은 드문드문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슬플 때면, 차에 올라, 목적지를 명확하게 정해두지 않고 운전하기 시작한다. 단지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녀가 말한다, 브레멘에 도착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독일에 있다는 것만 알았죠. 아침에 브뤼셀에서 출발했다는 것만 알았어요. 그리고 이미 밤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했어? 대답을 추측하며 B가 묻는다. 몇 바퀴 돌다가 돌아갔죠, M이 말한다.


  마스뉘 생-장에서 그들은 암소들을 본다. 나무들. 휴경 중인 밭. 석면 시멘트로 된 헛간. 삼 층짜리 집들. B의 요청으로 M은 야채와 우편엽서를 팔고 있는 노파에게 줄리아 니스의 집이 어디인지 묻는다. 노파는 어깨를 으쓱한다. 하지만 그 후 웃음을 터뜨리더니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B는 그 이야기를 차창을 통해 듣는다. M과 노파 둘 다 손으로 제스처를 한다. 마치 시간이나 비에 대해 말하는 것 같군, B는 생각한다. 줄리아 니스의 집은 콜롱비에 거리에 있다. 넓고 손질이 안 된 정원과, 주차용으로 바뀐 캐노피가 있다. 집 벽은 노란 색이다. 오랫동안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잎이 무성해진 나무들이 집의 왼쪽 절반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쪽엔 창문이 없다. 노파가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아, M이 말한다, 이 집일 수도 있지만 다른 집일 수도 있어. B가 벨을 누른다. 집 안쪽에서 종소리 같은 것이 울린다. 잠시 후 15세 정도의 소녀가 나온다. 청바지를 입고 있고 머리는 젖은 상태다. M이 그녀에게, 여기에 줄리아 니스와 그의 아들 앙리가 사는 곳인지 묻는다. 소녀는 여기엔 마르토 씨네가 산다고 말한다. 언제부터? B가 묻는다. 오래 전부터요. 소녀가 말한다. 머리 감고 있었어? M이 묻는다. 염색하고 있었어요. 소녀가 말한다. B가 이해할 수 없는 짤막한 대화가 이어지고, 그러나 어느 순간, 울타리 쪽에서 하이힐을 신고 있는 M과, 맞은편에서 스키니진을 입고 있는 소녀가 어떤 그림의 주요 인물과 유사하게 보인다. 처음엔 평화롭고 조화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그들은 그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야기한다. 시간이 더 흐르고, 북쪽에서 남쪽 마을, 남쪽에서 북쪽 마을을 돌아다닌 후 그들은 도서관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간다. 여기에 마스니의 앙리가 책을 보러 왔을까? 불가능한 것 같은데. 도서관은 새로 만들어졌고 앙리 르페브르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도서관의 사용자임이 틀림없었다. 당신의 그 앙리와 지금 도서관 사이에 최소한 도서관이 두 개 더 있었어요, M이 말한다. 자기 나라의 공공 시설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저녁으로 B는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M은 샐러드를 먹지만 절반 정도를 남긴다. 나는 아저씨 친구가 죽었을 땐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M이 향수 어린 말투로 말한다. 친구는 아니었어, B가 말한다. 하지만 태어나긴 했잖아요, M이 농담조로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여행하고 있었어, B가 말한다.


  그 후, 그들이 식사하고 있는 식당은 텅 비어 창문 옆에 있는 테이블에 그들 둘만이 남아 있다. M은 <루나 파크> 2호를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멈춘다. 그 페이지엔 루나 파크 3호인지 4호인지(4호가 빛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에 실릴 작업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미래의 필자들 목록을 큰 목소리로 읽는다. 장-자크 아브라함스, 피에르트 베르소, 실바노 뷔소티, 윌리암 버로스, 존 케이지에서, 앙리 르페브르, 줄리아 니스와 소피 포돌스키에 이를 때까지. 전부 굉장히 친해진 것 같아요, M이 농담조로 웃으면서 말한다.


  모두 죽은 사람들이군, B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M이 더 이상 자주 웃지 않는 것이 어찌나 아쉬운지.


  넌 웃는 게 아주 예뻐, 그가 말한다. M이 그의 눈을 본다. 지금 저한테 작업거시는 거예요?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나, B가 중얼거린다.


  좀 더 시간이 기울어 그들은 식당에서 나와 차로 돌아간다. 이제 어디로 가요? M이 묻는다. 브뤼셀로 가야지, B가 말한다. M은 잠깐 생각하더니 그건 좋은 생각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국 시동을 켠다. 여기선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잖아, B가 말한다. 이 말은 돌아가는 여정 내내 그를 따라다닌다. 마치 유령 같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처럼.


  브뤼셀에 도착하자 B는 그날 아침에 나왔던 호텔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M에게 그것은 바보 같은 일로 보이는데, 자신의 집에 침대 형 소파가 있음에도 고작 몇 시간을 보내려고 돈을 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M의 집 옆에 정차시킨 채, 잠시 동안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결국 B는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내는 데 동의한다. 이튿날 아침 집에서 일찍 나와, 파리로 가는 첫 번째 열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브라질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채식 전용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새벽 세 시에 문을 닫는 식당이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나가는 손님이 된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M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한다. 잠깐 동안 B는 M이 자신의 전 생애를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M은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해, 뉴욕에 드나들었던 일에 대해, 불면의 나날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연인들이나 이전에 했던 일이나 광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M은 와인을 마시고 B는 이따금 담배를 피운다. 그들은 가끔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차창을 통해 차가 오고가는 것을 쳐다본다. 집에 도착해 M은 B가 침대 형 소파를 펴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B는 옷을 벗지 않은 채 마치 다른 행성의 언어로 쓰인 듯한 소설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그를 깨운 것은 M의 목소리다. 전날 밤의 그 창녀 목소리 같군, B는 생각한다, 잠꼬대를 하던 그 여자. 하지만 일어나서 M의 방으로 가 그녀의 악몽을 깨우고자 하는 의지를 모으기도 전에 그는 다시 잠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 그는 파리 행 열차를 탄다.

 

  생-자크 거리에 있는 호텔의 이전과 다른 방에 짐을 푼다. 초반 며칠 동안 그는 안드레 뒤 부셰의 어떤 책이라도 구해보고자 헌책방을 돌아다닌다. 어떤 책도 찾을 수 없다. 뒤 부셰는, 마스뉘의 앙리와 마찬가지로, 지도에서 사라졌다. 넷째 날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방으로 음식을 올려달라고 하지만 거의 먹지 않는다. 구입한 마지막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휴지통에 집어던진다. 잠을 자고 악몽을 꾸지만, 잠에서 깬 후 잠꼬대를 하지는 않았다고 확신한다. 다음 날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나서, 룩셈부르크 공원에 산책하러 나간다. 지하철을 타고 피갈레Pigalle에서 내린다. 라 브뤼예르La Bruyère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바랭Navarin 거리의 작은 호텔에서 창녀와 잠을 잔다. 그녀는 목덜미 쪽은 머리칼이 아주 짧지만 머리 위쪽은 아주 길다. 그녀는 자신이 4층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녀나 그녀의 친구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섹스를 하면서 여자는 농담을 던진다. B가 웃는다. 그 또한, 엉망진창의 프랑스어로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농담을 건넨다. 볼일이 끝나고 여자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B에게 샤워를 하고 싶은지 묻는다. B는 아니라고, 아침에 이미 샤워를 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그녀가 어떻게 샤워하는지 보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다.


