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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의 아들El Hijo del Coronel

 

볼라뇨 13주기를 추모하며, 판매량이 저조하여 더 이상 출간될 가망성이 거의 없는 볼라뇨의 남은 책들 중 단편집 <<악의 비밀>>에 수록된 단편 <대령의 아들>번역해서 포스팅합니다. 

 

"볼라뇨의 마지막 픽션 작품(<<2666>>)에서 드러나는 특징적 묘사들, 사진들, 문학 세계, 상류 사교계에 대한 묘사들, 그리고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해 거대한 똬리를 이루는 그의 창작적 특성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서술해 내는 행위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악의 비밀>>에 수록된 작품 <대령의 아들>은 이런 실례를 잘 구현하고 있는데, 작가는 좀비들을 다룬 B급 영화를 본 한 관객의 목소리에서 시작해서 한 번도 듣거나 본 적 없는 것들을 재구성한다. 영적 공간의 초자연적 소리와 소음들을 해석하는 EVP, 즉 전자 음성 현상(1)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청각적 파레이돌리아(2) 효과가 아이러니하게 표현되고 있다.

 

(1) 전자적으로 음성과 유사한 소리를 생성하지만, 의도적인 음성 녹음이나 랜더링의 결과로 얻어지기는 불가능한 것, 귀신이나 유령의 목소리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전자 기계로 녹음하는 방식.

(2) 한 개인에 의해 희미하고 애매한 자극이 명쾌하고 변별적으로 인지되는, 일종의 환영(幻影) 현상."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에서) 

 

 


  너희들은 안 믿겠지만, 어젯밤, 그러니까 새벽 네시 경에, 티비에서 영화 한 편을 봤어. 그건 내 전기, 아니면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였어. 이 빌어먹을 지구에서의 나날들을 요약하고 있었지. 오줌을 지릴 만큼 겁이 났고, 충격 때문에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지.

 

  그대로 얼어붙었어. 불현듯 그게 구린 영화라는 걸 깨달았어. 우리들이 - 가련하고 불행하기도 하지 - 구리다고 생각한 이유는, 배우도 엄청 안 좋았고 연출도 아주 안 좋았으며 특수 효과도 몹시 안 좋았으니까. 실제로 굉장히 저예산의 영화였고, 순수 B급 영화였어. 말하자면, 너희들에게 확실히 밝혀두기 위해서인데, 4유로나 5달러 정도로 찍은 영화였어. 투자를 받기 위해 누구를 설득했는지 모르겠지만, 제작자는, 내가 이건 보장하는데, 팁 몇 푼만 줬고, 그걸 가지고 그럭저럭 만들어낸 거지.

 

  진심으로 말하거니와, 그 영화 제목조차 기억이 안 나. 하지만 난 그걸 <대령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죽을 거야. 너희들에게 하나 보장할 게 있는데, 여태껏 그토록 민주적인 영화는 본 적이 없어. 다시 말해, 진실로 혁명적인 영화였지. 그렇다고 그 영화 자체가 어떤 혁명을 이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지. 차라리, 애처롭기도 하지, 발작과 일상적인 장소로 가득해. 편견, 희화화된 인물들로 가득하지. 하지만 동시에 각 장면들이 혁명적인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고 있어. 혁명이 있다고 직감할 수 있는 그런 공기. 완벽한 혁명이 아니라, 너희들은 나를 이해하겠지, 아주 작은 단편의, 아주 미세한 혁명. 예컨대, 너희들이 <쥬라기 공원>에서 본 것처럼, 그러니까 어디에서도 공룡 한 마리 나오지 않는 것처럼. 아니 내 말은, <쥬라기 공원>에서는 누구도 그 빌어먹을 파충류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잖아, 하지만 이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고, 참을 수가 없는 존재지.

 

  너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나는 오스발도 람보르기니의 <프롤레타리안의 체임버 극>의 단 한 작품도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너희들에게 보장할 수 있는 건, 밤에 람보르기니의 마조히즘을 보는 것이 새벽 세네 시에 <대령의 아들>을 보는 것보다 낫다는 점이지. 무엇에 대한 영화냐고? 좋아, 웃지 말기를, 그건 좀비에 대한 영화야. 맞아, 맞아, 대강 조지 로메오의 영화와 비슷해. 의심할 것도 없는데, 어떤 점에서 보면, 조지 로메오에 대한, 그의 두 편의 위대한 좀비 영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로메로의 정치적인 밑바탕엔 칼 마르크스가 있어. 반면에 어젯밤에 본 영화의 정치적인 밑바탕엔 아르튀르 랭보와 알프레드 자리가 있지. 순수한 프랑스적 광기.

