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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RCH RESAULT : 글 검색 결과 - Entre paréntesis (총 35개)

POST : Entre paréntesis

지옥의 천사들


오래 전, 1966년에, 미국 기자 헌터 S. 톰슨은 '지옥의 천사들' - 미국 서부의 오토바이 족 - 에 관한 을 한 권 썼다. 그 책으로 인해 당황해 하던 독자들은 도시 패거리들, 그러니까 60년대 '헬스 엔젤스'의 가장 폭력적인 특성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전국을 질주하면서 흥청망청 맥주를 마셨고 싸움에 몰두했다. 지금으로선 피로 물든 싸움이라기보다는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싸움이다. 물론 '천사들'의 몇몇 싸움이 피로 범벅이 됐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의 미학적 미장센은 웨스턴 시대의 신화와 그 명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무법자desperados"로서의 명성이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자유와 무례함을 선택했다. 젊은 프롤레타리아 백인인 그들은 마초면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가방끈이 짤았고 임시직을 전전했다. 명예 아리아인의 미래 멤버라고 말하고 다니던 사람들이 미국의 교도소에서 불어나던 시기였고 '천사들'의 꿈과 끝없는 고속도로가 자신들 내적인 공허함 속에서 사그라지던 때였다. 톰슨은 '천사들'과 몇 달을 함께 살았다. 정신분열증적으로, 그리고 녹초가 된 상태로. 그 결과가 이 야만적인 책이다. (톰슨이 썼던 모든 책들의 어떤 부분들은 늘 '천사들'보다 훨씬 야만적이다)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읽을 만한 그의 책에서 우리는 생생히 되살릴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오토바이 족들의 디오니소스적 파티를, 비트닉들의 축제와 히피족들의 탄생 축제를. 난교 파티와 지저분한 성매매를(그 안에서 '천사들'은 전문가였다), 경찰들의 침략을,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을 이념적으로나마 갱신하려 했던 알렌 긴스버그의 공허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시도를. '지옥의 천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미국 서부에는 그들 일부가 남아 있지만 그들은 더이상 어느 누구에게도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들의 명성은 헐리우드의 기념품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하켄크로이츠 오토바이 족들에게 엄청 무시당했던) 멕시코인들나 흑인들의 어떤 조직이라도 하룻밤이면 '천사들' 전부를 제거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29-130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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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4. 16:54


POST : Entre paréntesis

디마스 루나, 왕자


 얼마 전에 어느 왕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은 디마스 루나.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이따금씩 그를 디마스 문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가 교황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의 혈통이 발렌시아 영토에서가 아니라 톨레도의 척박한 땅에서 유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의 핏속에 이제는 잊혀진 어느 바티칸인의 인자함이 들어 있다는 사실. 그가 자신의 친구라든지 고객이라든지 직원 들을 대하는 걸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대로 그의 호기심은 무궁무진하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블라네스의 뜨거운 여름 동안 네 가지 이상의 언어를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관광객들이 도착하면서 지금은 심지어 푸시킨의 언어에서 몇몇 말들을 서툴게나마 하고 있다. (
만약 푸시킨이 그가 하는 말을 듣는다면 자신의 무덤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 틀림없다.) 그의 수호천사는 [지중해]다. 그가 가장 애호는 영화. 언젠가 그는 굉장히 특이한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요레트 데 마르에서 열린 어느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보드카, 우유, 몇 개의 달달한 알코올과, 지금은 기억 나지도 않는 많은 것들, 단순히 장식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많은 것들을 혼합한 칵테일로 말이다. 블라네스에서 디마스 루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누구도 절대 완전하게 혼자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스페인식 선술집의 부패하지 않는 정신이 그의 안에 살고 있다. 그는 잘 살기 위해, 선을 행하기 위해, 그리고 누구의 삶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28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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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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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남아메리카에서 돌아오는 어느 날이었다. 밤이었고, 비행기는 브라질 위를 날고 있는 듯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비행기는 약한 불빛만 켜둔 채 날고 있었다. TV에서는 (내 생각에) 코믹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영화는 소리 없이 흘러갔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만을 위해, 잡식성 영화 마니아들만을 위해. 그때 갑자기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우리에게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영어로만 말하는 스튜어디스가 비행기 통로를 서둘러 지나갔다. 우리를 깨우면서, 안전벨트를 확인하라고 말하면서. 불이 켜졌고 그들은 우리에게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새로운 통지가 있을 때까지 안전벨트를 풀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그렇게 했고 계속해서 잠을 잤다. (잠을 자지 않던 사람들은 빼고.) 비행기가 난기류 지대에 진입했다. 비록 비행기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떨림을 느꼈음에도 우리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마치 다른 꿈이 우리의 꿈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 마냥. 잠 자는 동안 꿈 속에서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치더니 추락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아내가 우리 아이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눈을 떴고 그와 동시에 비행기의 모든 불빛이(이미 희미한 상태이긴 했지만) 꺼져버렸다. TV와 코믹 영화도 꺼졌다. 기내는 캄캄했으며 승객들 모두가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비행기는 기막힌 속도로 추락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기막힌 어휘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를 끌어안았을 때 느꼈던 감각은 현실이었다. 농밀하면서도 진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현실. 거기에 비현실은 결단코 없었다. 빛도 없었고 영화도 없었으며 어떻게 하라고 말해줄 스튜어디스도 없었다. 한탄과 절규만이 있을 뿐. 전 인류가 알고 있던 현실에 대한 오랜 감각. 그러고 나서, 십 초 정도 지난 뒤, 비행기는 안정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다시 잠을 잤다. 다른 사람들은 위스키를 부탁했다. 승객들 중 한 명은 어떤 스튜어디스가 조리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걸 봤다고 단언했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31-132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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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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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네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기념(?)으로, 볼라뇨가 쓴 크리스마스 이야기. 과연, 볼라뇨 답달까...