  놀랄 것도 없이(최소한 그것을 엿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가 어떻게 가발을 벗어 좌변기 뚜껑에 올려두는지 목격한다. 그녀는 거의 빡빡머리였고, 숱이 많은 쪽 두피 위에 상대적으로 최근에 난 상처 두 개가 두드러진다. B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어쩌다 난 상처냐고 그녀에게 묻는다. 여자는 샤워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말을 듣지 못한다. B는 질문을 반복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나가지도 않는다. 의외로, 타일 바닥에 드러누워 샤워 커튼 반대편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바라본다. 평화로우면서도 체념한 상태로. 더 이상 가발도, 좌변기도, 담배를 들고 있는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밖으로 나오자 밤이었고 그들은 헤어진다. 이후 그는 걷기로 마음먹는다.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멈추지도 않는다. 몽마르트르Montmartre 묘지에서 퐁 루아얄까지Pont Royal,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는 길을 걷는다. 호텔에 도착해서 그는 거울을 본다. 두들겨 맞은 개를 보길 바랐지만 그가 본 것은 깡마르고, 산책으로 살짝 땀에 젖은 모습의 중년 남자이다. 그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눈을 찾고, 만나고, 피한다. 이튿날 아침 브뤼셀에 있는 M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나야, B가 말한다. 잘 지내요? M이 묻는다. 괜찮아, B가 말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만났어요? M이 묻는다. 아직 자고 있었던 게 틀림없군, B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말한다. 아니. M이 웃는다. 그녀의 웃음은 예쁘다. 왜 그렇게 그 사람을 신경 써요?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 묻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람한테 신경을 안 쓰거든, B가 말한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곧장 그는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해. 그리고 생각한다. M은 전화를 끊을 거야. 그는 이를 꽉 깨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의 얼굴에 경련을 일어난다. 하지만 M은 전화를 끊지 않는다.(끝)



* 원본 <Putas asesinas>, EDITORIAL ANAGRAMA,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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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4. 15:45


POST : Etcétera

댄스 카드 (CARNET DE BAILE)


<서울생활>이라는 곳에도 싣게 됐다.