 

  비웃지 마. 로메로의 영화는 명확하고 비극적이야. 구렁텅이에 빠진 집단에 대해 말하고, 생존자들에 대해 말하지. 유머 감각도 있어. 그의 두 번째 영화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좀비들은 몰 주위를 헛되이 돌아다녀. 자신들의 과거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지. 근데, 어젯밤 영화는 좀 달라. 유머 감각도 많지 않고, 비록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제꼈지만, 집단적인 비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주인공은 청소년이야, 내 생각에, 도입부를 못 봤거든, 어느 날, 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장소에 여친과 함께 나타나. 도입부를 보지 못해서 확실치는 않아. 어쩌면 주인공 남자가 자기 아버지를 방문했다가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난 걸 수도 있고. 그녀 이름은 줄리. 예쁘고, 어리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아니면 그렇지 않게 보이려는 젊은이들 특유의 욕구가 있어. 남자는 레이놀즈 대령의 아들이야. 대령은 홀아비이고 아들을 사랑하지, 그건 첫 눈에 알 수 있어, 비록 그가 군인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아들을 대하는 그의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겉으로 드러낼 만한 장소가 없는 곳에서 대하는 방식이지.

 

  줄리는 그 기지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 피자를 가지고 왔다가 길을 잃어버린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레이놀즈 대령이 사용하는 모르모트 중 한 명의 여동생일 수도 있고. 그다지 납득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 도시를 떠나려고 버스 정류소로 가는 동안 대령의 아들을 만났을 수도 있어. 확실한 건, 줄리는 거기 있었고, 어느 순간, 지하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가 절대 열리면 안 되는 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열었지. 맞은편에 있던 좀비 한 마리가 그녀를 쫓기 시작했어. 줄리는 물론 도망쳤지만 그 좀비는 그녀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할퀴었지. 어느 순간엔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물기도 했고. 이 장면은 강간을 암시하는 뭔가가 있지. 그러고 나서 대령의 아들이 나타나. 이 여자를 찾고 있었거든. 둘이 힘을 합쳐서 그 좀비를 제압하고 죽여버려,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나서 그들은 점점 좁아지고 복잡해지는 지하 회랑을 따라 도망치다가 마침내 작은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오지. 도망치는 동안 줄리는 질병의 초기 증상을 느끼기 시작해. 피곤함, 허기짐. 그녀는 대령의 아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가라고, 자신을 잊으라고 부탁해. 하지만 남자의 완고함은 끄떡없어. 그는 줄리를 사랑했어, 아니 어쩌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수도(어쩌면 그가 그녀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일 수도 있어). 분명한 것은, 그에게는 극단적인 젊음의 관대함이 있고, 운명에 따라 그녀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상으로 나왔을 때 줄리의 공복감은 통제가 안 되는 수준에 이르지. 반면, 도시의 거리들은 황폐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아마 그 지역은 북아메리카의 어느 도시 교외에 위치한 곳일 거야. 버려지고 반쯤 허물어진 동네. 돈 없는 영화인들이 한밤중에 영화를 찍는 곳. 그곳이 레이놀즈 대령의 아들과 줄리가 출현하는 장소지. 줄리는 배가 고팠기에 도망치는 동안 쉬지 않고 투덜대, 몸이 아파, 배가 고파. 대령의 아들이 못 들은 척하는 말들. 그는 줄리를 구하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군사 기지에서 벗어나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않을 작정이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흥미로워. 대령은, 이건 즉각적으로 파악되는데,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지.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넘어서서. 당연하게도, 그건 일방통행적인 사랑이야. 아버지를 이해하기에 아들은 아직 한참 부족하지. 고독을 이해하기에도, 모든 존재에게 처해진 슬픈 운명을 이해하기에도. 젊은 레이놀즈는, 요컨대, 청소년이고, 사랑에 빠져있으며, 그것 말고는 이야기할 게 없지. 하지만 유의할 점. 겉모습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대령의 아들은 멍청하고 분별없는 젊은이처럼 보이지. 무모하고 생각 없는 젊은이처럼 보여. 마치 우리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가 영어로 말을 하고 북아메리카에 있는 어느 거대 도시의 파괴된 동네에 고립되어 산다는 것만 빼고. 반면에 우리는 스페인어(나 그와 유사한 무엇으)로 말을 하고, 라틴아메리카 도시들의 황폐한 거리에서 숨 막힌 채 살아가지.

 

  그 커플이 지하의 거미줄 같은 회랑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난 풍경은, 어찌 됐건, 우리에게 친근하게 보이지. 불빛은 부족하고, 건물의 유리창들은 깨져 있으며, 자동차들은 거의 다니지 않거든.

 

  대령의 아들은 줄리를 식료품점까지 데리고 가. 새벽 세네 시까지 영업하는 전형적인 가게 모습이었어. 지저분한 가게였는데, 그 안에는 캔 음식들이 초코렛 과자와 감자튀김 봉지 옆에 늘어서 있었지. 점원은 한명밖에 없었고. 물론, 외국인이었고, 나이나 불안한 표정으로 봤을 때, 그의 불만 가득한 얼굴을 봤을 때, 가게 주인임이 틀림없었어. 대령의 아들은 줄리를 데리고 진열대로 갔어. 거기엔 도넛과 군것질거리들이 있었지. 그런데 줄리는 곧장 냉장고로 가더니 익히지 않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해. 가게 주인은 감시 거울을 통해 그녀를 관찰하더니 그녀가 토하는 장면을 보고는 그들에게 다가가 돈 안 내고 거기서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물어봐. 대령의 아들은 자기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지폐 몇 장을 그에게 던지지.

