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ntre paréntesis

서문: 자기소개

 

  내가 태어난 해는 1953년이다. 스탈린과 딜런 토마스가 죽은 해이기도 하다. 1973년엔 정치범들을 잡아둔 체육관에서 8일 동안 억류되었다. 내 조국에서 쿠테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에 의해서였다. 그곳에서 웨일즈에 있는 딜런 토마스의 집 사진이 수록된 영국 잡지를 발견했다. 나는 딜런 토마스가 가난하게 죽었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은 화려해 보였다. 숲 속에 있는 마법의 집처럼 보였다. 스탈린에 대한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스탈린과 딜런 토마스가 나오는 꿈을 꿨는데 둘 다 시우닷 데 메히코에 있는 바에 있었다. 그들은 팔씨름 용으로 만들어둔 작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팔씨름은 하지 않은 채 누가 술을 더 많이 마시는지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웨일즈의 시인은 위스키를, 소비에트의 독재자는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꿈이 전개되는 중에, 점점 더 불쾌히지고 점점 더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이것이 내 출생에 관한 이야기다. 내 책들에 관해서라면, 다섯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단편집, 일곱 권의 소설을 펴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나의 시를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그 편이 나을 것이다. 나의 산문 책들은 충실한 독자가 일부 있다. 어쩌면 분에 넘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리슨의 제자가 조이스의 광신자에게 하는 충고>(1984, 안토니오 가르시아 포르타와 공동 작업)에선 폭력에 대해 말한다. <아이스 링크>(1993)에선 아름다움 - 지속되는 일도 거의 없고, 결국엔 재앙으로 끝난다 - 에 대해서 말한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에선 문학 행위의 숭고함과 비참함에 대해 말한다. <먼 별>(1996)에선 절대 악을 향해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 <야만스러운 탐정들>(1998)에선 모험 - 항상 예상이 빗나간다 - 에 대해 말한다. <부적>(1999)에선 그리스인의 기질을 지닌 우루과이 여성의 정열적인 목소리를 독자에게 전하려고 한다. 세 번째 소설인 <므시외 팽>은 건너뛰겠다.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록 20년 이상 유럽에서 살고 있지만 내 유일한 국적은 칠레이고, 이런 점은 내가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를 가슴 깊이 느끼는 데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 개의 국가에서 살았다. 칠레, 멕시코, 그리고 스페인. 나는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을 해보았다. 조금이라도 명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세네 가지 일만 빼고 말이다. 나의 아내는 카롤리나 로페즈이고 아들은 라우타로 볼라뇨이다. (* 이 텍스트가 편집부에 넘어온 뒤, 2001년 3월에, 그들의 둘째 딸 알렉산드라 볼라뇨가 태어났다.) 둘 다 카탈루냐 출신이다. 카탈루냐에서 나는 어려운 예술의 관대함에 대해 배웠다. 나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9-20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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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31. 16:49


POST : Etcétera

고메스 팔라시오 (GÓMEZ PALACIO)


# (아마도) 올해 안에 번역 출간될 볼라뇨의 단편집 PUTAS ASESINAS(살인 창녀들)에 수록된 짧은 단편 (27~36p). 책이 나오면 비공개로 돌리겠음. 뭐라 안 하면 그냥 내버려두고... 보기 편하게 한 문단 씩 띄었음. 잘못 해석한 부분 알려주시면 성은이 망극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거의 1년 만에 블로그 업데이트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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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시기에 고메스 팔라시오에 갔다. 스물세 살이었고 멕시코에 며칠이나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국립 예술원(* 베야스 아르테스)에서 일하던 친구 몬테레로는, 고메스 팔라시오 - 끔찍한 이름의 도시다 - 에서 하는 문학 교실의 일자리를 나에게 얻어주었다. 그러니까 그 일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국립 예술원이 그 지역 여러 곳에 마련해둔 문학 교실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우선 북쪽에서 며칠 쉬어, 몬테레로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고메스 팔라시오에 일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모든 걸 잊는 거지. 그의 제안을 왜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메스 팔라시오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멕시코 북부의 그 어떤 절망적인 동네에서도 문학 교실을 맡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만원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해 강의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산 루이스 포토시에 있었고 아과스칼리엔테 있었고 과나후아토에 있었고 레온에 있었다. 도시 이름들은 떠오르는 대로 나열했을 뿐이고, 어떤 도시에 처음 갔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도 기억에 없다. 그러고 나서 토레온에 있었고 살티요에 있었다. 두랑고에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메스 팔라시오에 도착했고 나는 국립 예술원을 방문해 나의 학생들이 될 사람들을 만났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떨었다. 강의 담당자는 눈이 튀어나왔고 땅딸막한 키의 중년 여자로 멕시코 국화 무늬가 찍혀 있는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도시 외각에 있는 어느 모텔에 내 숙소를 마련해주었다. 어느 곳에도 다다르지 않는 도로의 가운데에 있는 공포스러운 모텔이었다. 