http://seoulbal.com/2013/11/07/%EB%8C%84%EC%8A%A4-%EC%B9%B4%EB%93%9Ccarnet-de-baile-%EB%A1%9C%EB%B2%A0%EB%A5%B4%ED%86%A0-%EB%B3%BC%EB%9D%BC%EB%87%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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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네루다을 읽어주었다. 킬페에서, 카우케네스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2. 단 한 권의 책이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곡의 절망적인 노래』, 에디토리날 로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1961. 속표지에 네루다의 데생과 100만부 판매 기념판이라는 일러두기가 있었는데, 1961년에 『스무 편의 시』가 100만부 팔렸다는 걸까 아니면 네루다의 모든 출판물이 100만부 팔렸다는 걸까? 전자일까봐 걱정이다. 비록 두 가지 가능성 모두 심란하긴 마찬가지이지만, 이제 더 이상 실현 가능한 일도 아니다. 3. 책 두 번째 페이지에는 어머니의 이름 – 마리아 빅토리아 알바로스 플로레스 – 이 쓰여 있다. 얼핏 그 이름을 보면, 다른 모든 단서들과는 다르게, 거기에 그 이름을 쓴 사람은 어머니 본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버지의 글씨도 아니고, 내가 알 만한 그 누구의 글씨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몇 년에 걸쳐 점차 희미해지는 그 서명을 관찰한 후, 설령 유보적일지언정, 그것을 내 어머니가 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 1961년, 1962년에 어머니는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고, 서른다섯 살이 안 되었으며,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젊고 활기찼다. 5. 『스무 편의 시』, 나의 『스무 편의 시』는 오랫동안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처음엔 칠레 남부의 여러 마을들, 그러고 나서 멕시코시티의 여러 집들, 그 후 스페인의 세 도시. 6. 그 책은 물론 내 것이 아니었다. 7. 처음엔 어머니 것이었다. 그것을 누나에게 선물로 주었고, 누나가 히로나에서 멕시코로 떠날 때 다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누나가 남기고 간 책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과학소설들과 그때까지 나온 마니엘 푸이그 전집이었다. 내가 직접 누나에게 선물했던 책이었고,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7. 네루다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았다. 더욱이 『스무 편의 사랑의 시』는 아니었다! 8. 1968년에 우리 가족은 멕시코시티로 이주했다. 2년 후인 1970년에 나는 알레한드로 조도르프스키와 만났다. 그는 나에게 명성 있는 예술가의 화신이었다. 나는 어느 극장의 출구에서 그를 찾아냈다. (이셀라 베가와 함께 연출한 버전의 차라투스투라를 보고 나서였다.) 그에게 영화 연출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때부터 그의 집을 끈질기게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좋은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도로프스키는 나에게 담배를 매주 얼마나 피우는지 물었다. 충분히 피운다고, 오래 전부터 골초였다고 말했다. 조도로프스키는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에조 타카타가 하는 선 명상 수업에 등록하라고 말했다.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며칠 동안 에조 타카타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9. 선 명상 수업이 한창일 때 에조 타카타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일본인들의 대열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그는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수업에서 도망가려고 하는 학생들을 두들겨 팰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나무 몽둥이였다. 말하자면, 에조는 그 몽둥이를, 계속 다닐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예스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을 두들겨 팰 때 사용했던 것이다. 그때 발생하는 소리는 향 연기로 자욱해 희미해진 공간을 가득 채우곤 했다. 10. 하지만 나에게는 그 구타를 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고성을 지르며 돌발적으로 공격해왔다. 나는 입구 쪽 어떤 여자 옆에 있었고 에조는 그 방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다. 그가 눈을 감고 있으리라 짐작했고 내가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일본인은 내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고 결사적인 태세로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11. 아버지는 아마추어 복싱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그가 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곳은 칠레 남부 지역으로 한정되었다. 나는 권투하는 것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권투를 배웠다. 집에는 항상 권투 글러브가 있었다. 칠레에 있을 때도 그랬고 멕시코에 있을 때도 그랬다. 12. 에조 타카타 선생님이 고함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 때, 그는 아마 나를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본능적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몽둥이 찜질은 대개 제자들의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나는 근육이 경직된 상태가 아니었다. 단지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13. 누군가 당신을 공격한다면 당신은 방어하게 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17살 된 사내에겐. 특히 멕시코시티에선. 14. 조도로프스키에 따르면, 그가 에조 타카타에게 멕시코를 소개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타카타가 오악사카 밀림에서, 환각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 북아메리카 사람인 마약중독자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15. 그러거나 말거나, 타카타와 함께 한들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없었다. 16. 조도로프스키가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그가 칠레 지식인들에 대해 말하면서(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거기에 나를 포함시켰던 점이다. 그 때문에 나는 큰 자부심을 느꼈다. 비록 나에게 그런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눈곱만치도 없었다고 할지언정. 17. 어느 날 오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칠레 시인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니카노르 파라가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말했다. 그러고는 곧장 니카노르의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니카노르의 시, 그 후 마지막으로 또 다른 니카노르의 시를 암송했다. 조도로프스키는 암송 실력이 좋았지만 그 시들은 나에게 별다른 감명을 주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신경과민의 젊은이였고, 더불어 어리석으면서 거만하기까지 했다. 나는 칠레의 위대한 시인은, 의심의 여지없이, 파블로 네루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머지는 찌끄레기예요. 토론은 30분 동안 지속되었다. 조도로프스키는 구르디예프나, 크리슈나무르티, 헬레나 블라츠키의 이론에 대해 뽐낸 후, 키르케고르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그러고 나서 토포르와 아라발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했다. 니카노르가 어딘가로 가던 중에 자신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그가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말 속에서 치기어린 자부심이 전해졌고 그 다음부턴 작가들 대부분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18. 그가 썼던 글 중 어딘가에서 바타이유는 눈물이 의사소통의 궁극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범하거나 일반적으로 흘린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눈물이 부드럽게 볼을 타고 흘렀던 게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것처럼, 분출하는 듯,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모든 것을 물에 잠기게 할 듯 눈물을 흘렸다. 19. 조도로프스키의 집에서 나올 때 내가 더 이상 그의 집에 갈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그가 했던 말처럼 나를 슬프게 했으며, 나는 길거리에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또한 알게 된 것은, 이것은 아주 애매모호한 방식이었는데, 다시는 그와 같은 다정한 선생을, 하얀 장갑을 낀 도둑을, 완벽한 사기꾼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점이었다. 20. 하지만 내 행동에서 가장 이상했던 점은, 파블로 네루다 대해 내가 했던, 논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참한 옹호 – 어쨌거나 옹호는 옹호였다 – 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내가 읽은 네루다의 작품이라고는 『스무 편의 사랑의 노래』(당시에 이 시집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머러스하게 느껴졌다)와 『황혼Crepusculario』에 수록된 “작별인사Farewell”밖에 없었음에도 말이다. 촌스러움으로 최고 절정에 이른 시였음에도 그 시에 대한 나의 신실함은 무너지지 않았다. 21. 1971년에 바예호와 우이도브로, 마르틴 아단, 보르헤스, 오켄도 데 아마르, 파블로 데 로카, 길베르토 오웬, 로페스 벨라르데, 올리베리오 히론도를 읽었다. 물론 니카노르 파라도 읽었다. 심지어 파블로 네루다도 읽었다! 22. 당시에 친구로 지내던 멕시코 시인들이나, 보헤미안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바예호 빠와 네루다 빠로 나뉘었다. 물론 나는 파라 빠였다. 무덤덤하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23. 하지만 우리는 부모들을 살해해야만 했다. 시인은 천성적으로 고아이기에. 24. 1973년에 칠레로 다시 돌아왔다. 반복적인 입원으로 지연된, 대륙과 해양을 통과하는 긴 여행을 한 후였다. 나는 다양한 모습의 혁명을 목도했다. 머잖아 중앙아메리카를 집어삼킬 격렬한 폭풍은 이제 내 친구들의 시야에도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영화에 대해 대화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해 말했다. 25. 나는 1973년 8월에 칠레에 도착했다.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다. 내가 구입했던 첫 번째 시집은 니카노르 파라의 『두꺼운 작품Obra gruesa』이었다. 두 번째 시집은 『인공장치Artefactos』였는데 이 역시 파라의 작품이었다. 26.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는 즐거움은 한 달도 채 맛보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 나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우직한 파라 빠일 뿐이었다. 27. 어느 학회에 참석해 다양한 칠레 시인들을 보았다. 끔찍했다. 28. 9월 11일에는 내가 살던 동네의 유일한 활동 조직에 자원했다. 조직장은 공산주의 노동자로 약간 통통한 편에 우유부단한 성격이었지만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부인이 더 용감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목재 바닥의 자그마한 부엌에 모이곤 했다. 조직장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부엌 찬장에 놓인 책에 꽂혀 있었다. 많지는 않았는데 대부분 아버지가 읽던 것과 같은 가우초 소설이었다. 29. 9월 11일은 나에게 피가 흘러내리는 광경이면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30. 나는 텅빈 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암구호를 잊어버렸다. 