 

  그 순간 네 명의 인물이 가게에 들어와. 멕시코 사람들. 그들이 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지. 아니면 그 동네 길모퉁이에서 마약을 나눠주는 사람들이거나. 어쩌면 존 스타인백의 일용노동자들과 함께 토마토를 따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남자 셋에 여자 하나, 나이는 20대에, 분별없고 아무 거리에서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멕시코인들 또한 줄리의 구토물에 흥미를 보였어. 가게 주인은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대령의 아들은 그 돈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하고. 파손품들은 누가 지불하지? 이 오물은 누가 지불하고? 가게 주인이 짙은 녹색의 구토물을 가리키면서 말해. 그들이 언쟁하는 사이 멕시코인들 중 하나가 계산대 뒤로 몰래 들어가서 돈을 훔치고 있지. 그러는 동안 나머지 셋은 구토물을 살펴보고 있어. 그 안에 우주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게 주인은 멕시코인들이 돈을 훔친다는 것을 깨닫자 권총을 꺼내서 그들을 위협하지. 그 순간 대령의 아들은 가게 주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매대에 있는 군것질거리들을 집어 들고 줄리에게 자신을 따라오길 부탁해. 이곳을 벗어나자고. 하지만 줄리는 다시 생고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등심살을 찢으면서 울기 시작하지. 그러더니, 이해가 안 된다고, 뭔가 좀 해보라고 젊은 레이놀즈에게 애원하지. 멕시코인들은 가게 주인과 대치 상태에 있어. 그들은 잭나이프를 꺼내서 식료품점의 인공 불빛으로 칼을 번뜩이게 하지.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가게 주인의 총을 빼앗아 그에게 발포하지. 가게 주인은 바닥으로 쓰러져. 멕시코인들 중 하나가 술 매대로 가서 몇 병을 가지고 와. 어떤 종류의 알코올이 함유됐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가 줄리 옆을 지나갈 때, 줄리는 그의 팔을 깨물어. 그 멕시코 남자는 울부짖고. 줄리는 자신의 이빨로 남자를 깨문 채 놓아주지 않아. 대령의 아들이 애걸복걸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발포 소리가 울리지.

 

  누군가가 외쳐. 어서 가자, 얼른 뜨자고. 멕시코 남자는 줄리의 이빨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는 데 성공하고, 통증으로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합류하지. 젊은 레이놀즈는 쓰러진 가게 주인의 몸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해. 아직 살아 있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안 돼, 줄리가 말하지, 여기다 두고 가면 경찰들이 도와줄 거야. 둘은 비틀거리면서 동시에 빠른 속도로 그곳을 떠나지. 그들은 가게 옆에 주차된 검정 왜건을 보고 그 차를 훔쳐. 젊은 레이놀즈가 시동을 걸었을 때 가게 주인이 나타나더니 도와달라고, 자신을 병원에 데려달라고 애원해. 줄리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지. 가게 주인의 하얀 티셔츠는 피로 얼룩져 있었어. 대령의 아들은 그에게 타라고 말하지. 그가 차 안으로 들어와서 차를 출발시키려고 할 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와. 그러자 가게 주인은 내리고 싶다고 말해. 그럴 순 없지, 대령의 아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가속 페달을 밟지.  

 

 경찰들은 추적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총을 쏘아대지. 가게 주인은 왜건 뒷문을 열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치고. 그는 빗발치는 총알 세례에 쓰러지고 말아. 앞좌석에 있던 줄리는 몸을 돌려서 어둠 속을 살펴봐. 그녀는 그가 우는 소리를 들어. 가게 주인은 고통에 신음하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지. 불

면과 노동으로 점철된 채, 외국에서 쉬지도 못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했던 자신의 삶을.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렸지.

 

  그 후 줄리는 앞좌석을 비워두고 왜건의 뒷부분으로 건너와. 대령의 아들이 경찰을 따돌리는 동안, 줄리는 가게 주인의 가슴을 뜯어 먹기 시작하지. 젊은 레이놀즈가 환하게 웃으며 줄리에게 말을 건넸을 땐, 경찰들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났을 때였고, 그녀는 네 발로 엎드린 채, 마치 호랑이가 된 것처럼, 혹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만족으로 가득한 숨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허기가, 잠깐 사이에, 우리가 금세 확인할 수 있는바, 충족되었기 때문이지. 대령의 아들은, 당연하게도, 경악한 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어.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해. 무슨 짓을 한 거야, 줄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의 어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줄리가, 비록 인육을 먹었을지언정, 여전히,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자신의 여자라는 점이었어. 줄리의 대답은 간단하지. 배가 고파서.

