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tcétera

볼라뇨 포레버!


어쩌자고 이런 어려운 글을...

이 글을 쓴 작가는 아니나 다를까 하비에르 세르카스. 제목만 봐도 딱 알겠네, 누가 볼라뇨 빠돌이 아니랄까봐. (나는 이 시점에서 어찌하여 세르카스를 잔뜩 질투하고 있는 건가...) 어쨌거나 현재 내 수준엔 너무 어려운 문장들이었다. 같이 스페인어 스터디 하는 아르아르 아르마니임 덕분에 그나마 혼자서는 해결 못했던 여러 문장을 해석할 수 있었다. 첫째 문단 말미는 생략... ( -_-)


원문 출처 : http://www.elpais.com/articulo/portada/Bolano/forever/elpepusoceps/20090405elpepspor_2/Tes


유령이 라틴 아케리카 문학판을 떠돌고 있다.
그 유령은 하나의 질문이다. 그 질문은 미국(과 모든 지역)에서 로베르토 볼라뇨의 사후 대성공의 원인은 무엇인가이다. 사람들은 그의 엄청난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기적으로 들려오는 성공에 관한 소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가장 최근의 소식으로는 [2666] - 볼라뇨의 유고 작품 - 이 지난 3월 전미 서평가 연맹에서 수여하는 2008년에 출간된 최고로 좋은 소설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평을 받고 진정한 베스트셀러가 된 후에 말이다. 그런 모든 일들은 외국문학에 방어적인 그런 나라에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다. 유령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매우 여러 가지다. 북아메리카에서 볼라뇨가 성공한 원인을 그의 때이른 죽음 때문이라고 읽었다. 그의 주위에 비운의 전설이 이미 만들어졌다는 것 때문이라고도, 정치적 추구나 문학적인 소외나 헤로인 집착의 허구적인 부분 때문이라고도 읽었다. 북아메리카에서 볼라뇨가 성공한 원인을, 볼라뇨가 북아메리카 작가가 되는 어떤 방식, 그러니까 그의 문학적인 모델이 북아메리카인이며 그의 소설은 스페인어보다는 영어에서 더 잘 기능하기 때문이라고도 읽었다. 북아메리카에서 볼라뇨가 성공한 원인을, 볼라뇨를 발견한 북아메리카의 대형 출판사가 그를 북아메리카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이런 모든 일들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도 읽었다. 더 많은 답변을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볼라뇨의 성공 가치를 깎아내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건 궁극적으로는 중요한 게 아니지만, 볼라뇨의 다른 작품에 대한 가치도 깎아내리기 위해서 고안되었다는, 이건 중요하다, 당혹스러운 감정을 발생시켰다. 고백하자면 난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때이른 죽음을 맞은 작가도 많고 볼라뇨만큼 성공한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아마 현재에도 없을 거라는 비운의 그런 전설에 둘러싸인 작가들도 많다. 자신의 문학적인 모델이 북아메리카인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는 북아메리카 작가인 작가들도 많이 있지만 볼라뇨만큼 성공한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아마 현재에도 없을 것이다(볼라뇨의 작품이 스페인어보다 영어에서 더 잘 기능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더 잘 설명해주는데 사실 이렇게 이렇게 말하는 건 조금 우스운 일이다). (*네 문장 같은 한 문장 생략)


사실 유령 같은 질문은,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아마도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볼라뇨를 이미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읽지 않았다면, 한 번만,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다 없었던 걸로 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 지금 당장 이 기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장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간다. 진열창을 발로 걷어차 부셔버리고, 볼라뇨의 아무 책이나 집어든다. 책과 진열창에 대해 경건한 마음으로 보상을 하고 다가올 며칠을 볼라뇨의 책을 읽는 데 투자한다. 그러면 다음의 내 올바른 질문에 아마도 동의할 것이다. 볼라뇨는 왜 죽고 나서야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왜 살아 있을 때 성공하지 못했는가. 물론, [2666] - 미국과 다른 모든 지역에서 그를 신화화한 유고 작품 - 은 예외적인 소설이지만,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먼 별]과 [아메리카에서의 나치문학]과 다른 단편집들과 현실에 천착하여 위대한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전지전능한 기계가 된 순간부터
그가 쓴 모든, 아니 거의 모든 작품들 역시 특별하다. 그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명예라는 차원에서 그것은 사실 아무 가치가 없다. 읽힌다는는 것으로 볼라뇨는 충분히 위대하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인생 말미에도 소수자의 강한 특권을 향유하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책들이 그의 수도자 같은 수수한 삶에서 그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때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거짓말이다. 그것은 너무한 현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지 나에게만, 때때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볼라뇨는 살면서 절대적인 성공을 알았다. 그것은 유령 같은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며 올바른 질문처럼 보이는 첫 번째 질문 역시 잘못된 질문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진정한 작가는 성공과 실패(혹은 성공과 실패라고 곧잘 부르곤 하는 것)가 신기루라는 것을 안다. 최고의 작가들, 좋은 작가들, 보통의 작가들, 안 좋은 작가들, 최악의 작가들이 그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 증거다. 아니면 다른 식으로도 말할 수 있다. 모든 진정한 작가는 진정한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시릴 코놀리는 이렇게 썼다. "작가의 진정한 임무는 걸작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는 작가는 극소수이다. 내가 봤을 때 볼라뇨는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비교할 수 없는 글쓰기의 강렬함을 시도했다. 단지 하나의 걸작에서가 아니라 여러 작품들에서. 볼라뇨와 비교하여 더 찬양 받을 만한 성공을 할 수 있는 작가가 없다는 것을 볼라뇨보다 내가 더 잘 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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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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