내 동료들은 열다섯 살이거나 퇴직자거나 실직자였다. 31. 네루다가 죽었을 때 나는 삼촌들, 이모들, 사촌들과 함께 물첸에 있었다. 11월, 로스앤젤리스에서 콘셉시온으로 여행하던 중에 고속도로 단속반이 차를 세우더니 나를 죄수로 체포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거기서 바로 나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유치장에서 나는, 경찰서 수감소장이 젊은 경찰관과 창녀의 자식 같은 얼굴을 한 남자와(밀가루 푸대에서 반죽이 된 듯 허여멀건한 얼굴이었다) 콘셉시온 지부장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멕시코 테러리스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잠시 후에 말을 고쳤다. 외국인 테러리스트죠. 그는 나의 말투, 미국 달러, 티셔츠와 바지의 브랜드에 대해 언급했다. 32. 내 외증조부모들은 플로레스와 그라냐 가문이었는데, 그들은 부질없이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통제해보려 했다(비록 자기 자신을 통제할 능력조차 없었음에도). 그러므로 그들은 절제가 없다는 점에서 네루다주의자였다. 내 할아버지 로버트 알바로스 마르티는 대령이었고 남부의 여러 지역에서 군생활을 했다. 할아버지는 모호한 이유로 때이르게 퇴역하게 되었는데 이 점이 나에게 그가 네루다주의자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부계 혈통은 갈리시아와 카탈루냐 출신인데 비오-비오 지역에 자신들의 삶을 내려놓게 되었고, 그곳의 풍경이나 그들의 근면함을 봤을 때 그들은 네루다주의자였다. 33. 며칠 동안 콘셉시온에 수감되어 있다가 얼마 후 출감하게 되었다. 잔뜩 겁에 질렸던 게 무색하게도 그들은 날 고문하지 않았고, 내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먹을거리를 거의 주지 않았고, 밤에 덮을 이불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이 베풀어준 선의에 의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동틀 무렵에 그들이 다른 사람을 고문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기에 잘 수가 없었다. 읽을 거리도 없었다. 누군가 거기에 놔두고 간 영국 잡지만이 예외였다. 그 잡지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꼈던 것은, 시인 딜런 토마스의 소유였던 집에 대한 기사였다. 34. 두 명의 형사가 나를 수렁에서 꺼내주었다. 한 명은 로스 앤젤레스의 리세오 데 옴브레스에 있을 때의 전 동료였고, 나머지 한 명은 친구 페르난도 페르난데스였다. 그는 고작 나보다 한 살 많은 스물한 살이었음에도, 그의 냉정한 피가 칠레인들이 절박하고도 공허하게 닮고자 했던 이상적인 영국 신사의 이미지와 비교할 만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5. 1974년 1월에 칠레를 떠났고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36. 나와 같은 세대의 칠레인들은 용감했을까? 그렇다, 그들은 용감했다. 37. 나는 멕시코에서 MIR 당원인 한 여자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쥐를 질 속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고문을 당했다. 이 여자는 망명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멕시코시티로 떠나왔다. 칠레를 떠났음에도 그녀는 하루하루를 슬픔에 잠겨 보냈고 슬픔의 크기를 견디다 못해 죽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들은 이야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를 알지 못했다. 38. 이것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름 없이 박해 받고 탄압 당한 과테말라 동료들에 대해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던 이유는, 이야기가 흔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당한 칠레 여자가 파리에 당도했다. 이 칠레 여자 역시 MIR 당원이었고, 멕시코시티에서 죽은 여자와 같은 나이였으며, 같은 이유로, 그러니까 슬픔을 견디다 못해 죽고 말았다. 39. 시간이 흘러 스톡홀롬의 칠레 여자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젊었고, MIR의 전직 혹은 현직 당원이었으며 1973년 11월에 쥐를 이용한 같은 방식의 고문을 당했다. 그녀 또한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녀를 치료하던 의사들이 아연하게도, 그녀는 슬픔 때문에, 우울증 때문에 죽고 만 것이었다. 41. 이 익명의 칠레 여자는, 상습적으로 고문을 당하다가 죽은 여자는, 같은 인물일까 아니면 비록 같은 당원에 아름다움마저 유사하지만 세 명의 다른 여자일까?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같은 여자이고, 바예호의 시 “무더기Masa”에서처럼, 죽으면서 증식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죽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실제로 바예호의 시에서는 죽은 사람은 증식하지 않고, 애원하는 사람들, 죽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증식한다). 42. 소피 포돌스키라는 이름의 벨기에 시인이 있었다. 그녀는 1953년에 태어났고 1974년에 자살했으며 단 한 권의 책을 출판했다. 제목은 『모든 것이 허락되는 나라Le Pays où tout est permis』(몽포콩 리서치 센터, 1972년, 280페이지 필사본). 43. 랭보의 친구였던 제르망 누보(1852-1920)는 인생의 말년을 방랑자처럼 걸인처럼 지냈다. 그는 자신을 위밀리라고 부르고(1910년에 『위밀리 시집』을 출판) 여러 교회의 입구에서 살았다. 44.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시인이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45. 한번은 내가 좋아하는 젊은 칠레 시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쩌면 “젊은”이 아니라 “현존하는”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로드리고 리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현존하는 시인은 아니었는데(하지만 젊은 건 맞다, 우리 모두보다 훨씬 젊다) 왜냐하면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46. 칠레 젊은 시인들의 댄스 커플은 다음과 같다. 기하학적인 네루다 파와 잔인한 우이도브로 파, 유머러스한 미스트랄 파와 겸손한 데 로카 파, 뼈 있는 니카노르 파라 파와 볼 줄 아는 엔리케 린 파. 47. 고백할 게 있다. 나는 배알이 꼴려서 네루다의 자서전을 읽을 수 없다. 어찌나 모순이 넘쳐나던지. 자신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어찌나 용을 썼던지. 어찌나 아량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고 유머감각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던지. 48. 이미 지나가버리긴 했지만 내 인생에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집 복도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보이던 때였다. 히틀러는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열린 내 방 문 앞을 지나갈 때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악마라고 생각했고(그것 말고 무엇일 수 있겠는가?), 나의 광기가 갈 데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49. 15일이 지난 후 히틀러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나는 이 다음에 나타날 인물이 스탈린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나타나지 않았다. 50. 내 복도에 등장한 인물은 네루다였다. 그는 히틀러처럼 15일 동안 있지 않았다. 3일만 있었다. 상당히 짧은 시간이었고, 내 우울함이 줄어들고 있다는 징후였다. 51. 그 대신, 네루다는 시끄러웠다. (히틀러가 대양 위를 표류하는 유빙처럼 조용했던 반면) 그는 끊임없이 투덜댔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으며 양손을 쭉 펼치고는 (그 차가운 유럽의) 복도의 공기를 만족스레 들이마셨다. 첫째 밤에 보였던 그의 병든 손짓과 거지 같은 모습은 조금씩 변해가다가 결국, 그 유령은 한껏 멋부리는 듯이, 다르게 말하자면, 예의바르고 위엄 있고 엄숙한 시인의 모습처럼 보였다. 52.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밤, 네루다는 내 문 앞을 지나가다 멈춰 서서 나를 보았고(히틀러는 절대 나를 보지 않았다), 이건 엄청나게 이상한 일인데, 나에게 말을 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어서 손을 움직여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낼 뿐이었고 끝내는,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사라지기 직전,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마치 모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에게 말하기라도 하듯이?). 53. 오래 전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혁명을 시도하려다가 죽은 아르헨티나의 삼형제를 알고 있다. 첫째와 둘째는 서로를 배신 했고 곧바로 막내를 배신 했다. 막내는 그 어떤 배신도 저지르지 않은 채, 사람들이 말하기를, 형들의 이름을 외치며 죽었다고 했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이 가장 그럴 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54. 스페인 사자의 아들들이지, 선천적 낙관주의자 루벤 다리오가 말했다. 월트 휘트먼, 호세 마르티, 비올레타 파라의 아들들은, 가죽이 벗겨지고 잊혀진 채, 공동 묘지에, 바다 속 깊은 곳에, 그들의 뼈는 트로이인의 운명을 띤 채 뒤섞여 살아남은 자들을 두렵게 한다. 55. 요즘은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스페인을 방문한 국제 여단의 퇴역 군인들, 주먹을 치켜든 채 버스에서 내리는 귀여운 노인네들을 보면서. 원래는 40,000명에 이르렀으나 현재 스페인으로 돌아온 사람은 350명 남짓에 불과하다. 56. 벨트란 모랄레스에 대해 생각하고, 로드리고 리라에 대해 생각하고, 마리오 산티아고에 대해 생각하고, 레이날도 아레나스에 대해 생각한다. 고문을 받다가 죽은 시인들에 대해 생각하고, 에이즈에 걸리거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라틴아메리카라는 천국을 꿈꾸다가 라틴아메리카라는 지옥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수치심과 무력함의 구렁텅이에서 좌파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준 작품들에 대해 생각한다. 57. 공허하고 날카로운 우리들의 얼굴에 대해 생각하고, 이사크 바벨의 잔인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58. 내가 어른이 되면 시너지 효과를 받는 네루다주의자가 되고 싶다. 59. 잠들기 전에 해보는 질문들. 어째서 네루다는 카프카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네루다는 릴케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네루다는 데 로카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60. 앙리 바르뷔스는 좋아했을까? 모든 것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숄로호프도. 그리고 알베르티도. 그리고 옥타비오 파스도. 연옥으로 함께 여행 가면 좋을 만한 기이한 동료들. 61. 하지만 그는 사랑에 대한 시를 쓰곤 했던 엘뤼아르 역시 좋아했다. 62. 만약 네루다가 코카인 중독자이거나 헤로인 중독자였다면, 만약 그가 1936년에 마드리드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면, 만약 그가 로르카의 연인이고 로르카가 죽은 후 자살해버렸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약 네루다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물론 실제로 진면목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63. 우리가 <네루다의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자신의 자식들을 집어삼키려는 우골리노가 잠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64.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단지 배가 고팠기 때문이고 죽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65. 그는 자식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다. 66. 우리는 무릎에 피를 흘리고 허파는 뻥 뚫렸으며 눈물 가득한 눈망울을 한 채, 십자가를 향해, 네루다를 향해 돌아가기라도 하는 걸가? 67. 우리의 이름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빛날 것이고 칠레 문학이라 불리는 망상의 문학 위에서 계속해서 활공을 펼칠 것이다. 68. 그 후 모든 시인들은 교도소나 정신병원이라 불리는 예술 공동체에서 살아가게 되겠지. 69. 우리의 망상의 집, 우리가 함께 살 집.