 

  그 순간, 젊은 레이놀즈가 과장된 몸짓을 하는 동안, 경찰 차량이 다시 나타나고, 두 젊은이는 다시 도주를 개시하지. 어두침침하고 인적이 드문 거리를 통해서. 여전히 우리에겐 마지막으로 놀랄 일이 남아 있어. 경찰들이 도망자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왜건의 뒷문이 열리더니 가게 주인이 나타나지. 그는 굶주린 좀비로 변해버린 상태였어. 먼저 경찰들 중 한 명의 목을 물어뜯고 나서, 그의 동료에게 접근하는데, 좀비에게 대항할 권총의 탄창이 텅 비어버려 쓸모없다는 걸 깨닫고, 남자는 공포심으로 얼어붙어버리지. 그 후 가게 주인은 걸신들린 듯 그를 먹어치우고. 바로 그때 군사 기지에서 나온 두 대의 차량이 골목을 막아버리더니, 레이저 광선총처럼 생긴 굉장히 기이한 총으로, 가게 주인을 제압해버리지. 그러고 나서 좀비가 된 두 명의 경찰들도 제압하고. 차량들 중 한 대에서 레이놀즈 대령이 내리더니 군인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거기에 있는지 물어봐. 군인들은 없다고 대답하고. 또 다른 차량이 그 골목에 나타났는데 거기에서 어떤 여자가 내려. 란도프스키 대령이었어. 그녀는 레이놀즈에게 이렇게 말하지. 이 순간부터 작전 통제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레이놀즈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해. 그까짓 작전 통제권은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지 알아내는 거야. 당신 아들은 이미 감염된 게 분명해, 란도프스키 대령이 말하지. 흥미로운 장면이야. 란도프스키는 청소년을 희생할 준비가 된 "아버지"의 역할을 당당하고 있는 반면, 레이놀즈는 자신의 아들이 생존하기만을 바라는 "어머니" 역할을 맡고 있거든.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차량이 모퉁이에 정차해 있는데, 차량에선 아무도 내리지 않아. 아까 그 멕시코인들이 타고 있던 차였어.

 

  그들은 식료품점에 있던 왜건을 알고 있었지. 그 차를 타고 연인들이 도주하고 있다는 것도. 멕시코인들 중 한 명, 그러니까 줄리에게 물어뜯긴 남자는, 완전히 감염된 상태였어.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지. 먹고 싶어. 그는 친구들에게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피력하지.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멕시코 여자가 그를 부축하면서 현명하게 말하지.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해. 나머지 둘은 알았다고 하지만 그 전에 추초Chucho를 물어뜯은 그 구미호를 찾고 싶다면서 그녀에게 결코 잊지 못할 가르침을 주고 싶다고 하지.

 

  모든 것은 결국 잊혀지기 마련이고, 지금으로선, 그들이 그녀를 죽이자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기억하고 있어. 그들 둘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지. 그들은 명예에 대해, 존경에 대해, 품위에 대해, 신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그러고 나서 차에 올라타더니 점점 멀어지지. 군인들은 어떤 순간에도 그들을 보지 못해. 마치 그 유령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이어지는 장면에서 줄리와 젊은 레이놀즈가 다리 위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여. 어디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 젊은 레이놀즈가 자문하지. 줄리는 그에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말해. 다리 건너편에는 공중전화 박스가 있지. 여기서 기다려, 젊은 레이놀즈는 그녀에게 말하고 나서 전화박스를 향해 달려가. 도착하고 나서 그는 낙담하고 말지. 전화번호부도 없고 수화기도 뽑혀 있었거든. 그곳에서 그는 줄리가 다리 난간에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해. 그는 외치지. 줄리, 그러지 마! 그리고 그쪽으로 달려가. 하지만 줄리는 몸을 던져. 그녀의 몸은 물 위로 떠오르지. 비록 물살에 휩쓸려서 금세 멀어지고 말지만. 머리만 물속에 잠기 채로. 대령의 아들은 작은 계단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 강물은 30센티미터 정도로 별로 깊지 않았어. 깊은 곳은 50센티미터. 운하로 이용되는 강이라 강바닥에도 포장이 돼 있었지. 한 흑인 떠돌이가 그 청년을 바라보고 있지. 아래쪽에서, 콘크리트 말뚝 아래 어두운 곳에서. 청년 역시 흑인 떠돌이를 발견하더니 그에게 다가가지. 떠돌이는 이렇게 말해. 여자는 이미 죽었을 테니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대령의 아들은 싫다고 말하더니 흑인 주변에서 계속 그녀를 찾아보지.

 

  여자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물웅덩이 위에 떠 있었어. 줄리, 줄리, 그녀의 연인은 그녀에게 소리치고, 소녀는, 얼마나 오랫동안 물속에 머리가 잠겨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헛기침을 하더니, 남자의 이름을 불렀어. 내 좆같은 삶에서도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어. 흑인이 말하지.

