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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La Gira


어느덧 1년이 흘러 볼라뇨 14주기. 작년까지만 해도 출간될 가망성이 없는 줄 알었던 <악의 비밀>이 계약됐다고 하니 언젠가 한국어 번역본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 전에 우선 맛보기(?)로 <악의 비밀>에 수록된 짧은 단편, 미완결처럼 보이는 짧은 단편 "투어"를 읽어보도록 합니다. 



내 꿈은 존 말론John Malone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라진 뮤지션이었다. 5년 전부터, 말론은 전설들이 거주하고 있는 어두운 지역에 머무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실상, 새로운 소식이란 없다. 비록 팬들은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지만. 1970년대에 말론은, 제이콥 몰레이Jacob Morley와 댄 엔디코트Dan Endycott와 함께, 브로큰 주Broken Zoo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이었고, 브로큰 주는 그 시기 가장 성공한 락 밴드 중 하나였다. 1966년에 브로큰 주는 첫 번째 LP를 녹음했다. 그 시기 영국에서 나온 가장 높은 수준의, 끝내주는 음반이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그 시기란,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활동하던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잠시 후 두 번째 LP가 출시되자, 모든 사람들이 놀랐는데, 첫 번째 음반보다 더욱 좋았던 것이다. 브로큰 주는 유럽 투어를 시작했고, 이후 전미 투어를 진행했다. 북미 투어는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들이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는 동안 그들의 음반은 판매 차트에서 상승 곡선을 유지했고 마침내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런던으로 다시 돌아와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했다. 몰레이는 런던 근교에 막 구입한 맨션에 틀어박혔다. 맨션에는 개인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다. 엔디코트는 밴드 주변에서 우글거리던 모든 예쁜 여자들과 섹스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은 런던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집 한 채를 장만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한편, 말론은 가장 차분했던 것 같다. 브로큰 주의 몇몇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그는 기이한 파티에 드나들었다. 비록 그들 전기 작가들이 기이한 파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그 시절의 은어로, 마약과 섹스가 뒤범벅이 된 파티를 의미하는 것 같다. 얼마 후 말론은 사라졌고,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심사숙고의 시간이 지난 후, 밴드 매니저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을 인정했다. 존 말론은 그 어떤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밴드를 탈퇴했습니다. 얼마 후 몰레이와 엔디코트가, 드러머 로니 팔머Ronnie Palmer와, 또 다른 멤버 코리건 Corrigan과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그 시간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로니 팔머만 빼고, 말론은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그는 사라지고 나서 3주 정도 팔머에게 전화로 연락했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찾지 말라고, 다시 돌아갈 생각 없으니 자신을 기다리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밴드가 끝날 것이라고 여겼다. 말론은 최고였고, 그가 없이 브로큰 주가 살아남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몰레이는 런던 근교에 있는 맨션에 한 달인가 몇 달인가 틀어박혔고, 엔디코트는 매일 몰레이의 집을 드나들며 열 시간 이상 작업하였기에, 마침내 밴드의 세 번째 LP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비평가들의 예상과 다르게 브로큰 주의 세 번째 음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음반보다 더욱 훌륭했다. 첫 번째 음반에선, 곡의 70퍼센트 정도가 말론의 작품이었다.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까지. 두 번째 음반에서도, 곡의 70퍼센트는 말론의 것이었다. 나머지의 30퍼센트와 25퍼센트는, 각각, 몰레이와 엔디코트의 작품이었다. 두 번째 LP의 한 곡만은 몰레이와 팔머가 함께 가사를 썼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 번째 음반에서는, 대조적으로, 곡의 90퍼센트가 몰레이와 엔디코트의 것이었고, 나머지 10퍼센트는 공동 작업이었다. 팔머, 몰레이, 엔디코트, 그리고 새로운 멤버 ㅡ 말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나서 밴드에 들어온 ㅡ 베너블Venable이 함께 한 작업. 음반에는 말론에게 바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그 어떤 비난도 없었다. 오직 우정과 찬사뿐. 제목은 “너 언제 다시 돌아올래?”였고, 싱글 형태로 발매됐으며, 2주 만에 런던 탑 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물론, 말론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시기 많은 기자들의 그를 찾아보려고 했음에도, 그 모든 시도들은 결실 없이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그가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 죽었다는 말이, 시신은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브로큰 주에 대해서라면, 세 번째 음반에 이어 네 번째 음반이, 만장일치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나왔고, 네 번째 이후에 다섯 번째 앨범이 나왔으며, 그러고 나서 여섯 번째 더블 앨범, 우상이 되었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LP. 그 이후 그들은 한동안 공연을 하지 않았지만, 그 후 충분히 좋은, 일곱 번째 LP를 출시했다. 이후 여덟 번째 음반, 80년 대 중반에는 아홉 번째, 또 다시 더블 앨범을 발표했고, 몰레이와 엔디코트가 악마와 계약을 한 것 같았으며, 그래서 아홉 번째 음반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에서 네덜란드까지, 뉴질랜드에서 캐나다까지, 타일랜드의 태풍처럼 휩쓸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그 이후 밴드는 해체한다. 비록 이따금씩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장소에서, 뜻 깊은 날, 다시 모이기는 했지만. 1995년에 롤링 스톤즈의 한 기자가 말론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 기사는 단지 브로큰 주의 첫 번째 비닐 음반을 보관하고 있을 만큼의 열혈 팬들만을 동요시켰다. 독자들 대부분은, 다수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여기는 한 인물의 운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말론의 삶은, 그 모든 시기 동안, 어떻게 보면,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런던을 떠나고 했던 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2년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물렀다. 자신의 이전 밴드 멤버들이 우주를 향해 박차 오르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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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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