* 원본 <Putas asesinas>, EDITORIAL ANAGRAMA,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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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4. 15:36


POST : Entre paréntesis

서문: 자기소개

 

  내가 태어난 해는 1953년이다. 스탈린과 딜런 토마스가 죽은 해이기도 하다. 1973년엔 정치범들을 잡아둔 체육관에서 8일 동안 억류되었다. 내 조국에서 쿠테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에 의해서였다. 그곳에서 웨일즈에 있는 딜런 토마스의 집 사진이 수록된 영국 잡지를 발견했다. 나는 딜런 토마스가 가난하게 죽었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은 화려해 보였다. 숲 속에 있는 마법의 집처럼 보였다. 스탈린에 대한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스탈린과 딜런 토마스가 나오는 꿈을 꿨는데 둘 다 시우닷 데 메히코에 있는 바에 있었다. 그들은 팔씨름 용으로 만들어둔 작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팔씨름은 하지 않은 채 누가 술을 더 많이 마시는지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웨일즈의 시인은 위스키를, 소비에트의 독재자는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꿈이 전개되는 중에, 점점 더 불쾌히지고 점점 더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이것이 내 출생에 관한 이야기다. 내 책들에 관해서라면, 다섯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단편집, 일곱 권의 소설을 펴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나의 시를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그 편이 나을 것이다. 나의 산문 책들은 충실한 독자가 일부 있다. 어쩌면 분에 넘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리슨의 제자가 조이스의 광신자에게 하는 충고>(1984, 안토니오 가르시아 포르타와 공동 작업)에선 폭력에 대해 말한다. <아이스 링크>(1993)에선 아름다움 - 지속되는 일도 거의 없고, 결국엔 재앙으로 끝난다 - 에 대해서 말한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에선 문학 행위의 숭고함과 비참함에 대해 말한다. <먼 별>(1996)에선 절대 악을 향해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 <야만스러운 탐정들>(1998)에선 모험 - 항상 예상이 빗나간다 - 에 대해 말한다. <부적>(1999)에선 그리스인의 기질을 지닌 우루과이 여성의 정열적인 목소리를 독자에게 전하려고 한다. 세 번째 소설인 <므시외 팽>은 건너뛰겠다.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록 20년 이상 유럽에서 살고 있지만 내 유일한 국적은 칠레이고, 이런 점은 내가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를 가슴 깊이 느끼는 데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 개의 국가에서 살았다. 칠레, 멕시코, 그리고 스페인. 나는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을 해보았다. 조금이라도 명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세네 가지 일만 빼고 말이다. 나의 아내는 카롤리나 로페즈이고 아들은 라우타로 볼라뇨이다. (* 이 텍스트가 편집부에 넘어온 뒤, 2001년 3월에, 그들의 둘째 딸 알렉산드라 볼라뇨가 태어났다.) 둘 다 카탈루냐 출신이다. 카탈루냐에서 나는 어려운 예술의 관대함에 대해 배웠다. 나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9-20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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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31. 16:49


POST : Etcétera

고메스 팔라시오 (GÓMEZ PALACIO)


# (아마도) 올해 안에 번역 출간될 볼라뇨의 단편집 PUTAS ASESINAS(살인 창녀들)에 수록된 짧은 단편 (27~36p). 책이 나오면 비공개로 돌리겠음. 뭐라 안 하면 그냥 내버려두고... 보기 편하게 한 문단 씩 띄었음. 잘못 해석한 부분 알려주시면 성은이 망극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거의 1년 만에 블로그 업데이트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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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시기에 고메스 팔라시오에 갔다. 스물세 살이었고 멕시코에 며칠이나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국립 예술원(* 베야스 아르테스)에서 일하던 친구 몬테레로는, 고메스 팔라시오 - 끔찍한 이름의 도시다 - 에서 하는 문학 교실의 일자리를 나에게 얻어주었다. 그러니까 그 일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국립 예술원이 그 지역 여러 곳에 마련해둔 문학 교실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우선 북쪽에서 며칠 쉬어, 몬테레로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고메스 팔라시오에 일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모든 걸 잊는 거지. 그의 제안을 왜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메스 팔라시오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멕시코 북부의 그 어떤 절망적인 동네에서도 문학 교실을 맡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만원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해 강의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산 루이스 포토시에 있었고 아과스칼리엔테 있었고 과나후아토에 있었고 레온에 있었다. 도시 이름들은 떠오르는 대로 나열했을 뿐이고, 어떤 도시에 처음 갔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러고 나서 토레온에 있었고 살티요에 있었다. 두랑고에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메스 팔라시오에 도착했고 나는 국립 예술원을 방문해 나의 학생들이 될 사람들을 만났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떨었다. 강의 담당자는 눈이 튀어나왔고 땅딸막한 키의 중년 여자로 멕시코 국화 무늬가 찍혀 있는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도시 외각에 있는 어느 모텔에 내 숙소를 마련해주었다. 어느 곳에도 다다르지 않는 도로의 가운데에 있는 공포스러운 모텔이었다. 


  오전 중에 그녀가 직접 나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하늘색의 커다란 자동차가 있었고 굉장히 거칠게 운전했다. 비록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리 나쁘지 않은 운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토매틱 자동차였고, 그녀는 가까스로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항상 처음으로 하는 것은 도로변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었다. 내 숙소에서 먼 곳에 있어 희미하게 보이는, 노랗고 파란 지평선에 붉게 융기한 레스토랑. 우리는 오렌지 주스와 멕시코 식 스크램블 에그를 먹고 나서 이런저런 차를 마셨다. 식사 비용은 담당자가 (아마도) 국립 예술원 카드로 지불했다. 현금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후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북쪽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국립 예술원에서 후원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자신의 시집에 대해서도, 시 창작은 물론이거니와 그 일이 수반하는 고통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발리(* 볼라뇨가 즐겨 피우던 담배)를 피워댔다. 그리고 창문 너머의 도로를 보았고 내 인생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생각했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가 탑승한 후 고메스 팔라시오에 있는 국립 예술원 본부까지 이동했다. 본부는 파티오를 빼면 아무 매력 없는 2층짜리 건물이었다. 파티오엔 세 그루의 나무와 망가진 정원뿐이었다. 미술, 음악, 문학을 공부하는, 좀비처럼 우글거리는 청소년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정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그 파티오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두 번째 봤을 때 떨리기 시작했다. 저 모든 게 아무 의미 없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 의미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아마 당시엔 필연적으로 보이는 의미에 혼란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지 초조했던 것일 수도 있다.