블라네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겨울에 코스타 브라바(*브라바 해변)의 몇몇 마을은 유령의 마을처럼 보인다. 특히 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일부 지역들. 휴면기에 접어든 그런 곳들은 잠자는 도시나 악몽의 도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높은 건물들과 자그마한 아파트들이 있는 그런 곳에 있다보면 실수했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늘 후회하지만 이유는 잘 알 수 없는 일들. 아마도 더 잘했어야 하고 그럴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 때문이리라. 아니면 그저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마치 손자나 클라우제비츠가 절대 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그런 전투들처럼. 사실상 손자와 클라우제비츠는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있는 전투를 하라고 조언했을 뿐이다. 어느 날 텅 빈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이 동네를 지나다가 얼핏 친구를 보았다. 그는 60년대에 지어진, 어쩌면 알루미늄 진폐증의 유발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어느 유령의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동박박사의 옷을 입고 있었다. 비록 그가 변장을 했음에도, 그리고 빠르게 어두워져가는 시간이었음에도, 나는 그를 알아보았고 그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정해져 있는 것처럼, 다른 두 명의 동방박사가 그와 동행하고 있었다. 두 명 다 흑인이라는 걸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가 그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감비아 출신으로 블라네스 교외에 있는 과수원에서 일을 하곤 했으나 만났을 당시엔 실직 상태였다. 흑인은 한 명만 필요했어. 친구가 말했다. 근데 가스파르 역을 할 백인을 찾을 수가 없더라. 우리는 완전히 텅 빈 그 거리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근데 여기서 뭐해? 내가 물었다. 나 여기 있는 아파트에 살거든. 친구가 답했다. 여기에 동방박사 옷이 있어서 여기에서 옷을 갈아 입지. 차까지 그들과 동행했다. 흑인은 많은데 백인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애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나는 그들이 떠나기 전에 물어보았다. 친구는 미소를 띠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대가 변했잖아. 그리고 애들이 그걸 제일 먼저 알고 있어.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27-128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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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21. 16:46


POST : Entre paréntesis

친구들은 이상하다


친구들이 아니라 우정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씩 우정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시도를 해보기는 한다. 우리는 대개 어둠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 어둠은 우리에게 이상하지 않다. 우리 내부에서 나와 순수한 외부의 실제와 뒤섞이는 어둠이다. 어떤 행동들에 대한 어둠과 함께, 우리가 친숙하다고 몇 번씩 믿는, 하지만 실제로는 공룡만큼이나 이상한 그림자들의 어둠.