  바로 그때, 그들이 있던 곳으로부터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멕시코인들이 나타나지. ('나타나다'라는 표현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날 거야.) 그들은 차 밖에서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지. 한 명은 차 보닛에 앉은 채, 나머지는 차 흙받기에 다리를 올린 채, 여자는 차 지붕 위에 있었고, 오직 부상자만이 유리창을 통해 그들을 보고 있어. 아니면 보려고 애쓰고 있거나. 멕시코인들은 위협적인 행동을 선보이지. 처벌과 무한한 고통과 모욕을 주리라 다짐하면서. 여긴 좀 별로니까, 흑인이 말하지, 날 따라와. 그들은 도시의 하수도 설비 체계 속으로 파고들어가. 멕시코인들은 그들을 뒤쫓지. 하지만 하수도 터널은 미로처럼 아주 복잡했기에 잠시 후 흑인과 청년들은 자신들의 추적자들을 따돌려. 마침내 당도한 은신처는 마치 디스코텍처럼 그들을 환영하는 듯했어. 여기가 내 집이야. 흑인이 말해. 그 후 자신의 인생을 늘어놓기 시작하지. 그가 지금껏 해왔던 일들.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 20세기 혹은 21세기 북미 노동자의 엿 같은 인생. 내 근육은 더 이상 버티질 못해. 흑인이 말하지.

 

  그의 집은 나쁘지 않아. 침대가 하나 있고 ㅡ 거기에 줄리를 눕혔지 ㅡ 그리고 책이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하수도에서 주운 것들이었어. 자기 계발서나 혁명에 관한 책들, 그리고 이를테면, 잔디 깎는 기계를 수리하는 방법 같은 게 나오는 기술 서적. 화장실도 있었데 거기엔 원시적인 샤워실이 있지. 여기선 깨끗한 물만 흘러나와, 흑인이 말하지. 천장의 갈라진 틈에서 계속적으로 유리 같은 물줄기가 나오는 거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손으로 은신처를 만들었어, 흑인이 그들에게 설명해. 그러고 나서 철제 막대기를 집더니 그들에게 말하지. 여기서 쉬어도 돼, 내가 감시하러 나갈 테니.

 

  하수도 안은 늘 밤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날 밤은, 마지막으로 평화로웠던 그날 밤은, 유달리 기이했지. 청년은 어질러진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어, 줄리와 사랑을 나누고 난 뒤지. 흑인 또한 잠들어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면서. 자지 않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여자는 이 방 저 방 들락거리고 있지. 다시 식욕이 솟구쳤기 때문이었어. 이전과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지금 줄리는, 자기 스스로 가하는 통증이 식욕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지.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장면을 보게 되지. 얼굴에 바늘을 꼽는다거나, 철사로 젖꼭지를 관통

시킨다거나.

 

  이후 멕시코인들이 다시 나타나더니 흑인과 레이놀즈 대령의 아들을 손쉽게 제압해. 그 후 그들은 여자를 찾으면서 위협적인 말을 내뱉어.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오지 않으면 흑인과 네 연인을 죽이겠다. 그 순간 문이 하나 열리고 줄리가 나타나지. 많은 것이 바뀌었어. 이제 그녀는 피어싱 여왕의 화신이 된 모습이었어. 멕시코인들의 우두머리는 (가장 강한 놈이었지)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 감염된 멕시코인은 바닥에서 자기를 병원에 데려달라고 애원하고 있고. 멕시코 여자가 그를 달래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줄리의 외양에 꽂혀 있어. 남은 멕시코 남자는 대령의 아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고. 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부짖고 있었거든. 마치 줄리가 성폭행 당할 (아주 분명한) 가능성이 자신의 인내심을 넘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흑인은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어.

 

  줄리와 멕시코인 우두머리가 단둘이 방 안에 들어가. 안 돼, 줄리, 안 돼, 안 돼, 안 돼, 젊은 레이놀즈가 오열하지. 문을 통해 멕시코인의 목소리가 들려. 네가 맘에 들어, 자기. 그거 벗어, 자기. 오 마이 갓, 자기, 남자 여럿 꼬셨겠는데. 무릎 꿇고, 자기,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엉덩이 들어, 완벽해, 아, 아. 이런 종류의 소리가 갑자기 고함 소리로 바뀌더니 구타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마치 누군가가 누군가를 발로 차고 있는 듯한 소리가. 마치 누군가를 벽에 휙 던졌다가 그를 들고 나서 다시 맞은편 벽에 던지는 듯한 소리가. 이후 고함 소리가 그치더니 뭔가를 물어뜯는 소리가 들려. 문이 열리고 줄리가 재차 나타날 때까지. 그녀의 입술은 (사실상 얼굴 전체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멕시코인의 머리가 그녀 손에 들려 있지.

