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La Librera", 그러니까 영어로 "Bookseller"인데 사전에 나와 있는 '서적상'이나 '책장수'로는 느낌이 잘 안 살고, 딱히 어울리는 단어가 뭐지도 모르겠고... 암튼 그래서 저런 제목을 썼다. 우리나라엔 갈수록 대형서점만 남고 아래와 같은 서점은 멸종되고 있는 현실이니 그에 적합한 단어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서점 주인
우리는 모두 가치 있게 생각하는 서점이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내 경우는 블라네스에 있는 산트 호르디 서점이다. 필라르 파헤스페티트 이 마르토리의 서점이고 마을의 오래된 건천에 있다. 사흘에 한 번씩 나는 책 냄새를 맡으러 그곳에 간다. 이따금씩 서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필라르 파헤스페티트 씨는 자그마한 여성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혹은 손님이 별로 없는 오후에 책 주문서를 넣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시간에 필라르 파헤스페티트 씨는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다. 즉 있기는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런 시간에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서점은 탐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가 된다. 아마도 야생의 영토일 것이고, 어쩌면 황무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조난당한 것 같은 얼굴을 한다. 심지어 [엘 프론트]를 찾으로 온 여성들조차도 말이다. 이런 시간에 산트 호르디 서점에선 (나는 초조해지지만 필라르 씨는 차분해지는)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다른 경우엔 클래식 음악과 민속 음악, 브라질 음악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그 음악들은 서점 주인을 차분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서점 주인이 초조해질 만한 충분한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안정되게 해주는 음악으로 가득한 서점이라고 해도 존 콜트레인의 음울한 화음을 들을 때면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이런 것들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 그녀에게 이 일을 항상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28년 전 토르데라에서 사서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블라네스로 건너왔고 자신의 서점을 시작했으며 이제는 행복해 보인다. 나 역시 이 서점이 있어 대단히 행복하다. 나는 그녀를 신뢰한다. 내가 부탁한 책들을 대체로 잘 구해주기 때문이다. 더 바랄 게 없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12-113p), ANAGRAMA
영역본을 주로 봤고 부분부분 원서를 참고했...거나 말거나 참 이상한 한국어다. ( -_-);
필립 K. 딕
로드리고 프레산과 필립 K. 딕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지만, 바르셀로나 근처의 바bar나 레스토랑에서든 서로의 집에서든, 우리는 결코 말할 거리가 고갈되지 않았다.
다음은 우리가 이끌어낸 몇 까지 결론이다. 딕은 정신 분열증이 있었다. 딕은 편집증적이었다. 딕은 20세기 최고의 미국 작가 열 명 중 하나이다. 그것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딕은 LSD(마약)에 푹 절은 일종의 카프카였다. 딕은 [높은 성의 사내]에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으로, 리얼리티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역사란 것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딕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아메리카 드림의 죽음과의 결합이다. 딕은 이따금 죄수처럼 쓴다. 윤리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그가 진정으로 죄수이기 때문이다. [유빅]에서 딕은 이야기의 설정 속에서, 인간의 의식이나 의식의 분절을 포착하는 것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와 이야기 구조 사이의 유사성은, 토마스 핀천이나 돈 드릴로가 행한 유사한 실험보다 더욱 빛이 난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가상 의식에 대해 웅변적으로 글을 쓴 사람은 딕이 처음이다. 속도에 대한 인식, 엔트로피에 대한 인식, 우주에서의 소란스러움에 대한 인식에 대해 글을 쓴 사람 역시 딕이 처음이다. 처음이 아니라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화성의 타임슬립]에서 이런 것들을 보여줬는데, 여기 나오는 미래의 묵시적인 예수와도 같은 자폐증 소년은 시간과 공간의 역설, 우리 모두가 향하는 죽음을 느끼고 고통받는 데 자기 자신을 바친다.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딕은 결코 자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 말은 곧 그가 허먼 멜빌보다는 마크 트웨인 쪽에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비록 나보다 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로드리고 프레산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딕에게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딕은 아마도 20세기 작가들 중 가장 많이 표절된 작가 중 한 명일 것이다. 프레산의 의견에 따르면, 마틴 에이미스가 쓴 [시간의 화살]은 딕의 Counter-Clock World를 파렴치하게 표절했다. 나는 에이미스가 딕이나 딕의 선구자들에게 찬사를 보냈다고 믿는 편이다. (에이미스의 아버지, 시인 킹슬리 에이미스를 잊지 말자. 그 또한 SF를 옹호했고 SF의 엄청난 독자였다.) 딕은 최근 몇 년 동안 (버로우와 함께) 미국 이외의 시인들, 소설가들, 에세이시스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딕은 안 좋을 때마저 좋았다. 이미 대답은 알고 있지만 자문해본다. 라틴아메리카 작가 중에 그와 같은 작가가 있는지. 딕은 카슨 맥컬러스처럼 진하게 고통을 그려낸다. [발리스]는 맥컬러서의 그 어떤 소설보다 더 불안하다. 특정한 경우, 딕은 거지들의 왕처럼 보인다. 다른 때는 숨겨지고 비밀스러운 백만장자처럼 보인다. 이런 것을 통해 그가 설명하려 했던 것은 두 가지 역할이 실은 하나라는 점이다. 딕은 [닥터 블러드머니]를 썼다. 그건 걸작이다. 그리고 1962년에 [높은 성의 사내]로 현대 미국 소설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쓰레기 예술가의 고백](1959년에 썼고 1975년에 출간됐다)처럼, SF와는 아무 상관 없는 소설도 썼다. 이 작품은 그가 미국 출판 산업계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보여준다.
그의 수많은 책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내가 항상 지니고 있을 실제 딕에 대한 세 가지 이미지가 있다. 첫째 이미지. 딕과 그의 결혼들 - 캘리포니아 이혼에 대한 끊임없는 지출. 두 번째. FBI 자동차가 그의 집 밖에 주차된 채로 흑표범단의 방문을 받는것. 세 번째. 딕과 그의 아픈 아들과, 다른 질병은 없는지 의사에게 다시 돌아가서 물어보라고 그의 머릿속에서 충고하는 어떤 목소리. 굉장히 드물게, 굉장히 진지하게, 딕은 그렇게 했고, 의사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들은 응급 수술을 실시했고 소년의 목숨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