  오전 중에 그녀가 직접 나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하늘색의 커다란 자동차가 있었고 굉장히 거칠게 운전했다. 비록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리 나쁘지 않은 운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토매틱 자동차였고, 그녀는 가까스로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항상 처음으로 하는 것은 도로변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었다. 내 숙소에서 먼 곳에 있어 희미하게 보이는, 노랗고 파란 지평선에 붉게 융기한 레스토랑. 우리는 오렌지 주스와 멕시코 식 스크램블 에그를 먹고 나서 이런저런 차를 마셨다. 식사 비용은 담당자가 (아마도) 국립 예술원 카드로 지불했다. 현금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후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북쪽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국립 예술원에서 후원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자신의 시집에 대해서도, 시 창작은 물론이거니와 그 일이 수반하는 고통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발리(* 볼라뇨가 즐겨 피우던 담배)를 피워댔다. 그리고 창문 너머의 도로를 보았고 내 인생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생각했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가 탑승한 후 고메스 팔라시오에 있는 국립 예술원 본부까지 이동했다. 본부는 파티오를 빼면 아무 매력 없는 2층짜리 건물이었다. 파티오엔 세 그루의 나무와 망가진 정원뿐이었다. 미술, 음악, 문학을 공부하는, 좀비처럼 우글거리는 청소년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정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그 파티오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두 번째 봤을 때 떨리기 시작했다. 저 모든 게 아무 의미 없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 의미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아마 당시엔 필연적으로 보이는 의미에 혼란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지 초조했던 것일 수도 있다.


  밤마다 잠들기가 어려웠다. 악몽을 꿨다. 침대에 눕기 전 숙소 출입문과 창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점검했다. 나는 목이 말랐고 유일한 해결책은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 일어나 욕실에 가서 컵에 물을 받아 마셨다. 그렇게 일어난 김에 다시 한 번 출입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지 확인했다. 이따금 나의 두려움에 대해 잊어버린 채 창문 옆에서 밤의 사막을 지켜보았다. 그 후 침대로 돌아가 눈을 감아보지만 물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다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소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일어나서 재차 숙소 문단속을 했고 사막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북쪽이나 남쪽으로 향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아니면 창문을 통해 밤의 어두움을 지켜보았다. 새벽녘까지 그러다가 결국 몇 시간 잠들 수 있었지만 많아야 두세 시간이었다.


  어느 날 아침 담당자와 아침 식사를 하는데 그녀가 내 눈이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잠을 별로 못 자서 그럴 거예요, 라고 말했다. 네, 빨갛게 충혈됐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주제를 바꾸었다. 그날 오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내가 운전해도 되는지 그녀가 물었다. 운전할 줄 몰라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도로가에 정차했다. 냉동 트럭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나는 트럭의 하얀 표면에 있는 커다랗고 파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과부 파디야의 고기>. 트럭은 몬테레이에서 왔고, 트럭 운전수는 우리를 관심 있게 보았다. 나로선 도가 지나친 관심처럼 여겨졌다. 강의 담당자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당신이 운전석에 앉아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핸들을 잡고 있는 동안 그녀는 차 앞쪽으로 돌았다. 그러고 나서 보조석에 앉아 가자고 말했다.


