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ntre paréntesis

심연으로의 산책(UN PASEO POR EL ABISMO)



멕시코에 대해 쓴 많은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은 아마도 영국 작품이거나 미국 작품일 것이다. D.H. 로렌스가 시도한 주인공 소설(*[날개 돋힌 뱀]), 그리고 그레이엄 그린의 도덕 소설(*[권력과 영광]), 말콤 라우리의 총체 소설(*[화산 아래서]). 이들은 말하자면 혼돈에 집중하는 소설(이것은 이상적인 소설의 주제 바로 그것이다)이고, 그 혼돈을 정돈하려 하는 소설이며, 읽을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소수의 현대 멕시코 작가들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페르난도 델 파소라는 가능한 예외와 더불어, 최근에서야 이러한 기획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러한 노력이 이전에는 금지되어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우리가 멕시코라고 부르는 그것이, 또한 숲이나 사막, 얼굴 없이 뒤섞여 있는 군중인 그것이, 마치 외국인들을 위해서만 예약된 영토라도 되는 것처럼.

로드리고 프레산은 멕시코에 대해 쓰기 위해 이런 저런 필요조건들을 충분히 완수한다. [만트라]는 만화경 같은 소설이고, 성난 유머로 뒤덮여 있는 소설이다. (이따금씩 과잉돼 있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멕시코 시티 새벽의 정신 착란 상태와 인류학적인 기록 사이를 오고가며, 굉장히 드물게 정확한 산문으로 씌어졌다. 멕시코 시티는 자신의 지하 밑바닥에 다른 도시들을 쌓아두고 있다. 마치 자기 자신을 삼켜버리려고 하는 뱀의 시도처럼.

이 소설은 외면적으로(내가 '외면적으로'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이 외면적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소설의 각 부분들은 수학적인 정밀함으로 조립되어 있을지언정) 세 개의 큰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아르헨티나 소년이 화자로 나온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후 그가 있는 학교에 새로운 학생이 도착한다. 멕시코 아이인 새 학생은 1분도 지나지 않아 그 반의 리더로 희생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선생이 그를 혼자 내버려뒀을 때 실탄이 장전된 총으로 러시아 룰렛이라는 천재적인 (그리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게임을 하게 되면서. 그 아이 마르틴 만트라는, 바꿔 말하자면 앙팡 테리블의 화신이다. TV 연속극의 두 배우의 아이인 그는 마스크를 쓴 전(前)레슬러를 경호원으로 동행한 채 학교에 간다. 그리고 영화와 텔레비전 세계를 전복하려는 생각을 한다. 멕시코 - 이곳에서 그 놀라운 아이가 태어난다 - 의 앞날은 그 아이에 의해 그리고 화자로 나오는 아르헨티나 소년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 더불어 결코 정확하게 말해지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질병이나 사회 붕괴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의해, 그리고 아마도 유년기의 결정적인 부재가 될 뿐인 무언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된다.

이 1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은 과거의 영웅, 헤르바시오 비카리오 카브레라 (사후의) 장군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에서 싸웠던 덜렁대는 멕시코인이다. 그는 너무 조급한 판단으로 인해 총살당한 희생자이고, 이것은 3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인 어느 로봇과 같은 방식이다. 그 로봇의 망령은 [페드로 파라모]의 혼란스러운 일인칭 나레이션과 유사하게 보인다.

내 판단에 가장 훌륭한 2부는 소설에서 분량이 제일 많고 알파벳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멕시코 시티나 심연에 대한 백과사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2부는 또한 가장 많은 분량으로 144쪽에서 509쪽까지를 차지한다. 독서 방법은 열려 있다. 순서대로 읽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글자를 찾아가며 볼 수도 있다. 이번에 화자는 프랑스인이다. 오직 마르틴 만트라가 하는 말만 들을 수 있는 프랑스인. 그는 죽기 위해서 그리고 죽이기 위해서
심지어는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누군가를 죽이고자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다.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복잡한 구성 사이에, 조앤 볼머의 삶이 있다. 그녀는 남편인 버로스가 빌헬름 텔 연극에서 빌리엄 역할을 하던 중 (*오발 사고로) 멕시코 시티에서 죽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쓴 레슬러의 역사와, 마스크를 쓴 이런 레슬러들 중 한 명이 프랑스에서 만들고 싶어 했던 누벨 바그 영화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LIM(*el Lenguaje Internacional de los Muertos)의 역사, 즉 죽은 자들의 국제 언어 의 역사가 있고 멕시코 괴물들의 역사, 멕시코 포르노의 역사, 여성 락그룹 아노렉시아와 수스 플라키타스(*거식녀와 말라깽이들?)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미디어를 이용하며 세계 종말적인 게릴라처럼 활동한 마르틴 만트라의 역사가 있다. 물론 파리에서의, 프랑스인 화자와 멕시코 여인이 나눴던 사랑의 역사 또한 부족하지 않게 있다.

[만트라]의 말들을 무작위로 발췌해보자. "TV 연속극"이라는 항목에서 독자는 이런 내용을 읽을 수 있다. "TV 연속극은 마치 돌연변이 통신원과 같다." "TV 수상기" 항목에선, "네가 나에게, 죽은 자들이 보이는 이런 죽은 텔레비전의 상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너에게 답할 것이다(...) 자신의 눈을 다른 좀비들에게 먹으라고 주는 이런 화면에 나오는 좀비들의 상표는 좀비이다." "구토"라는 항목에선, "이렇게 조안 볼머가 나에게 말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여러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가 나에게 말한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그것들은 다른 상표의 담배라고 말한다. 어떨 때는 일인칭 시점으로 말하고, 또 어떨 때는 삼인칭 시점으로 말하며, 간헐적으로는 지진이 난 것처럼 경련하면서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국제 언어(*LIM)이다."

그러니까 죽은 자들이 말하는 언어의 리듬은 진동과 닮아 있다. 그리고 [만트라]는, 겹겹이 쌓여 있는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죽은자들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죽은자들, 저명한 사람부터 익명의 사람까지 전부다. 독자가 인지하게 되는 그 진동은 LIM의 진동이고, 이것들이 알파벳 순서로 쓰여 있는 한 언제든 소설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인 3부는 미래적인 우화이다. 멕시코 시티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이런 폐허 속에서 누에바 테노치티틀란 델 템블로르라고 불리는 새로운 도시가 세워진다. 한 로봇이 이 이상한 도시의 줌심부로 돌아온다. 만트락스라고 하는 자신의 창조자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모체 컴퓨터와 약속했다. 명백하게, 우리는 [페드로 파라모]의 새로운 버전, 즉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와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위험천만한 만남 앞에 있는 것이다. 희생자의 비석 근처에서, 놀라운 결말을 지니고 있는.

최근 몇 년 동안 읽었던 소설 중 이렇게 감격스러운 소설은 드물었다. [만트라]를 통해 나는 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나에게 대단히 고결하게 보이는 동시에 퇴폐적으로 보였다. 작가의 우울한 에너지는 바닥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항상 미학적인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절대 촌스럽거나 감상주의적인 것에 빠지지 않으며, 항상 스페인어권 문학에서 호평을 얻는다. 이 소설은 멕시코에 대한 소설이고, 사실상 모든 위대한 소설이 그런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대해, 그리고 꿈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진정으로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이건 대단히 비밀스러운 분야인데, 문학을 만드는 기술에 대하여 다룬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깨닫지 못하지만.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307-310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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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 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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