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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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세르카스, [살라미나의 병사들]에서



초기에 인터뷰한 사람 중에는 로베르토 볼라뇨도 있었다. 볼라뇨는 칠레 출신의 작가였는데, 오래전부터 블라네스에서 살고 있었다. 그 해안가 마을은 바르셀로나와 헤로나 사이의 국경 마을이다. 47세였다. 등 뒤로는 상당한 수의 장서들이 있고, 히피 잡상인 같은 아주 개성 있는 분위기로, 유럽에 망명 와 있는 자기 세대의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골칫거리로 여결질 법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방문하기 바로 전 중요한 문학상을 수상했고, 받은 상금으로 블라네스 시내의 카레 암플라 거리에 있는 현대식 아파트를 하나 사서, 부인과 아들 하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188쪽)


볼라뇨 씨는 차와 토스트를, 나는 커피와 물을 주문했다. 우린 대화를 나누었다. 볼라뇨 씨는 지금 자기는 여러 가지 상황이 좋다고 말했다. 자기 책으로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20년 동안 거지보다 더 가난했었다고 말했다. 아주 어릴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온갖 일을 했다(비록 글 쓰는 것 외에 일다운 일은 한 적이 없었지만). 아옌데 시절 칠레에서 혁명에 동참했고, 피노체트 시절에는 감옥에 있었다. 멕시코와 프랑스에서 살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몇 해 전에는 아주 위험한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로는 블라네스에서 은둔자처럼 글을 쓰는 것 외에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은 일체 하지 않고 가족들하고만 지내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190쪽) 

 
그는 차를 입으로 후후 불며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찻잔을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이봐요,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죠. 수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난 아옌데를 욕했어요. 모든 잘못이 그 사람한테 있다고 생각했지요. 우리한테 무기를 주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한 내 자신을 욕합니다. 기가 막히게도, 그 인간은 우릴 자기 자식처럼 생각한 겁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살해되길 원하지 않았던 거지요. 만약 우리에게 무기를 주었더라면 우린 파리 목숨이었을 겁니다." 다시 잔을 잡으면서 말을 마쳤다. "결국 아옌데는 영웅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럼 영웅이란 뭡니까?"
  그 질문에 댕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늘 그 질문을 자신에게 해오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잔을 든 채 언뜻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항만으로 돌리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나서 어깨를 들썩했다.
  "모르겠네요. 그는 말을 이었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믿고 그렇게 잘 해내는 사람. 아니면 선(善)에 관하여 용기와 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결코 실수하지 않는, 아니 적어도 실수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순간에 실수하지 않기에 영웅이 아닐 수 없는 사람. 혹은 아옌데처럼 영운은 사람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이지 않는 자,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 모르겠네요. 당신이 보기에 영웅은 어떤 사람입니까?" (...)
  "모르겠는데요. 존 르카레에 따르면, 영웅의 기질을 가져야만 기품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죠."
  "그래요. 하지만 기품 있는 사람과 영웅은 같지 않죠." 볼라뇨 씨는 즉각 반박했다. "기품 있는 사람은 많아요. 필요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죠. 영웅은 반대로 아주 적습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영웅의 행동에는 거의 언제나 뭔가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있습니다. 뭔가 자기 본성 속에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요. 게다가 사람은 평생토록 기품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숭고한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웅은 단지 예외적으로 어느 한 순간만 영웅인 것입니다. 아니면 고작해야 광기와 영감을 지니는 일정한 기간 동안에만요. 아옌데가 바로 그랬어요. (191-193쪽)


