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ntre paréntesis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관하여(Acerca de [Los detectives salvajes])


제목에 딸린 각주에 따르면 다음 글은 "로물로 가예고스 상 시상식 입장객들에게 나눠줬던 프로그램 책자에 수록됐던" 것이다. (그나저나 하면 할수록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걸까...)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관하여

소설 한 편을 끝내는 일은, 크지는 않지만 어떤 즐거움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는 그 소설에 대해 잊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꿈이나 악몽처럼 그것을 흐릿하게 기억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소설, 새로운 나날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더 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채로. 카프카 - 그는 금세기 최고의 작가다 - 는 옳았다. 그는 그의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브로트에게 했던 요청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연인이었던 도라에게도 했던 것이다. 브로트는 작가였고 카프카와의 약속을 완수하지 못했다. 도라는 덜 교육받았고, 아마도 브로트보다는 카프카를 더 좋아했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의 연인의 요청을 문자 그대로 실행했다고 간주한다. 그날 이후, 혹은 우리가 헛되이 그날 이후라고 믿고 있는 그날 이후, 특히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내부에 브로트와 도라라고 부르는 두 개의 악마와 천사를 가지게 된다. 항상 둘 중 하나는 다른 것보다 크다. 일반적으로 브로트가 도라보다 더 크고 잠재력이 있다. 내 경우는 다르다. 도라도 브로트만큼 충분히 크다. 도라는 내가 썼던 것을 계속해서 잊어버린다. 아무런
수치나 후회의 뒤틀림 없이 새로운 뭔가를 쓰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이제 어느 정도 잊혀졌다는 얘기다. 이 소설에 대한 약간의 코멘트 정도만 겨우 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나는 이 소설에서 많은 독법 중 하나로 마크 트웨인이 쓴 허클베리 핀에 대한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만스러운 탐정들] 2부에 나오는 수많은 목소리의 흐름을 미시시피 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소설은, 멕시코 시인 마리오 산티아고의 삶의 파편들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옮겨 쓴 것이다.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나에겐 행운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어떤 세대적인 패배와 한 세대의 행복을 반영하려고 했다. 여기서 행복이란 어떤 경우엔 용기를 뜻하지만, 용기의 한계를 뜻하기도 한다. 내가 보르헤스와 코르타사르의 작품에 영원한 빚이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내 소설은, 소설에 나오는 많은 목소리만큼이나 다양한 독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통스럽게 읽을 수도 있고, 또한 신나게 읽을 수도 있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326-327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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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 1. 11:23


POST : Entre paréntesis

세르히오 피톨


앞의 것도 그렇고... 어렵다...


세르히오 피톨


멕시코 작가 세르히오 피톨이 쓴 [카니발 삼부작]이 서점에 깔린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이 책은, 은밀하고 대체로 분류가 잘 안 되는 이 작가의 예외적인 세 편의 소설을 한 세트로 묶은 것이다. 그가 왜 은밀한 작가냐고? 왜냐하면 피톨은 카를로스 푸엔테스나 '붐'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은 당대의 작가들과는 달리 항상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멕시코에서는 그의 짝패가 없고 스페인어권 지역에서도 단지 극소수만이 그와 비교할 법하다. 그의 독서 습관에서도 볼 수 있는 점이다. 우리가 피톨에게 빚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르지 안드레예프스키의 기억할 만한 소설 [천국의 입구]의 번역으로, 그리고 항상 명민한 비톨트 곰브로비치에 대한 그의 독서에 있어서.

그는 다양한 여행을 하고 넓고 세계를 떠돌아 다님으로써 먼 곳에까지 푯말을 세울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가 갑작스레 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을 때 그는 이미 그곳에 없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그의 작품을 운 좋게 만난 소수의 독자들에 의해서만 찬사를 받는다. 다시 말해 다수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장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림자이지만, 또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고슴도치를 맞닥뜨렸을 때처럼 피하게 되는 거대한 그림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피톨은 살바도르 엘리손도가르시아 폰세보다 더 좋은 작가이다. 어차피 이 두 소설가 역시 많은 사람들의 독서 리스트에서 그다지 큰 의미를 차지하지 않는다.

[카니발 삼부작]에는 우선
1984년 에랄데 상 수상작인 [사랑의 행진El desfile del amor]이 포함되어 있다. 범죄소설이나 되돌릴 수 없는 역사처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멕시코의 거대한 미로 같은 소설이다. 다음으로 [신성한 백로를 길들이다Domar a la divina garza]. 지옥에 다가가는 소설이고, 피톨 식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부부의 삶La vida conyugal]. 피톨의 다른 모든 작품에서처럼 유머가 부족하지 않고, 현실과 글쓰기에 대한 반영이 담긴 소설이다. 

피톨은 현재 예순여섯 살이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꼭 말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데, 그는 계속해서 반항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35-136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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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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