  나는 숙소와 연결되어 있는 고메스 팔라시오의 회색 라인을 따라 오랫동안 운전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강의 담당자를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좀 더 운전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 우리 둘은 조용히 도로를 바라보았다. 숙소를 지나쳤을 즈음 그녀는 자신의 시와 직업, 배려심이 부족한 남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끊기자 그녀는 라디오카세트를 켜서 란체라 노래 테이프를 넣었다.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오케스트라의 앞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였다. 내 친구예요, 강의 담당자가 말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요? 내가 물었다. 이 가수가 나랑 친한 친구라고요, 담당자가 말했다. 아. 두랑고 출신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 거기 머무른 적 있죠, 그렇죠? 네, 두랑고에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 그럼 문학 교실은 어때요? 여기보다 안 좋아요, 나는 예의상 그렇게 말했다. 비록 그녀는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친구는 두랑고 출신이지만 시우닷 후아레스에서 살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가끔씩 이 친구는 어머니를 보려고 자기 고향에 가요. 그리고 나에게 전화하죠. 그럼 난 시간을 내서 두랑고로 가서는 이 친구와 함께 며칠 보내요. 좋군요, 나는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친구 방에서 잠을 자죠.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의 음반을 듣기도 해요. 어쩔 때는 둘 다 주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요. 종종 라 레갈라다라는 비스킷을 가지고 갈 때가 있어요. 비스킷 중에서 이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거죠. 커피를 마시면서 비스킷을 먹어요. 우리는 열다섯 살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가장 친한친구죠. 


  나는 지평선 끝에서 산 사이로 사라지는 도로를 보았다. 동쪽에서 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의 사막은 어떤 색일까? 며칠 후 나는 숙소에서 자문해보았다. 수사적이면서 멍청한 물음이었다. 질문 속엔 내 미래가 함축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나의 고통을 버틸 만한 베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오후 고메스 팔라시오의 문학 교실에서 한 청년이 나에게 왜 시를 쓰는지,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물어왔다. 강의 담당자는 부재중이었다. 교실 안엔 다섯 명이 있었는데 학생은 그들이 전부였다. 남자가 네 명이었고 여자가 한 명이었다. 그 중 남자 두 명은 굉장히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키가 작고 말랐으며 다소 저속한 옷을 입고 있었다. 질문을 한 남자는 대학생이지만 공부하는 대신 (멕시코에서 가장 크고 아마도 유일한) 비누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머지 중 한 명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종업원이었다. 남은 둘은 학생이었고 여자는 공부도 일도 하지 않았다. 


  우연이지, 나는 그에게 답했다. 잠시 동안 우리 여섯 명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고메스 팔라시오에서 일할 가능성, 여기서 영원히 살 가능성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았다. 미술을 공부하는 두 명의 여학생이 파티오에 보였다. 그들은 예뻐 보였다. 운이 좋으면 둘 중 한 명과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 중 더 예쁜 사람은 역시나 다소 진부하게 보였다. 나는 오랜 연애와 그 결말을 상상해보았다. 어둡고 선선한 집과 식물로 가득한 정원을 상상했다. 그럼 언제까지 쓸 생각이에요? 비누를 만드는 남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든 대답할 수 있었지만 나는 간단한 쪽을 선택했다. 모르겠어. 그럼 학생은? 저는 시가 저를 훨씬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그러니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는 자신감과 단호함을 숨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모호하고 의욕만 가득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고 나서 비누 노동자를 보았다. 지금의 그가 아니라 열다섯 살이나 열두 살 때의 그를. 돌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하늘 아래의 고메스 팔라시오 교외 지역을 싸돌아다니고 있을 그를. 그리고 그의 동료들 또한 보였다.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그 후 우리는 시를 읽었다. 그들 중 재능이 있는 사람은 여자가 유일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가 교실에서 나왔을 때, 강의 담당자는 두랑고 주의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 둘과 함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이 경찰이며 나를 잡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나섰다. 몸이 마른 여학생은 남학생 한 명과 함께 떠났고 나머지 학생들 셋은 각자 떨어져서 갔다. 나는 그들이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의 복도를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 건물 입구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마치 그들 중 한 명에게 뭔가 말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나는 고메스 팔라시오 거리의 양쪽 끝에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 강의 담당자가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야.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도로는 더 이상 직선으로 뻗어 있지 않았다. 백미러를 통해 우리 뒤에 남겨진 도시에 서 있는 거대한 벽을 보았다. 밤이라는 걸 다시 인식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디오카세트에선 그 여자가수가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멕시코 북부의 잊혀진 마을에 대한 노래였다. 그곳에선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다. 그녀만 예외였다. 강의 담당자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울음은 조용했고 위엄이 있었으나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내 눈은 도로에서 1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 담당자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헤드라이트를 켜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운전했다. 


