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ntre paréntesis

야곱의 사다리가 쓰인 페이지 (Hojas Escritas en la Escalera de Jacob)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사들이는 걸 좋아한다. 이미 읽었지만 현재 서가에 없는 책들 중에서 말이다. 알퐁스 도데나 빅토르 위고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나는 자문한다. 이 책들로 무얼 했는지, 책들을 어떻게 잃어버렸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다른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이미 읽은 책인데 왜 소장하고 싶어 할까. 읽는 것이야말로 책들을 영원히 소유하는 방법인데 말이다. 그럴싸한 유일한 대답은 내 아이들을 위해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만적인 답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책을 찾아서 집을 나서야 한다.


 여전히 <죄와 벌> 옛날 판본이 생각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토르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 책이었다. 펄프 픽션의 본보기와도 같은 책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저렴한 책이었는데 버스정류소에서인지 아니면 새벽 네 시까지 영업하는 카페에서인지 잃어버렸다. 난 그 책으로 뭘 했을까? 모르겠다. 아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자마자 책의 중요성에 대해 망각했고, 이후 어딘가에서 책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당시엔 지금 책을 그러모으는 것처럼 책을 모아두지 않았다. 어쨌거나 난 그 책을 아주 어렸을 때 보았고 어느 곳에서든 라스콜리니코프를 잊을 수가 없다.


 페트뤼스 보렐이나 토머스 드 퀸시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보들레르(나는 열 종 이상의 <악의 꽃>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나 말라르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나 아르헨티나의 이히투르Igitur 옛날 판본을 다시 구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랭보에 관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면 최소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로트레아몽에 대해서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책 또한 잃어버렸다.


 그런 판본들이나 비슷한 판본을 찾는 건, 같은 폰트에 같은 레이아웃, 같은 표지, 어둡거나 밝은 신택스를 찾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젊은 시절, 가난하고 부주의하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비록 엄밀하게 같은 판본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마치 엘 도라도El Dorado의 금광을 찾으러 플로리다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부담을 진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리하여, 이것은 내가 책을 구하려고 하는 한 방식인데, 헌책방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렸거나 안 좋은 순간에 판매된 책 더미를 책장 귀퉁이에서 뒤적이기도 한다. 30년도 더 전에, 다른 대륙에서 잃어버렸던 책들을 말이다. 희망과 의욕에 차서, 자신이 처음으로 잃어버린 책을 찾는 사람의 불운한 기색을 띤 채로. 앞으로 안 읽을 책을 만나는 경우, 이미 그 책을 지칠 때까지 읽었기 때문이다, 땅에 묻어둔 돈을 탐욕스럽게 쓰다듬는 것처럼 그 책들을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책은 탐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비록 돈과 관련이 있는 건 맞지만. 책은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엠빠나다 하나 더 주세요! 행복한 2003년 되시길! 음악을 틀어주시오 주인장!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221-222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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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4. 12:19


POST : Entre paréntesis

보르헤스와 파라셀수스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처럼, 보르헤스는 무한하다. 그의 가장 덜 알려진 책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의 기억](1983)은 네 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세 편은 이미 다른 출판물을 통해 선보였고 추가된 한 편이 책의 제목을 차지한다. 이 책에서 독자는 "파라셀수스의 장미"라는 아주 간결하게 진행되는 짧은 텍스트를 만날 수 있고 (다시) 읽을 수 있다. 파라셀수스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파라셀수스를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다. 이 단편소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시간과 조응하는 어떤 무력함이 서술된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방문. 해가 질 무렵이며 파라셀수스는 피곤한 상태이고 굴뚝에서는 미약한 불이 연소되고 있다. 결국 해가 지고 꾸벅꾸벅 졸던 파라셀수스는 문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제자가 되길 원하는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소설의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두 개의 방이 딸려 있는 자신의 지하 작업실에서, 파라셀수스는 자신의 신에게, 불특정한 자신의 신에게, 그러니까 그 어떤 신에게든 기도하고 있다. 부디 제자를 보내달라고." 그리고 아주 느즈막한 시간에, 그 제자가 마침내 도착한다. 그는 파라셀수스에게 금화가 가득한 자루와 장미 한 송이를 건넨다. 첫 인상만 봤을 때 파라셀수스는 그 제자가 연금술사가 되길 바란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금세 그것이 오해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금은 관심이 없습니다", 제자가 말한다. 그럼, 자네는 무엇에 관심이 있나? 원석(Piedra)으로 향하는 길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에 파라셀수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길 자체가 원석이라네. 출발하는 지점 역시 원석이고. 만약 자네가 이 말이 와 닿지 않는다면, 그걸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는 거라네. 모든 걸음 걸음이 각각 목표로 향하는 걸세" 