  밤마다 잠들기가 어려웠다. 악몽을 꿨다. 침대에 눕기 전 숙소 출입문과 창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점검했다. 나는 목이 말랐고 유일한 해결책은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 일어나 욕실에 가서 컵에 물을 받아 마셨다. 그렇게 일어난 김에 다시 한 번 출입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지 확인했다. 이따금 나의 두려움에 대해 잊어버린 채 창문 옆에서 밤의 사막을 지켜보았다. 그 후 침대로 돌아가 눈을 감아보지만 물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다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소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일어나서 재차 숙소 문단속을 했고 사막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북쪽이나 남쪽으로 향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아니면 창문을 통해 밤의 어두움을 지켜보았다. 새벽녘까지 그러다가 결국 몇 시간 잠들 수 있었지만 많아야 두세 시간이었다.


  어느 날 아침 담당자와 아침 식사를 하는데 그녀가 내 눈이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잠을 별로 못 자서 그럴 거예요, 라고 말했다. 네, 빨갛게 충혈됐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주제를 바꾸었다. 그날 오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내가 운전해도 되는지 그녀가 물었다. 운전할 줄 몰라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도로가에 정차했다. 냉동 트럭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나는 트럭의 하얀 표면에 있는 커다랗고 파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과부 파디야의 고기>. 트럭은 몬테레이에서 왔고, 트럭 운전수는 우리를 관심 있게 보았다. 나로선 도가 지나친 관심처럼 여겨졌다. 강의 담당자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당신이 운전석에 앉아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핸들을 잡고 있는 동안 그녀는 차 앞쪽으로 돌았다. 그러고 나서 보조석에 앉아 가자고 말했다.


  나는 숙소와 연결되어 있는 고메스 팔라시오의 회색 라인을 따라 오랫동안 운전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강의 담당자를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좀 더 운전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 우리 둘은 조용히 도로를 바라보았다. 숙소를 지나쳤을 즈음 그녀는 자신의 시와 직업, 배려심이 부족한 남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끊기자 그녀는 라디오카세트를 켜서 란체라 노래 테이프를 넣었다.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오케스트라의 앞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였다. 내 친구예요, 강의 담당자가 말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요? 내가 물었다. 이 가수가 나랑 친한 친구라고요, 담당자가 말했다. 아. 두랑고 출신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 거기 머무른 적 있죠, 그렇죠? 네, 두랑고에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 그럼 문학 교실은 어때요? 여기보다 안 좋아요, 나는 예의상 그렇게 말했다. 비록 그녀는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친구는 두랑고 출신이지만 시우닷 후아레스에서 살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가끔씩 이 친구는 어머니를 보려고 자기 고향에 가요. 그리고 나에게 전화하죠. 그럼 난 시간을 내서 두랑고로 가서는 이 친구와 함께 며칠 보내요. 좋군요, 나는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친구 방에서 잠을 자죠.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의 음반을 듣기도 해요. 어쩔 때는 둘 다 주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요. 종종 라 레갈라다라는 비스킷을 가지고 갈 때가 있어요. 비스킷 중에서 이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거죠. 커피를 마시면서 비스킷을 먹어요. 우리는 열다섯 살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가장 친한친구죠. 


  나는 지평선 끝에서 산 사이로 사라지는 도로를 보았다. 동쪽에서 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의 사막은 어떤 색일까? 며칠 후 나는 숙소에서 자문해보았다. 수사적이면서 멍청한 물음이었다. 질문 속엔 내 미래가 함축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나의 고통을 버틸 만한 베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오후 고메스 팔라시오의 문학 교실에서 한 청년이 나에게 왜 시를 쓰는지,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물어왔다. 강의 담당자는 부재중이었다. 교실 안엔 다섯 명이 있었는데 학생은 그들이 전부였다. 남자가 네 명이었고 여자가 한 명이었다. 그 중 남자 두 명은 굉장히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키가 작고 말랐으며 다소 저속한 옷을 입고 있었다. 질문을 한 남자는 대학생이지만 공부하는 대신 (멕시코에서 가장 크고 아마도 유일한) 비누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머지 중 한 명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종업원이었다. 남은 둘은 학생이었고 여자는 공부도 일도 하지 않았다. 


  우연이지, 나는 그에게 답했다. 잠시 동안 우리 여섯 명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고메스 팔라시오에서 일할 가능성, 여기서 영원히 살 가능성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았다. 미술을 공부하는 두 명의 여학생이 파티오에 보였다. 그들은 예뻐 보였다. 운이 좋으면 둘 중 한 명과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 중 더 예쁜 사람은 역시나 다소 진부하게 보였다. 나는 오랜 연애와 그 결말을 상상해보았다. 어둡고 선선한 집과 식물로 가득한 정원을 상상했다. 그럼 언제까지 쓸 생각이에요? 비누를 만드는 남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든 대답할 수 있었지만 나는 간단한 쪽을 선택했다. 모르겠어. 그럼 학생은? 저는 시가 저를 훨씬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그러니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는 자신감과 단호함을 숨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모호하고 의욕만 가득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고 나서 비누 노동자를 보았다. 지금의 그가 아니라 열다섯 살이나 열두 살 때의 그를. 돌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하늘 아래의 고메스 팔라시오 교외 지역을 싸돌아다니고 있을 그를. 그리고 그의 동료들 또한 보였다.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그 후 우리는 시를 읽었다. 그들 중 재능이 있는 사람은 여자가 유일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가 교실에서 나왔을 때, 강의 담당자는 두랑고 주의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 둘과 함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이 경찰이며 나를 잡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나섰다. 몸이 마른 여학생은 남학생 한 명과 함께 떠났고 나머지 학생들 셋은 각자 떨어져서 갔다. 나는 그들이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의 복도를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 건물 입구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마치 그들 중 한 명에게 뭔가 말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나는 고메스 팔라시오 거리의 양쪽 끝에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 강의 담당자가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야.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도로는 더 이상 직선으로 뻗어 있지 않았다. 백미러를 통해 우리 뒤에 남겨진 도시에 서 있는 거대한 벽을 보았다. 밤이라는 걸 다시 인식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디오카세트에선 그 여자가수가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멕시코 북부의 잊혀진 마을에 대한 노래였다. 그곳에선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다. 그녀만 예외였다. 강의 담당자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울음은 조용했고 위엄이 있었으나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내 눈은 도로에서 1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 담당자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헤드라이트를 켜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운전했다. 


  자동차 라이트 켜라고요, 그녀가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자동차 계기판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그녀 스스로 불을 켰다. 속도를 줄여요,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여자가수가 자기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부르고 있었다. 굉장히 슬픈 노래예요,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자동차를 도로가에 주차시켰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낮은 아니었다. 내 주변의 땅들, 도로가 사라지는 곳에 있는 산들은 어두운 노란 빛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색이었다. 그 빛은(하지만 빛이 아니라 단지 색일 뿐이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영원할 수 있는, 무거운 무언가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리를 쭉 뻗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나는 엿 먹으라는 제스쳐를 했다. 어쩌면 제스처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엿 먹으라고 소리쳤을 것이고, 운전자는 나를 보았거나 내가 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지금 이야기의 거의 모든 것처럼,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그에 대해 생각했을 때 눈에 보이는 유일한 것은, 그의 백미러에 비친 얼어붙은 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말랐고, 재킷을 입고 있고, 아주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안경이었다. 