  자동차 라이트 켜라고요, 그녀가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자동차 계기판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그녀 스스로 불을 켰다. 속도를 줄여요,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여자가수가 자기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부르고 있었다. 굉장히 슬픈 노래예요,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자동차를 도로가에 주차시켰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낮은 아니었다. 내 주변의 땅들, 도로가 사라지는 곳에 있는 산들은 어두운 노란 빛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색이었다. 그 빛은(하지만 빛이 아니라 단지 색일 뿐이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영원할 수 있는, 무거운 무언가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리를 쭉 뻗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나는 엿 먹으라는 제스쳐를 했다. 어쩌면 제스처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엿 먹으라고 소리쳤을 것이고, 운전자는 나를 보았거나 내가 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지금 이야기의 거의 모든 것처럼,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그에 대해 생각했을 때 눈에 보이는 유일한 것은, 그의 백미러에 비친 얼어붙은 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말랐고, 재킷을 입고 있고, 아주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안경이었다. 


  그 차는 몇 미터 더 가서 서더니 잠잠해졌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고, 후진하지도 않았으며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우리가 지금 어떤 식으로든 공유하고 있는 공간을 부풀리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강의 담당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창문을 내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녀의 눈이 이전보다 훨씬 더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있네요, 라고 말하고 그녀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녀가 비워둔 보조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담당자가 열이 있기라도 한 듯 좌석은 따뜻하고 축축했다. 창문을 통해 한 사람의 실루엣을, 그의 목덜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우리처럼, 산을 향해 뱀처럼 굽어들기 시작하는 도로의 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남편이에요, 멈춰 있는 차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강의 담당자가 말했다.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테이프 뒷면을 카세트에 넣고 볼륨을 키웠다. 내 친구는 가끔 잘 모르는 도시를 돌아다닐 때면 전화하곤 해요, 그녀가 말했다. 한 번은 시우닷 마데로에서 전화한 적도 있어요. 밤새 석유 노조 지부에서 노래 불렀던 때죠. 그리고 새벽 네 시에 전화한 거예요. 레이노사에서 전화한 적도 있어요. 좋네요, 내가 말했다. 아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냥 전화만 하는 거예요. 가끔 그런 게 필요하니까요. 내 남편이 받으면 전화를 끊고요. 


  잠시 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손에 수화기를 든 담당자의 남편을 상상했다.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누구세요, 그러면 전화 끊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 역시 거의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놓는다. 나는 담당자에게, 차에서 내리는 게 좋을지 앞에 있는 차 운전사에게 가서 뭔가 얘기하는 게 좋을지 물어보았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성적인 대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살짝 넋이 나간 대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 앞으로 뭘 할 것 같은지, 진짜 남편이 맞는지 물었다. 우리가 갈 때까지 계속 여기에 있을 거예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는 게 좋겠네요, 내가 말했다. 강의 담당자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했던 유일한 것은, 비록 훨씬 나중에 짐작한 것이긴 하지만, 눈을 감은 채 두랑고의 그녀 친구가 부루는 노래를 문자 그대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앞에 서 있던 자동차 옆을 천천히 지나쳐 몇 미터 더 나아갔다. 나는 창문을 통해 보았다. 그 순간 운전사는 몸을 틀고 있어서 등밖에 볼 수 없었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당신 남편 확실해요? 언덕 쪽으로 그 차가 사라졌을 때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닌 줄 알았어요. 나도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차는 남편 것처럼 보였는데, 그녀가 숨넘어갈 듯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아닌 것 같았어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차 번호판을 바꾼 게 아니라면요, 담당자가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언덕에서 출발해 사막으로 접어들었다. 북쪽이나 고메스 팔라시오 방향으로 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번쩍이는 넓은 평원이었다. 이미 밤이었다. 