 

  그 모습에 정신이 나간 다른 멕시코인은, 총을 꺼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모든 총알을 그녀에게 갈겨대. 총알은 물론 그녀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 줄리는 미소 짓더니, 만족한 얼굴로, 그 멕시코인의 티셔츠를 붙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끌더니 그의 목을 물어뜯어 구멍이 나게 해. 젊은 레이놀즈와, 의식이 회복된 흑인은,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지. 이와 반대로, 멕시코 여자는 충분히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탈출하려고 시도하지만, 그녀가 상층부 하수도의 입구가 나오는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안, 줄리가 그녀를 붙잡지. 멕시코 여자는 발길질을 하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지만, 줄리의 강력한 힘 앞에, 결국 쓰러지고 말지. 그러지 마, 줄리, 대령의 아들이 소리쳐보지만, 이미 그의 연인이 멕시코 여자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난 후였어. 그러고 나서 심장을 꺼내더니 그것을 씹어 삼키지.

 

  그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 네가 이긴 것 같지, 씨발년아? 줄리가 고개를 돌리자, 우리에겐 남은 멕시코인이, 이제 완전히 좀비가 된 멕시코 남자가 보여. 둘은 결투를 시작하지. 그 싸움에서 줄리는 흑인과 애인의 도움을 받아서 얼마 동안 이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 하지만 줄리에게 죽임 당한 시체들이 깨어나서 그 싸움에 동참해. 한눈에 봐도 좀비들이 일반적인 인간들보다 열 배는 더 강했기에, 싸움의 승기는, 당연하게도, 멕시코인들 쪽으로 기울어. 그래서 세 명의 주인공들은 도망치기 시작하지. 흑인은 그들을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틀어막고는 이렇게 말해. 어서 도망쳐, 내가 놈들을 막을 테니, 방법은 하느님이 알겠지. 줄리와 젊은 레이놀즈는 감사를 표하지도 못하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 도망치던 도중에, 줄리는 연인의 눈을 바라보더니, 눈빛으로 말했는지 실제로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에게 물어봐, 어떻게 아직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대답 대신 젊은 레이놀즈는 그녀의 뺨에 키스를 하지. 그러고 나서 자신의 입술을 닦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 사랑해, 이전보다 훨씬 더 사랑해. 그가 말하지.

 

  그 후 그들은 절규하는 소리를 듣고 흑인이 쓰러졌다는 걸 알아차려. 그들이 피신해 있던 방에는 출구가 없는 대신, 오래된 가구 더미들이 쌓여서 통로를 이루고 있었어. 일종의 미로였지. 곧 사라질 것들로 만들진, 버틸 의지 따위 없는 미로. 널 여기 남겨둬야겠어, 줄리가 말하지. 젊은 레이놀즈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줄리가 자신의 어마어마한 힘을 이용해서, 소파와 고장난 세탁기와 낡은 (못 쓰는) 텔레비전 아래로 그를 던져넣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여자가 희생할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녀에게 반응할 시간도 거의 없었어. 줄리는 밖으로 나가서 싸우지만 패배했고, 멕시코 좀비들이 이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젊은 레이놀즈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쓸모없는 가구 아래에서 자그맣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좀비들은 그를 발견하고 거기서 끄집어내려 해. 젊은 레이놀즈는 그들의 굶주린 얼굴을 봐. 거기에 흑인의 굶주린 얼굴이 더해지고, 나중에는 줄리의 얼굴 보여. 아무 감정 없이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그 순간 레이놀즈 대령이 세 명의 남자들에게 보호 받으며 문을 박차고 나타나 특수 총기로 모든 좀비들을 제압하기 시작하지. 총이 발사되는 동안 대령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걸 멈추지 않아. 여기 있어요, 아빠, 젊은 레이놀즈가 말하지.

 

  악몽은 끝이 났어.

 

  이어지는 장면에서 대령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 젊은 레이놀즈에게 알래스카 근처에서 쉬다가 오라고 제안하고 있어. 젊은 레이놀즈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하고. 서두를 거 없다, 아들아, 대령이 말하지. 그러고 나서 대령은 홀로 남아 혼자 헛웃음을 짓지,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거대한 운명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아들은 살아 있어. 그러는 동안, 젊은 레이놀즈는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나와 기지의 지하 통로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지. 그의 표정은 극도로 좋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사색을 방해해.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지. 울부짖고 있는 사람의 소리, 완전히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의 소리야. 부지불식간에 그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지. 오래 걸을 필요 없었어. 통로 끝에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을 열자, 내부에 있는 거대한 실험실이 눈앞에 펼쳐졌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알던 군과학자들이 그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했어. 그는 계속 돌아다녔고, 유리로 된 감옥을 발견하지. 그 내부에는, 각 감옥 당 한 명씩, 멕시코인들이 있었어. 그는 계속해서 걸었고, 줄리가 갇혀 있는 감옥을 발견하지. 줄리는 그의 얼굴을 보더니 그를 알아보지. 대령의 아들이 유리 위에 손을 대자 줄리가 그 손을 만져, 아니 만지는 시늉을 해. 아주 커다란 감옥에, 과학자들이 흑인을 준비시켜두지. 엄청난 전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들이 말해. 그들은 그의 머리에 전자 장치를 부착시키지. 흑인은 증오와 원한으로 가득해. 대령의 아들은 모서리에 숨어 있다가, 과학자들이 커피 브레이크를 가지러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흑인에게 다가가 자신을 알아보겠는지 물어봐. 흐릿하군, 흑인이 말하지. 내 모든 기억이 흐릿해. 게다가 더럽게 괴상해.

