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ntre paréntesis

앙헬 플라네이의 유령


카탈란 화가 앙헬 플라네이의 이름 철자는 Ángel Planells. 카탈란어를 읽을 줄 몰라 구글 번역기 듣기 기능을 참고해 앙헬 플라네이라고 썼는데... (아무래도 틀렸겠지 -_-;) 혹시 읽을 줄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길...


앙헬 플라네이의 유령

겨울 오후에 가끔씩 블라네스의 중심가에서 앙헬 플라네이의 유령이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의 여자형제들의 집에서 올 때나 그의 조카인 제빵사 조안 플라네이의 집으로 갈 때. 아마도 조안 플라네이는 오늘날 가장 많은 앙헬 플라네이의 작품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따금씩 나는 조안 플라네이의 빵집에 들러 그의 삼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나에게 뉴 벌링턴 갤러리에서 있었던 1936년 런던 초현실주의자의 첫 번째 전시회 사진을 보여준 지도 꽤 됐다. 사진 안에서 앙헬 플라네이가 서명한 작은 크기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스페인 화가들 중 피카소와 도밍게스, 달리, 미로의 작품을 전시했던 런던 초현실주의자 전시회는, 세계 규모의 전복을 시도하려 했던 그룹의 혁명적인 활동에서 분수령이 되었다. 이후 플라네이에게 스페인 내전이 찾아온다. 그는 오랜 어둠의 시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 끔찍한 정물화를 그려야만 했고 바르셀로나에서 화가 수업을 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열정이란 지옥의 패거리였던 사제와 수녀의 입에 담긴 공허한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 동안 플라네이는 뭘 배웠을까? 우리는 답을 알 수 없다. 어쩌면 굴복하는 일에 대해 완벽하게 연습했을지도. 어쩌면 모든 노력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게 됐을지도. 그래서 매년 여름 그는 블라네스에 올라와 여자형제들 집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의 그림에서 점차  초현실주의의 오랜 테마 - 그땐 이미 초현실주의가 지하 묘지에 잠들어 있을 때다 - 가 되살아났다. 그런 우울한 복귀에 대한 증거가 바로 그림 "알 수 없는 뭔가를 기다리는 선원Mariner esperant l'arribada de no sap què"(1974)이다. 블라네스의 중심 거리에서 그와 몇 차례 만났을 법도 하지만 그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본다. 나는 그가 가끔씩 우리 동네 파세오 마리티모를 걸어다니는 것을 본다. 사색에 빠진 가벼운 유령의 모습으로. 화가 앙헬 플라네이는 1901년에 태어나서 1989년에 죽었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30-131p), ANAGRAMA



Mariner esperant l'arribada de no sap què(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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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4. 04:01


POST : Entre paréntesis

빌라-마타스의 최근 책


한 달쯤 전에 봤던 글인데 이제서야 포스팅을 한다. [괄호 치고]에 언급되는 빈도수만 놓고 봤을 때 엔리케 빌라-마타스는 스페인어권 생존 작가 중에서 볼라뇨가 가장 선호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아래 언급하고 있는 책은 작년 11월에 [바틀비와 바틀비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출간됐다. 출간될 거란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더욱 반가웠다. 아래 글 서두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하여 도움이 될 거 같아 원서 표지 이미지 파일 첨부한다.



빌라-마타스의 최근 책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은 불안하다. 책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에서부터 말이다. 사진 속에는 주말 복장을 차려 입은 세 명의 시골 청년이 등장한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채, 그들은 자부심 있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우아함이 부족하지 않은 자부심이고 무심하면서도 초연함이 느껴지는 자부심이다. 마치 우리들이 모르는 문학의 어떤 부분에 대해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젊을 뿐만 아니라 미남인 이 시골 청년들은 시골 길을 지나간다. 그리 넓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길을. 파종 중이거나 휴경 중인 밭 가운데서, 그들은 얼굴을 돌린 채 자신들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를 똑바로 바라본다. 길에 멈춰서서, 그들은 긍지에 찬 표정을 띤다. 심연과 현기증을 위해 주조된 듯한 얼굴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틀비와 바틀비들](아나그라마 출판사)의 내부에서 우리 독자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가벼운 산보와도 같은 빌라-마타스의 최근 책은 각주의 형태로 씌어졌고, 문학에 대한 심연과 현기증뿐만 아니라(비록 어떤 순간에는 이것이 유일한 논쟁거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류가 처하게 되는 인생의 한 단면에 대한 심연과 현기증에 의해 씌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전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특정 순간에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작가들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의 태도가 도전적이고, 글쓰기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명확해지는 구역에, 늘 확실하다고 할 수 없는 우아함과 유머만을 무기로 장착한 채 돌파하는 것이 도전적이다. 이쯤 되면 예의상 좀 더 수사적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소설인가, 아니면 문학(혹은 반문학) 수상작 선집인가, 아니면 기존의 분류에서 벗어난 잡다한 책인가, 아니면 작가의 일대기인가, 아니면 신문기사를 짜깁기한 것인가? 그 순간 내게 떠오른 유일한 대답은, 이 책은 다른 종류의 책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모든 것들을 혼합하여 만들어진 책. 어쩌면 21세기형 소설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단편소설과 신문기사와 연대기와 자서전을 끌어모아 만든, 말하자면 하이브리드 소설인 것이다. 이 책의 어떤 방식은 빌라-마타스의 다른 작품 [어림수로 끝내기 위하여Para acabar con los números redondo]를 떠오르게 한다. 1997년에 출간된 아주 근사한 책으로 내가 읽었던 정말 멋진 책들 중 하나이다. 거의 주목 받지 못한 채 지나갔으나 그 해 스페인에서 출간된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데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두 책의 기본 정신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시적인 에너지도 같다. 심지어 어떤 가벼움마저 유사하다. 하지만 [어림수로 끝내기 위하여]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던 점이나 그래서 충분히 만족하고 확신할 수 있었던 점이, [바틀비와 바틀비들]에서는 뒤늦은 미궁이 된다. 마치 상징주의 화가들의 그런 미궁처럼. 또한 그것은 열정이고 출구를 향한 탐구이며 이따금씩 백조의 노래(혹은 울부짖음)이다. 그것은 포켓 사이즈의 지옥(혹은 보이지 않는 지옥)을 분류하고 주워 모은 작가의 모든 가치에 대한 것이다. 그런 지옥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거대한 지옥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말한다. 인생의 특정 순간에(광휘의 순간이거나 절망의 순간이거나 광기의 순간이다) 글쓰기를 그만둔 작가들뿐만 아니라 빌라-마타스 작가 본인처럼 절대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을 작가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 죽음에 대해서, 죽음 앞에서 무용한 행위들 -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구하거나 구할 수 있다 - 에 대해서, 작가들뿐만 아니라,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독자가 이해하는 점인데, 사실상 독자들에 대해서, 모든 층위의 인류에 대해서, 살아 있는 사람과 삶을 포기한 사람에 대해서, 모험에 대해서, 죽음과의 싸움에 대해서, 책을 읽는 사람과 책 읽기를 그만둔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생각에 이를 수 있게 하는 이 모든 것이 고작 179페이지 분량의 책 속에서 드러난다. 빌라-마타스(
그는 당대 스페인 소설판에서 독보적인 존재다)의 유머 감각과 우아함에 의해 부드러워진 책이다. 그의 도전적인 태도는 옷매무새가 단정한, 사진 속의 주말 복장을 한 시골 청년의 그것과 유사하다. 비록 빌라-마타스는 내가 알고 있는 시골 청년의 모습과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비록 빌라-마타스는 일요일마다 일을 하기는 하지만.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286-288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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