  보세요, 우리는 아주 특별한 곳에 도착할 거예요, 담당자가 말했다. 아주 특별한, 이라는 표현은 그녀가 사용한 말이었다. 


  여기를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예요. 차는 도로에서 벗어나 휴게소 같은 곳에 멈췄다. 실제로는 휴게소도 뭐도 아닌 단순한 땅, 차를 주차시키기 위한 넓은 공터였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였다. 마을이나 레스토랑에서 나는 불빛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담당자가 어떤 애매모호한 지점을 가리켰다. 아까 우리가 지나왔던, 대략 5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 구간이었다. 심지어 내가 좀 더 잘 보게 하기 위해, 그녀는 앞 창에 있던 자동차 커튼(?)을 옆으로 치웠다. 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곡선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 그 불빛들을 보았다. 보여요? 담당자가 물었다. 네, 빛이네요, 내가 대답했다. 담당자는 나를 보았다. 그녀의 부리부리한 눈은, 두랑고 주나 고메스 팔라시오 주변 황량한 지역에 있는 작은 동물의 눈처럼 번쩍거렸다. 이후 나는 다시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에는 단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 모르는 레스토랑이나 마을에서 나는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갔고, 자동차 불빛들이 느리지만 강렬하게, 그 공간을 가르고 있는 게 보였다. 


  느리지만 강렬한 불빛은, 그러나 더 이상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와 운송 트럭이 그 장소를 지나가고 몇 초 후에, 나는 그 빛이 어떻게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지 보았다. 공기에 매달린 채, 쉼 호흡을 하는 것 같은 녹색 불빛이, 사막 가운데에서 숨 쉬고 살아 있는 부분들에 의해,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것처럼 움직였다. 바다를 닮은, 바다처럼 움직이는 빛이었다. 하지만 땅의 유약함은, 경이적이면서도 고독한 녹색의 파도를 보존하고 있었다. 커브길에는 무언가, 간판이라든지, 버려진 건물의 지붕이라든지, 길게 뻗은 거대한 플라스틱, 만들어진 게 분명한 플라스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나, 우리 앞 먼 곳에, 마치 꿈이나 기적처럼 나타난 불빛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얼마 후 강의 담당자는 차를 출발시켰다. 한 바퀴 뺑 돌아 우리는 모텔로 돌아갔다.
  이튿날 나는 멕시코시티로 떠났다. 모텔에 도착했을 때 담당자는 차에서 내려 잠시 배웅해주었다. 내 방에 도착하기 전, 그녀는 손을 내밀며 작별인사를 했다. 당신이 내 실수를 용서해줄 거란 걸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결국 둘 다 시 독자잖아요. 나는 그녀가 우리 둘 다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방에 들어와 불을 켰다. 재킷을 벗고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창 쪽으로 다가갔다. 모텔 주차장에는 아직 그녀의 차가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사막의 바람이 얼굴 가득 느껴졌다. 자동차는 비어 있었다. 조금 더 멀리, 도로 가까이에서 있는 그녀를, 마치 강이나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팔을 약간 들고 있었다. 마치 공기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혹은 낭송을 한다든지. 아니면 다시 아이가 된 것처럼 조각상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새벽이 되어 그녀가 다시 날 찾으러 왔다. 그녀는 버스 정류소까지 나와 동행했다. 결국 문학 교실 일자리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는지 그녀가 물었다. 나는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것도 괜찮다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포옹’이라고 했다. 나는 몸을 기울여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가 앉은 버스 좌석은 인도 반대편에 있어서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다만 희미하게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거기 서서 버스를 보고 있거나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어쨌거나 나는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다른 손님들이 버스 복도로 지나다녔고 그들이 다른 쪽 좌석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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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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