 

  우리는 친구였어요, 대령의 아들이 말하지. 우리는 강에서 만났어요. 트레인타 거리에 있는 집이 기억나, 흑인이 말하지, 그리고 어떤 여자의 웃음, 근데 내가 거기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어. 청년은 흑인의 쇠사슬을 풀어줘. 그는 이제 로보캅처럼 걷지. 좀비 로보캅. 나 공격하지 마요, 대령의 아들이 말해. 나는 당신 친구니까. 알겠어, 흑인이 말하지. 그는 무기 보관함으로 다가가 거기서 총기를 하나 꺼내들어. 과학자들이 흑인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총알 세례를 받지. 그러는 동안 청년은 줄리를 풀어주고, 그녀에게 다시 도망쳐야 한다고 말해. 그들은 키스를 하지. 군인들은 흑인을 제압하려 하고. 감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면서, 줄리는 멕시코인들을 풀어줘. 더 많은 군인들이 도착하지. 총알들이 어느 컨테이너 박스를 부수는데, 거기엔 시신들이 쌓여 있었어. 내장들과 척추뼈들이 실험실 바닥으로 흘러나오지.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해. 육탄전에서는 알 수가 없어, 어느쪽이 이기고 있는지, 두 편이 있기나 한지, 각 개인들이 자기 자신이 살려고 싸우는지 아니면 상대를 죽이려고 싸우는지. 확성기에서 어떤 목소리가 반복돼. 지하 5층 통로를 봉인해야 해. 아들아, 레이놀즈 대령이 외치지, 지하 5

층으로 미친 듯이 내려와라.

 

  흑인은 란도프스키 대령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지. 그녀는 멕시코 여자에게 물어뜯기고. 군인들은 피로 뒤덮인 인체 살덩이의 공격에 의해 후퇴하게 되지. 하지만 두 번째 공격에서, 방어선이 무너지고, 군인들은 날고기 파편들에 의해 먹히게 돼. 점점 더 좀비들이 늘어나지.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과 싸우고 있어. 대령은 지하 5층에 도착해서, 유리창을 통해 자신의 아들과 줄리를 바라보고, 어떤 통로가 아직 열려 있는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대령의 아들은 줄리의 손을 잡고 그의 아버지가 알려준 곳으

로 향해. 온몸이 아파, 줄리가 말해.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청년이 말하지, 우리가 여기서 멀어지면 넌 좋아질 거야. 나 믿지? 믿어, 줄리가 답하지.

 

  아직 봉인되지 않은 통로에 레이놀즈 대령이 무기도 없이 나타나. 땀으로 범벅이 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멈추지 않고 달려서이기도 하고, 지하 5층의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이기도 하지. 레이놀즈 대령의 얼굴이 변했어. 그의 행동이 마치 아브라함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지. 몸속의 세포 하나 하나가 반복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지. 군인으로서의 경력, 과학적인 작업들, 의미, 명예, 조국, 이 모든 것이 사랑의 급박함 앞에서 산산조각 나지. 여기서 도망쳐. 너희들 날 따라와. 서둘러. 잠시 후 문들이 자동으로 닫히지. 나와 같이 여기서 빠져나가자. 그는 대답으로 단지 아들의 슬픈 시선을 받을 뿐이지. 그 순간 아마 처음으로 아들은 아버지를 더 많이 알게 되지. 통로 끝에 있는, 아버지. 반대쪽 끝에 있는, 아들. 갑자기 문들이 닫히고, 그들은 영원히 헤어지게 되지.

 

  아들의 뒤편엔 불가마 같은 것이 있어. 그 불가마가 원래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격정적인 반역에 의해 만들어진 건지는 알 수 없지. 무시무시한 불길. 줄리와 청년은 서로 손을 잡아. 가자, 줄리, 청년이 말해, 겁먹지 마, 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 반대편에서, 대령은 헛되이 문을 부수려고 하지. 그의 아들과 줄리는 불길을 향해 나아가. 반대편에서, 대령은 주먹으로 문을 때리고 있고. 손가락 마디에서 피가 배어나와. 겁 안 나, 줄리가 말하지. 사랑해, 젊은 레이놀즈가 말해. 반대편에서, 대령은 헛되이 문을 부수려고 하지. 젊은 커플은 불길로 향하다가 사라지지. 화면이 짙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들리지. 그 이후, 폭파, 고함소리, 신음소리, 전기가 타닥타닥 튀는 소리들. 반대편에서, 모든 것과 동떨어진 채, 대령은 헛되이 문을 부수려고 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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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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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비밀El secreto del mal


