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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비밀El secreto del mal


 볼라뇨 11주기를 추모하며 단편집 <악의 비밀>에 있는 표제작 "악의 비밀" 포스팅. 아마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어딘가에 (왠지 누군지 알 것 같은) 다른 분이 번역한 "악의 비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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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비록 굉장히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또한, 미완결의 이야기이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에는 결말이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서의 어느 날 밤. 미국 신문기자가 자고 있다. 갑자가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국적 불명의 영어 액센트로, 그에게 조 A. 켈소에 대해 묻는다. 그 신문기자는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하고 나서 손목시계를 본다. 새벽 네 시. 그는 세 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피곤한 상태다.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건네줄 정보가 있다며 그에게 만나자고 한다. 신문기자는 어떤 내용인지 묻는다. 이런 유형의 전화가 흔히 그러듯, 그 목소리는 아무런 실마리도 내놓지 않는다. 신문기자는 최소한의 단서를 요구한다. 그 목소리는, 굉장히 정확한 영어로, 켈소보다 훨씬 더 정확한 영어로,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선호한다. 그러고는 곧장 덧붙이길,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어디에서요? 켈소가 문의한다. 목소리는 파리의 어느 다리를 언급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이와 유사한 약속을 수백 번 해본 신문기자가 대답한다. 30분 뒤에 거기 있을게요. 옷을 입으며 그는 생각한다. 밤 시간을 망쳐버리기 딱 좋은 방식이군. 하지만 동시에, 조금 놀라며 깨닫는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군. 그 전화가 잠을 날려버렸어.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그가 다리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한 것보다 5분 늦은 시간이었다. 자동차들만 보였다. 잠시 동안, 한쪽 끝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은 채 기다린다. 다리를 건넜지만 여전히 인적이 없었고, 다른 쪽 끝에서 몇 분 동안 기다려본 후, 결국 다시 다리를 건너와 그날 밤 약속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기로 결심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그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는 미국인이 아니었어, 그건 확실해. 그는 영국인도 아니었어.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남아프라카인이거나 호주인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는 생각한다. 아니면 네덜란드인. 아니면 북유럽 사람인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나서, 영어권의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익혔을 수도 있을 테고. 어느 도로를 건널 때 그는 누군가 부르는 것을 듣는다. 켈소 선생.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을 부른 사람이 다리에서 약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목소리는 어느 어두운 입구에서 흘러나온다. 켈소는 멈추라는 손짓을 해보지만 그 목소리는 그에게 계속해서 걸으라고 명령한다. 다음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신문기자 아무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혹에 흔들리지만, 잠시 망설인 후, 가장 좋은 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별안간 어떤 남자가 골목 입구에서 튀어나와 그에게 인사한다. 켈소는 그 인사를 돌려준다. 그 남자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사차 핀스키입니다, 그가 말한다. 켈소는 자신의 손을 뻗고 이름을 말한다. 그런 핀스키가 켈소의 등을 토닥이고는 위스키 한잔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다. 위스키 살짝 걸치지 않겠습니까. 배가 고픈지 물어본다. 그 시간까지 열려 있는 바를 알고 있다고 장담하면서. 막 구워낸 따뜻한 크로아상을 파는 곳이죠. 켈소는 그의 얼굴을 본다. 핀스키가 모자를 쓰고 있긴 하지만, 하얗고 창백한 낯빛을 알아볼 수 있다. 마치 수 년 동안 감금된 사람의 낯빛. 근데 어디에서? 켈소가 생각한다. 감옥이나 정신병원이겠지. 어찌됐건 약속을 지키기엔 너무 늦었고, 따뜻한 크로아상이 켈소를 유혹한다. 그 가게 이름은 셰 팡Chez Pain이고, 자신의 동네에 있었음에도, 비록 작은 거리에 있고 발길이 드문 곳이긴 했지만, 켈소는 처음으로 보고 처음으로 들어가 본다. 신문기자가 자주 들르는 가게들은 대부분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 있고, 그곳은 확인 불가능한 전설로 후광이 비치는 장소다. 스콧 피츠제랄드가 몇 번 먹은 술집이라든지, 조이스와 베케트가 아일랜드 위스키를 마신 술집이라든지, 헤밍웨이의 술집이나 존 더스패서스의 술집이나 트루먼 카포티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술집이라든지. 체 팡에 있는 크로아상은, 실제로 맛있었고, 막 구워냈으며, 커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사실로 인해 켈소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핀스키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인데, 동네 이웃인지도 몰라. 이런 가능성을 곰곰이 따져보다가 켈소는 소름이 돋는다. 무료하고, 편집증적이고, 관찰되지는 않으면서 관찰하기만 하는 정신 나간 사람. 떨쳐내는 것도 어려운 사람. 좋아요, 켈소는 결국 입을 뗀다, 말씀하세요. 창백한 남자는, 크로아상은 먹지 않고 커피만 홀짝거리더니, 켈소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의 미소는, 어떤 식으로 보든, 극도로 슬픈 미소이다. 또한 피곤한 미소인데, 마치 그 미소만으로도 고됨과 피곤함과 수면 부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미소를 거두자, 그의 낯빛에는 순식간에 냉담함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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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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