  그 차는 몇 미터 더 가서 서더니 잠잠해졌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고, 후진하지도 않았으며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우리가 지금 어떤 식으로든 공유하고 있는 공간을 부풀리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강의 담당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창문을 내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녀의 눈이 이전보다 훨씬 더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있네요, 라고 말하고 그녀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녀가 비워둔 보조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담당자가 열이 있기라도 한 듯 좌석은 따뜻하고 축축했다. 창문을 통해 한 사람의 실루엣을, 그의 목덜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우리처럼, 산을 향해 뱀처럼 굽어들기 시작하는 도로의 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남편이에요, 멈춰 있는 차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강의 담당자가 말했다.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테이프 뒷면을 카세트에 넣고 볼륨을 키웠다. 내 친구는 가끔 잘 모르는 도시를 돌아다닐 때면 전화하곤 해요, 그녀가 말했다. 한 번은 시우닷 마데로에서 전화한 적도 있어요. 밤새 석유 노조 지부에서 노래 불렀던 때죠. 그리고 새벽 네 시에 전화한 거예요. 레이노사에서 전화한 적도 있어요. 좋네요, 내가 말했다. 아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냥 전화만 하는 거예요. 가끔 그런 게 필요하니까요. 내 남편이 받으면 전화를 끊고요. 


  잠시 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손에 수화기를 든 담당자의 남편을 상상했다.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누구세요, 그러면 전화 끊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 역시 거의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놓는다. 나는 담당자에게, 차에서 내리는 게 좋을지 앞에 있는 차 운전사에게 가서 뭔가 얘기하는 게 좋을지 물어보았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성적인 대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살짝 넋이 나간 대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 앞으로 뭘 할 것 같은지, 진짜 남편이 맞는지 물었다. 우리가 갈 때까지 계속 여기에 있을 거예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는 게 좋겠네요, 내가 말했다. 강의 담당자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했던 유일한 것은, 비록 훨씬 나중에 짐작한 것이긴 하지만, 눈을 감은 채 두랑고의 그녀 친구가 부루는 노래를 문자 그대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앞에 서 있던 자동차 옆을 천천히 지나쳐 몇 미터 더 나아갔다. 나는 창문을 통해 보았다. 그 순간 운전사는 몸을 틀고 있어서 등밖에 볼 수 없었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당신 남편 확실해요? 언덕 쪽으로 그 차가 사라졌을 때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닌 줄 알았어요. 나도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차는 남편 것처럼 보였는데, 그녀가 숨넘어갈 듯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아닌 것 같았어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차 번호판을 바꾼 게 아니라면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언덕에서 출발해 사막으로 접어들었다. 북쪽이나 고메스 팔라시오 방향으로 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번쩍이는 넓은 평원이었다. 이미 밤이었다. 


  보세요, 우리는 아주 특별한 곳에 도착할 거예요, 담당자가 말했다. 아주 특별한, 이라는 표현은 그녀가 사용한 말이었다. 


  여기를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예요. 차는 도로에서 벗어나 휴게소 같은 곳에 멈췄다. 실제로는 휴게소도 뭐도 아닌 단순한 땅, 차를 주차시키기 위한 넓은 공터였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였다. 마을이나 레스토랑에서 나는 불빛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담당자가 어떤 애매모호한 지점을 가리켰다. 아까 우리가 지나왔던, 대략 5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 구간이었다. 심지어 내가 좀 더 잘 보게 하기 위해, 그녀는 앞 창에 있던 자동차 커튼(?)을 옆으로 치웠다. 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곡선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 그 불빛들을 보았다. 보여요? 담당자가 물었다. 네, 빛이네요, 내가 대답했다. 담당자는 나를 보았다. 그녀의 부리부리한 눈은, 두랑고 주나 고메스 팔라시오 주변 황량한 지역에 있는 작은 동물의 눈처럼 번쩍거렸다. 이후 나는 다시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에는 단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 모르는 레스토랑이나 마을에서 나는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갔고, 자동차 불빛들이 느리지만 강렬하게, 그 공간을 가르고 있는 게 보였다. 


  느리지만 강렬한 불빛은, 그러나 더 이상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와 운송 트럭이 그 장소를 지나가고 몇 초 후에, 나는 그 빛이 어떻게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지 보았다. 공기에 매달린 채, 쉼 호흡을 하는 것 같은 녹색 불빛이, 사막 가운데에서 숨 쉬고 살아 있는 부분들에 의해,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것처럼 움직였다. 바다를 닮은, 바다처럼 움직이는 빛이었다. 하지만 땅의 유약함은, 경이적이면서도 고독한 녹색의 파도를 보존하고 있었다. 커브길에는 무언가, 간판이라든지, 버려진 건물의 지붕이라든지, 길게 뻗은 거대한 플라스틱, 만들어진 게 분명한 플라스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나, 우리 앞 먼 곳에, 마치 꿈이나 기적처럼 나타난 불빛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얼마 후 강의 담당자는 차를 출발시켰다. 한 바퀴 뺑 돌아 우리는 모텔로 돌아갔다.
  이튿날 나는 멕시코시티로 떠났다. 모텔에 도착했을 때 담당자는 차에서 내려 잠시 배웅해주었다. 내 방에 도착하기 전, 그녀는 손을 내밀며 작별인사를 했다. 당신이 내 실수를 용서해줄 거란 걸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결국 둘 다 시 독자잖아요. 나는 그녀가 우리 둘 다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방에 들어와 불을 켰다. 재킷을 벗고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창 쪽으로 다가갔다. 모텔 주차장에는 아직 그녀의 차가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사막의 바람이 얼굴 가득 느껴졌다. 자동차는 비어 있었다. 조금 더 멀리, 도로 가까이에서 있는 그녀를, 마치 강이나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팔을 약간 들고 있었다. 마치 공기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혹은 낭송을 한다든지. 아니면 다시 아이가 된 것처럼 조각상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새벽이 되어 그녀가 다시 날 찾으러 왔다. 그녀는 버스 정류소까지 나와 동행했다. 결국 문학 교실 일자리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는지 그녀가 물었다. 나는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것도 괜찮다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포옹’이라고 했다. 나는 몸을 기울여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가 앉은 버스 좌석은 인도 반대편에 있어서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다만 희미하게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거기 서서 버스를 보고 있거나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어쨌거나 나는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다른 손님들이 버스 복도로 지나다녔고 그들이 다른 쪽 좌석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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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2. 17:04


POST : Entre paréntesis

야곱의 사다리가 쓰인 페이지 (Hojas Escritas en la Escalera de Jacob)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사들이는 걸 좋아한다. 이미 읽었지만 현재 서가에 없는 책들 중에서 말이다. 알퐁스 도데나 빅토르 위고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나는 자문한다. 이 책들로 무얼 했는지, 책들을 어떻게 잃어버렸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다른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이미 읽은 책인데 왜 소장하고 싶어 할까. 읽는 것이야말로 책들을 영원히 소유하는 방법인데 말이다. 그럴싸한 유일한 대답은 내 아이들을 위해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만적인 답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책을 찾아서 집을 나서야 한다.