가끔은 그것이야말로 친구다. 구렁텅이를 건너고 있는 공룡의 실루엣. 우리는 그것을 붙잡을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으며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친구들은 이상하다. 그들은 사라진다.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물론 몇몇은 할 말이 있고, 그것을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오랜 친구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와는 칠레에서 1973년에 알게 됐는데 작년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내 부인과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위험과 모험과 감옥과 피로 가득한 이야기였다. 결정적인 순간 그는 어느 날 밤을 떠올렸다. 두 명의 젊은이가 야간 경비병이 쏘는 총알을 피해 도망치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교외 지역에 있는 파티오를 통과해서 탈출했다. 아내는 그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나도 그가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두 명의 젊은이 중 하나가 내 친구였다. 나머지 한 명이 누구냐고 그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기억 안 나? 아니, 기억 안 나는데. 나머지 한 명은 너잖아, 라고 그가 말했다. 처음에 난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날 밤은 내 기억에서 지워져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공룡, 혹은 공룡의 그림자를 봤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세계의 모든 총을 피하면서 은밀히 구렁텅이를 건너고 있는 공룡을 말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26-127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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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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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 포르타


안토니 가르시아 포르타는 볼라뇨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볼라뇨는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제일 친한 친구는 시인 마리오 산티아고였어요. 그 친구는 1998년에 죽었죠. 지금은 이그나시오 에체바리아, 로드리고 프레산, A. G. 포르타 이렇게 세 명이랑 제일 친해요." 


A. G. 포르타

내 친구 A. G. 포르타의 소설(브로델에 의한 브로델Braudel por Braudel, 엘 아칸틸라도El Acantilado)이 막 시장에 나왔다. 나는 그의 아들 키가 대략 가슴만큼 왔을 때부터 그를 알았다. 지금 그 아이는 스물한두 살 정도의 젊은이로 영화를 공부한다. 아이는 이제 아버지보다도 크고 나보다도 더 크다. A. G. 포르타를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1978년, 바르셀로나 주변부에 있는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였다. 시집만을 출간하는 출판사였고, 단념이라도 한 듯, 이름은 하수도La Cloaca였다. 시작이 좋지는 않았지만 ㅡ 당시 우리는 시를 썼고 바르셀로나의 5구역 조기축구회에서 챔피언을 먹었다 ㅡ 최소한 장래가 촉망되는 시작이었다. 절대 잊지 않을 일이 있다. 내가 땡전 한 푼 없던 시절 이 친구가 요구르트와 담배를 들고 타예르 가에 있는 우리 집에 나타났던 것이다.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선물이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흘렀다. 나는 히로나로 갔다가 다시 블라네스로 자리를 옮겼고
A. G. 포르타는 계속 바르셀로나에서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출간했던 첫 번째 소설은 그가 출간했던 첫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 둘이 함께 썼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제목은 [모리슨의 제자가 조이스의 광신자에게 하는 충고Consejos de un discípulo de Morrison a un fanático de Joyce]. 누가 모리슨의 제자이고 누가 조이스의 광신자인지 수차례 질문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A. G. 포르타가 조이스의 광신자였다. 그는 그 아일랜드 작가의 모든 글을 읽었고 사실상 그 이후에 있었던 어떤 형태의 오랜 침묵은 그런 독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는 글을 쓰거나 [율리시스]에 나오는 자유분방한 구절을 무작위로 모으는 데 매진했다. 그렇게 끼워맞춘 시는, 뒤샹 식으로, 기성품readymades이라 불렀다. 몇몇 시는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다른 소설을 써냈다. [브로델에 의한 브로델]은 인생에 대해, 삶의 유동성과 겉모양, 속임수, 행복에 대해 다룬다. 그의 글쓰기는 호크니그림만큼이나 분명하다. 일단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25-126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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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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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노르 파라에 대한 여덟 가지


이달 초에 니카노르 파라가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다. (관련 스페인어 기사는 A님의 번역을 참고.) 니카노르 파라는 볼라뇨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괄호 치고]에서는 보르헤스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쨌거나 파라의 수상을 기념하는 의미로 볼라뇨가 파라에 대해 언급한 에세이를 찾다가 이 글을 골랐는데...

다음 글은 2001년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니카노르 파라의 전시회 카달로그 서문에 씌었던 글... 이라고 하는데, 분위기상 구어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구어체로 옮겼다. 좌우간 중요한 점은, 무슨 말을 하는지 맥락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 니카노르 파라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선 제목부터 의아하다. 원제는 Ocho Segundos con Nicanor Parra. 굳이 해석하자면 '니카노르 파라와의 8초'. 하지만 segundo라는 단어에 속마음, 본심이라는 뜻이 있기도 하고, 이 글이 총 여덟 개의 문단으로 되어 있어서 '니카노르 파라에 대한 여덟 가지'라고 의역을 했는데... 틀려먹은 게 아닌가 싶다. -_- 혹시 어디가 틀렸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덧글로 좀 알려주세요. 뿌잉뿌잉. 그밖에도, 전반적으로 망한 것 같... OTL



니카노르 파라에 대한 여덟 가지


  니카노르 파라의 시와 관련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다음 세기에도 살아남을 거라는 점이죠. 물론 이 말은 별 다른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파라는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죠. 어찌됐건, 그는 살아남을 거예요. 보르헤스의 시, 바예호의 시, 세르누다의 시, 그리고 다른 몇몇 시인들의 시와 함께 말이죠. 말할 필요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에요.