 볼라뇨 11주기를 추모하며 단편집 <악의 비밀>에 있는 표제작 "악의 비밀" 포스팅. 아마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어딘가에 (왠지 누군지 알 것 같은) 다른 분이 번역한 "악의 비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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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비록 굉장히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또한, 미완결의 이야기이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에는 결말이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서의 어느 날 밤. 미국 신문기자가 자고 있다. 갑자가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국적 불명의 영어 액센트로, 그에게 조 A. 켈소에 대해 묻는다. 그 신문기자는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하고 나서 손목시계를 본다. 새벽 네 시. 그는 세 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피곤한 상태다.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건네줄 정보가 있다며 그에게 만나자고 한다. 신문기자는 어떤 내용인지 묻는다. 이런 유형의 전화가 흔히 그러듯, 그 목소리는 아무런 실마리도 내놓지 않는다. 신문기자는 최소한의 단서를 요구한다. 그 목소리는, 굉장히 정확한 영어로, 켈소보다 훨씬 더 정확한 영어로,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선호한다. 그러고는 곧장 덧붙이길,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어디에서요? 켈소가 문의한다. 목소리는 파리의 어느 다리를 언급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이와 유사한 약속을 수백 번 해본 신문기자가 대답한다. 30분 뒤에 거기 있을게요. 옷을 입으며 그는 생각한다. 밤 시간을 망쳐버리기 딱 좋은 방식이군. 하지만 동시에, 조금 놀라며 깨닫는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군. 그 전화가 잠을 날려버렸어.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그가 다리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한 것보다 5분 늦은 시간이었다. 자동차들만 보였다. 잠시 동안, 한쪽 끝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은 채 기다린다. 다리를 건넜지만 여전히 인적이 없었고, 다른 쪽 끝에서 몇 분 동안 기다려본 후, 결국 다시 다리를 건너와 그날 밤 약속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기로 결심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그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는 미국인이 아니었어, 그건 확실해. 그는 영국인도 아니었어.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남아프라카인이거나 호주인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는 생각한다. 아니면 네덜란드인. 아니면 북유럽 사람인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나서, 영어권의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익혔을 수도 있을 테고. 어느 도로를 건널 때 그는 누군가 부르는 것을 듣는다. 켈소 선생.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을 부른 사람이 다리에서 약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목소리는 어느 어두운 입구에서 흘러나온다. 켈소는 멈추라는 손짓을 해보지만 그 목소리는 그에게 계속해서 걸으라고 명령한다. 다음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신문기자 아무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혹에 흔들리지만, 잠시 망설인 후, 가장 좋은 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별안간 어떤 남자가 골목 입구에서 튀어나와 그에게 인사한다. 켈소는 그 인사를 돌려준다. 그 남자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사차 핀스키입니다, 그가 말한다. 켈소는 자신의 손을 뻗고 이름을 말한다. 그런 핀스키가 켈소의 등을 토닥이고는 위스키 한잔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다. 위스키 살짝 걸치지 않겠습니까. 배가 고픈지 물어본다. 그 시간까지 열려 있는 바를 알고 있다고 장담하면서. 막 구워낸 따뜻한 크로아상을 파는 곳이죠. 켈소는 그의 얼굴을 본다. 핀스키가 모자를 쓰고 있긴 하지만, 하얗고 창백한 낯빛을 알아볼 수 있다. 마치 수 년 동안 감금된 사람의 낯빛. 근데 어디에서? 켈소가 생각한다. 감옥이나 정신병원이겠지. 어찌됐건 약속을 지키기엔 너무 늦었고, 따뜻한 크로아상이 켈소를 유혹한다. 그 가게 이름은 셰 팡Chez Pain이고, 자신의 동네에 있었음에도, 비록 작은 거리에 있고 발길이 드문 곳이긴 했지만, 켈소는 처음으로 보고 처음으로 들어가 본다. 신문기자가 자주 들르는 가게들은 대부분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 있고, 그곳은 확인 불가능한 전설로 후광이 비치는 장소다. 스콧 피츠제랄드가 몇 번 먹은 술집이라든지, 조이스와 베케트가 아일랜드 위스키를 마신 술집이라든지, 헤밍웨이의 술집이나 존 더스패서스의 술집이나 트루먼 카포티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술집이라든지. 체 팡에 있는 크로아상은, 실제로 맛있었고, 막 구워냈으며, 커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사실로 인해 켈소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핀스키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인데, 동네 이웃인지도 몰라. 이런 가능성을 곰곰이 따져보다가 켈소는 소름이 돋는다. 무료하고, 편집증적이고, 관찰되지는 않으면서 관찰하기만 하는 정신 나간 사람. 떨쳐내는 것도 어려운 사람. 좋아요, 켈소는 결국 입을 뗀다, 말씀하세요. 창백한 남자는, 크로아상은 먹지 않고 커피만 홀짝거리더니, 켈소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의 미소는, 어떤 식으로 보든, 극도로 슬픈 미소이다. 또한 피곤한 미소인데, 마치 그 미소만으로도 고됨과 피곤함과 수면 부족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미소를 거두자, 그의 낯빛에는 순식간에 냉담함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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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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