 여전히 <죄와 벌> 옛날 판본이 생각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토르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 책이었다. 펄프 픽션의 본보기와도 같은 책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저렴한 책이었는데 버스정류소에서인지 아니면 새벽 네 시까지 영업하는 카페에서인지 잃어버렸다. 난 그 책으로 뭘 했을까? 모르겠다. 아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자마자 책의 중요성에 대해 망각했고, 이후 어딘가에서 책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당시엔 지금 책을 그러모으는 것처럼 책을 모아두지 않았다. 어쨌거나 난 그 책을 아주 어렸을 때 보았고 어느 곳에서든 라스콜리니코프를 잊을 수가 없다.


 페트뤼스 보렐이나 토머스 드 퀸시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보들레르(나는 열 종 이상의 <악의 꽃>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나 말라르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나 아르헨티나의 이히투르Igitur 옛날 판본을 다시 구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랭보에 관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면 최소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로트레아몽에 대해서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책 또한 잃어버렸다.


 그런 판본들이나 비슷한 판본을 찾는 건, 같은 폰트에 같은 레이아웃, 같은 표지, 어둡거나 밝은 신택스를 찾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젊은 시절, 가난하고 부주의하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비록 엄밀하게 같은 판본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마치 엘 도라도El Dorado의 금광을 찾으러 플로리다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부담을 진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리하여, 이것은 내가 책을 구하려고 하는 한 방식인데, 헌책방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렸거나 안 좋은 순간에 판매된 책 더미를 책장 귀퉁이에서 뒤적이기도 한다. 30년도 더 전에, 다른 대륙에서 잃어버렸던 책들을 말이다. 희망과 의욕에 차서, 자신이 처음으로 잃어버린 책을 찾는 사람의 불운한 기색을 띤 채로. 앞으로 안 읽을 책을 만나는 경우, 이미 그 책을 지칠 때까지 읽었기 때문이다, 땅에 묻어둔 돈을 탐욕스럽게 쓰다듬는 것처럼 그 책들을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책은 탐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비록 돈과 관련이 있는 건 맞지만. 책은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엠빠나다 하나 더 주세요! 행복한 2003년 되시길! 음악을 틀어주시오 주인장!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221-222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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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4. 12:19


POST : Entre paréntesis

보르헤스와 파라셀수스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처럼, 보르헤스는 무한하다. 그의 가장 덜 알려진 책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의 기억](1983)은 네 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세 편은 이미 다른 출판물을 통해 선보였고 추가된 한 편이 책의 제목을 차지한다. 이 책에서 독자는 "파라셀수스의 장미"라는 아주 간결하게 진행되는 짧은 텍스트를 만날 수 있고 (다시) 읽을 수 있다. 파라셀수스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파라셀수스를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다. 이 단편소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시간과 조응하는 어떤 무력함이 서술된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방문. 해가 질 무렵이며 파라셀수스는 피곤한 상태이고 굴뚝에서는 미약한 불이 연소되고 있다. 결국 해가 지고 꾸벅꾸벅 졸던 파라셀수스는 문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제자가 되길 원하는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소설의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두 개의 방이 딸려 있는 자신의 지하 작업실에서, 파라셀수스는 자신의 신에게, 불특정한 자신의 신에게, 그러니까 그 어떤 신에게든 기도하고 있다. 부디 제자를 보내달라고." 그리고 아주 느즈막한 시간에, 그 제자가 마침내 도착한다. 그는 파라셀수스에게 금화가 가득한 자루와 장미 한 송이를 건넨다. 첫 인상만 봤을 때 파라셀수스는 그 제자가 연금술사가 되길 바란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금세 그것이 오해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금은 관심이 없습니다", 제자가 말한다. 그럼, 자네는 무엇에 관심이 있나? 원석(Piedra)으로 향하는 길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에 파라셀수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길 자체가 원석이라네. 출발하는 지점 역시 원석이고. 만약 자네가 이 말이 와 닿지 않는다면, 그걸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는 거라네. 모든 걸음 걸음이 각각 목표로 향하는 걸세" 

낯선 남자는 파라셀수스의 제자로서 감내해야 할 그 어떤 수고스러움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테스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고 한다. 파라셀수스는 불쾌한 기색을 띠며 테스트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가 아니라 언제 그 테스트를 하고 싶은지 묻는다. 낯선 남자는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둘은 라틴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으나, 이제 독일어로 말한다", 보르헤스는 쓴다. "소문에 따르면", 낯선 남자가 입을 뗀다, "선생님은 장미를 불태웠다가 재가 된 장미를 다시 원래의 장미로 재생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예술적인 행위로 말이지요. 제가 그 경이적인 일의 증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선생님께 바라는 것이고 그 이후엔 제 모든 삶을 선생님께 바치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둘의 대화는 철학적인 담론의 색을 띠게 된다. 파라셀수스는 낯선 남자에게 장미를 파괴시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고 믿는지 묻는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가 되길 열망하는 그 남자가 답한다. 파라셀수스는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파괴될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낯선 남자가 말한다. "만약 자네가 이 장미를 벽난로 속으로 던진다면," 파라셀수스가 말한다, "장미는 소멸하고 남는 건 장미의 재뿐이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장미는 영원하다는 점일세. 단지 겉모습만이 바뀌었을 뿐이지. 내가 한마디만 하면 자네는 다시 원래의 장미를 볼 수 있다네." 낯선 남자는 그의 말에 의아해한다. 그는 파라셀수스에게 끈덕지게 요구한다. 장미를 태웠다가, 증류기나 아니면 어떤 말씀(Verbo)을 통해, 그것을 재에서 원래 모습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나 파라셀수스는 이렇게 대꾸한다. 언젠가는 속임수로 빠져들게 하는 사물의 겉모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혹은 쉽게 믿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탐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낯선 남자는 장미를 집어들었다가 불 속으로 던진다. 이 장미는 금세 재가 되어버린다. 낯선 남자는, 보르헤스는 말한다, "무한한 순간 동안 그는 어떤 말들과 기적을 기다렸다." 그러나 파라셀수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슬픈 표정을 띤 채 말없이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하던 스위스 바젤(Basilea)의 의사, 약사 들의 의견을 떠올린다. 낯선 남자는 자신이 뭔가를 이해했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더이상 파라셀수스를 괴롭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파라셀수스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은 채, 낯선 남자는 금화 자루를 집어들고는 예의를 갖춰 그 집을 떠난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파라셀수스를 업신여기지만 그만은 그에게 사랑과 존경심이 있었다. 그러나 파라셀수스의 가면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서 파라셀수스를 검증하려 하고 재단하려 하는 자신은 과연 누구인지 자문해본다. 잠시 후 그들은 헤어진다. 파라셀수스는 문까지 그를 배웅하며 언제든 자신의 집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낯선 남자는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둘은 더이상 서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혼자 남은 파라셀수스는, 램프의 불을 끄기 전, 낯은 목소리로 한마디 말을 한다. 그러자 그의 손에 있던 재가 원래 장미의 모습을 되찾는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74-175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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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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