  파라의 내기, 파라가 미래를 향해 투시했던 관측기는 여기서 다루기엔 너무 복잡합니다. 너무 어두운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는 어둠 속에서 움직였어요. 하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배우는 완벽하게 볼 수 있죠. 그의 특징이나 그의 복장, 종양처럼 덧붙는 상징들은 일상적인 거예요. 그는 의자에서 파묻혀 자고 있는 시인이에요. 공동묘지에서 길을 잃은 미남이기도 하고요. 머리카락을 다 뽑을 때까지 머리칼을 쥐어뜯고 있는 강연자이기도 하죠. 감히 무릎을 꿇고 오줌을 누는 용감한 사람이기도 해요. 시간이 흘러가는 걸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슬픔에 빠진 통계학자이기도 합니다. 파라를 읽기 위해선 다음의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더 나은 건 없을 거예요. 파라 스스로가 했던 질문,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했던 질문이죠. "이 손은 손인가 아니면 손이 아닌가?" (이 질문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손을 보면서 해야 합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파라가 생각은 했지만 결코 쓰지 않았던 그 책을 누가 쓸지 말이에요. 전쟁 이후의 전쟁, 강제 수용소 이후의 강제 수용소를 말하고 노래하는 2차 세계 대전의 역사에 관한 책. 네루다의 총가요집Canto general를 즉각적으로 뒤집어버리는 어떤 형태의 시. 파라가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텍스트인 선언문el Manifiesto, 거기엔 자신의 시적인 신념이 드러납니다. 파라 자신이 필요하다고 믿을 때마다 무시했던 것과 똑같은 바로 그 신념이죠. 다른 것들 중에서도 정확히 이 이유 때문에 신념이 있는 겁니다. 탐험되지 않은 영토에 대한 공허한 이상을 주기 위해서말입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진정한 작가들은 그 속에 깊숙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뚜렷한 위기나 위험의 시간이 오면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죠.      

  용감한 사람이라면 파라를 따를 겁니다. 젊은이들만이 용감하죠.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젊은이들만이 그래요. 하지만 파라는 청소년용 시를 쓰지는 않았어요. 순수함에 대해서 쓰지도 않았죠. 고통과 고독에 대해서 썼습니다. 쓸모없으면서 필요한 다툼에 대해서 썼어요. 마치 분열될 운명에 처한 부족민들처럼, 분해되어버릴 운명에 처한 어휘들에 대해 썼죠. 파라는 다음날 전기의자에서 사형 당할 사람처럼 글을 썼어요. 멕시코 시인 마리오 산티아고는, 제가 아는 한, 파라의 작품을 명민하게 이해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검은 별똥별을 봤을 뿐이죠. 걸작의 최우선 조건은 주목받지 않은 채 지나가는 겁니다.

  시인은 살아가는 동안, 즉석에서 뭔가를 하지 않고는 다른 대책이 없을 때가 생깁니다. 비록 그 시인이 곤살로 데 베르세오에 대한 명성을 읊을 능력이 있거나, 가르실리아소의 7음절 시와 11음절 시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더라도 말이에요. 심연으로 몸을 던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 교양 있는 듯한 칠레인들 일당 앞에서 벌거벗은 채 맞서야 할 때가 있기도 하고요. 물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죠. 걸작의 최우선 조건은 주목받지 않은 채 지나가는 거니까요.