(...) 볼라뇨 씨는 다시 그 인터뷰 기사도 언급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작품을 쓰고 있느냐고 물었다. 글을 쓰지 않고 있는 작가에게 요즘 어떤 것을 쓰고 있느냐는 질문처럼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없기에, 나는 약간 심기가 불편해져서 대답했다.
  "아니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듯 볼라뇨 씨한테도 신문에 글을 쓰는 것은 글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덧붙였다. "저는 이제 소설은 쓰지 않습니다." 나는 콘치를 떠올리며 말했다. "전 상상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죠."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 없습니다." 볼라뇨 씨가 말했다. "단지 기억이 필요합니다. 소설은 기억을 조합하면서 쓰이지요."
  "그렇다면 전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발한 척하면서 설명을 했다. "지금 저는 신문기자입니다. 말하자면 행동가죠."
  "그게 아닌데요." 볼라뇨씨가 말했다. "행동가는 곧 작가가 되려다 좌절한 사람이지요. 만약 돈키호테가 기사도와 관련된 책을 한 권이라도 썼더라면 결코 돈키호테가 되질 못했을 겁니다. 저 또한 글 쓰는 것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FARC(각주: Fuerzas Armadas Revolucionnarias de Colombia. 콜롬비아의 반정부혁명군)와 함께 총이나 쏘고 있겠지요. 게다가 진정한 작가에겐 결코 작가라는 신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록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하시죠?"
  "책다운 책을 두 권 쓰셨잖아요."
  "젊은 객기지요."
  "신문은 안 치나요?"
  "치지요. 하지만 즐거움을 위해 신문에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단지 생계 수단이지요. 게다가 신문 기자와 작가는 같지 않고요."
  "그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가 인정했다. "좋은 신문 기자는 항상 좋은 작가입니다. 하지만 좋은 작가가 좋은 신문 기자인 경우는 거의 없죠."
  나는 웃었다.
  "기발하지만 틀린 말씀입니다." 내가 말했다. (195-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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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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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쓰는 기술에 대한 조언(Consejos sobre el arte de escribir cuentos)



아래 글은 로베르토 볼라뇨가 직접 쓴 글이다. '단편소설 쓰는 기술에 대한 조언' 정도로 해석하면 되려나. 우리나라에 번역된 볼라뇨의 단편집 [전화] 중 "엔리케 마르틴"이란 단편은 볼라뇨가 스페인 작가 엔키레 빌라마타스에게 선물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붙어 있는 역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볼라뇨는 빌라마타스가 새로운 세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평가하며 단편집 [모범적인 자살들Suicidios ejemplares](1991)을 단편 작가 지망생의 필독서로 꼽은 바 있다"

이 주석과 관련된 내용이 아래 글에서 나온다.


출처 : http://www.enriquevilamatas.com/obra/l_suicidiosejemplares.html


나도 어느덧 마흔네 살이나 먹었으니 단편소설 쓰는 기술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해보겠다.

1. 한 번에 한 편씩 단편소설을 쓰지 말라. 솔직하게 말해, 죽는 날까지 똑같은 단편소설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2. 좋은 방법은 세 편을 동시에 쓰는 것이다. 다섯 편을 동시에 써도 좋다.

3. 주의할 점: 두 편을 동시에 쓰는 것에 대한 유혹은 한 번에 한 편씩 쓰는 데 전념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하지만 작품 안에 불공평하고 끈적끈적한 거울 연인 놀이가 배태된다. (* 작품들 간의 자기 복제를 말하는 것 같다.)

4. 키로가를 읽어야 하고 펠리스베르토 에르난데스와 보르헤스를 읽어야 한다. 룰포몬테로소,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읽어야 한다. 자신의 작품에 약간이라도 평가가 있는 단편작가라면 절대 셀라움브랄을 읽어서는 안 된다. 코르타사르비오이 카사레스를 읽는 건 맞지만 어떤 식으로든 셀라와 움브랄은 아니다.

5.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반복한다. 셀라와 움브랄은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안 된다.

6. 단편작가는 용감해져야 한다. 그걸 받아들이는 일은 슬프지만 그게 사실이다.

7. 단편작가들은 Petrus Borel을 읽었다는 것을 자만하곤 한다. 사실상 많은 단편작가들이 Petrus Borel을 모방하려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엄청난 착각이다! 그들은 Petrus Borel이 입는 것을 모방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실은 그들이 Petrus Borel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다. 고티에에 대해서도 모르고 네르발에 대해서도 모른다!

8. 좋은 점: 우리는 의견이 일치한다. Petrus Borel처럼 옷을 입고 Petrus Borel을 읽자. 하지만 쥘 레나르Marcel Schwob 또한 읽자. 특히 Marcel Schwob을 읽고 알폰소 레예스를 지나 보르헤스까지 가야 한다.

9. 진실은 에드가 앨런 포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을 모든 것이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10. 9번에 대해서 생각하자. 누구든 9번을 생각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무릎을 꿇고라도.


11. 강추할 만한 책과 작가들.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 불행하지만 용감한 필립 시드니의 소네트들, 로드 브루케가 쓴 필립 시드니의 전기. 에드가 리 마스터가 편집한 스푼 리버 선집. 엔리케 빌라마타스의 [모범적인 자살들].

12. 이 책들을 읽고, 체호프와 금세기(*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단편작가 두 명 중 하나인 레이먼드 카버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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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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