낯선 남자는 파라셀수스의 제자로서 감내해야 할 그 어떤 수고스러움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테스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고 한다. 파라셀수스는 불쾌한 기색을 띠며 테스트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가 아니라 언제 그 테스트를 하고 싶은지 묻는다. 낯선 남자는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둘은 라틴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으나, 이제 독일어로 말한다", 보르헤스는 쓴다. "소문에 따르면", 낯선 남자가 입을 뗀다, "선생님은 장미를 불태웠다가 재가 된 장미를 다시 원래의 장미로 재생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예술적인 행위로 말이지요. 제가 그 경이적인 일의 증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선생님께 바라는 것이고 그 이후엔 제 모든 삶을 선생님께 바치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둘의 대화는 철학적인 담론의 색을 띠게 된다. 파라셀수스는 낯선 남자에게 장미를 파괴시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고 믿는지 묻는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가 되길 열망하는 그 남자가 답한다. 파라셀수스는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파괴될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낯선 남자가 말한다. "만약 자네가 이 장미를 벽난로 속으로 던진다면," 파라셀수스가 말한다, "장미는 소멸하고 남는 건 장미의 재뿐이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장미는 영원하다는 점일세. 단지 겉모습만이 바뀌었을 뿐이지. 내가 한마디만 하면 자네는 다시 원래의 장미를 볼 수 있다네." 낯선 남자는 그의 말에 의아해한다. 그는 파라셀수스에게 끈덕지게 요구한다. 장미를 태웠다가, 증류기나 아니면 어떤 말씀(Verbo)을 통해, 그것을 재에서 원래 모습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나 파라셀수스는 이렇게 대꾸한다. 언젠가는 속임수로 빠져들게 하는 사물의 겉모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혹은 쉽게 믿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탐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낯선 남자는 장미를 집어들었다가 불 속으로 던진다. 이 장미는 금세 재가 되어버린다. 낯선 남자는, 보르헤스는 말한다, "무한한 순간 동안 그는 어떤 말들과 기적을 기다렸다." 그러나 파라셀수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슬픈 표정을 띤 채 말없이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하던 스위스 바젤(Basilea)의 의사, 약사 들의 의견을 떠올린다. 낯선 남자는 자신이 뭔가를 이해했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더이상 파라셀수스를 괴롭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파라셀수스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은 채, 낯선 남자는 금화 자루를 집어들고는 예의를 갖춰 그 집을 떠난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파라셀수스를 업신여기지만 그만은 그에게 사랑과 존경심이 있었다. 그러나 파라셀수스의 가면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서 파라셀수스를 검증하려 하고 재단하려 하는 자신은 과연 누구인지 자문해본다. 잠시 후 그들은 헤어진다. 파라셀수스는 문까지 그를 배웅하며 언제든 자신의 집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낯선 남자는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둘은 더이상 서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혼자 남은 파라셀수스는, 램프의 불을 끄기 전, 낯은 목소리로 한마디 말을 한다. 그러자 그의 손에 있던 재가 원래 장미의 모습을 되찾는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74-175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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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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