  정치적인 메모입니다. 파라는 계속 생존해왔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니지만 의미있는 일이죠. 우파를 굳게 믿었던 칠레 좌파들도, 신 나치 칠레 우파들도 파라를 어떻게 할 수 없었죠.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어요. 신 스탈린주의 라틴아메리카 좌파들도, 현재 세계화되고 있고 최근까지 억압과 대량학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라틴아메리카 우파들도 파라를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북아메리카 대학 캠퍼스에서 우글거렸던 라틴아메리카의 하찮은 교수들도, 산티아고의 작은 마을에서 어슬렁거리는 좀비들도 파라를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파라의 추종자들조차 말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열정에 의해 행했다는 겁니다. 파라뿐만 아니라 비올레타(*니카노르 파라의 여동생, 작고)를 필두로 한 그의 동료들, 그의 선조격인 라블레주의자들은 모든 시대 시의 최고 야망 중 하나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바로 대중의 인내심에 엿을 먹이는 것이었죠.

  닥치는 대로 파라의 구절을 발췌해볼게요. "별들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됐다"라고 파라가 말했습니다. 성인군자의 말보다 일리가 있어요. "다른 말을 해보자면, 나는 당신들에게 영혼은 불멸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성인군자의 말보다 일리가 있네요. 이런 식으로 여기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여러분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건 파라는 조각가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비쥬얼 아티스트죠. 이런 명확한 설명은 완전히 쓸모없을지 몰라요. 파라는 또한 문예 비평가입니다. 칠레 문학사를 세 줄로 요약하기도 했죠. "위대한 네 명의 칠레 시인은 / 세 명이다 / 알론소 데 에르시야루벤 다리오."

  21세기 첫 10년 동안의 시는 하이브리드적인 시가 될 거예요. 소설이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끔찍하게 느린 속도로, 새로운 형태의 떨림을 향해 가고 있을 겁니다.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우리 아이들은
우연히 뭔가를 응시하겠죠. 의자에 파묻혀 자고 있는 시인의 작업 책상 위에서 말이에요. 의자 옆에는 낙타의 기생충을 먹고 사는 사막의 검은 새가 있고요. 말년의 어느 날, 브레통은 초현실주의가 지하로 숨을 필요성에 대해 말했어요. 도시나 도서관의 하수관 속으로 가라앉을 필요성에 대해 말이죠. 그러고 나서 다시는 그 주제에 대해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안주하고 있을 시간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91-93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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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1. 16:52


POST : Entre paréntesis

7월 이야기


이번 7월은 이상한 달이다. 어느 날 해변에 갔다가 삼십 대 정도의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예뻤다. 검은 색 비키니를 입고, 서서 책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 난 그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깔아둔 수건 위에 누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서 있었고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략 두 시간 동안 그녀는 서서 책을 읽었다. 바닷가쪽으로 갔지만 파도에 장딴지를 적시기만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이따금씩 책을 옆에 내려두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서 있었다. 어떨 때는 몸을 숙여 가방에서 1.5리터 펩시 병을 꺼내 마시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 단 한 차례도 무릎을 구부리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기 물건들을 챙겨 자리를 떴다. 같은 날, 조금 더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세 명의 여자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티팬티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무지하게 예쁜 아이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의 엉덩이에는 문신이 있었다. 그들은 활기차게 대화를 나눴고 물속에 들어가서는 매번 수영을 했다. 그러고 나서 자리로 돌아와 바닥에 깔아둔 매트 위에 드러누웠다. 요컨대, 일상적인 해변 풍경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나는 내 핸드폰이라고 생각했다가 곧 핸드폰 없이 지낸 지 꽤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들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으나 다음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카탈란어도 아니고 스페인어도 아니라는 점. 어쨌거나 목소리 톤은 끝장나게 심각했다. 이후 그들 중 두 명이 마치 좀비처럼 일어서서는 바위 쪽으로 걸어가는 걸 봤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수영복에 묻은 모래를 터는 양 행동했다. 그들은 바위쪽에 멈춰서더니 덩치가 크고 못생긴 한 남자와 이야기를 했다. 온몸에 털이 수북한 남자였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털이 많은 남자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녀들은 그 남자 앞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그가 하는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들은 나머지 친구 한 명이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돌아와 이전과 똑같이 행동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여자들은 누구일까? 나는 밤이 되어서야 자문해보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어떤 사람이 펩시를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곰 앞에 머리를 수그린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24-125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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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1. 14:56


POST : Entre paréntesis

악천후 속에서


오래 전 일이다. 어렸을 때 친구 한 명이 스페인어 현대 시 선집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영광스럽다기보다는 고통스럽게, 매년 주기적으로 출간되던 많은 책들 중 하나였다. 그 책은 칠레에서 만들어졌고 선집의 편집위원들 중 한 명은 가치 있는 시인이었다. 그 책의 특징은 최소한 절반 정도가 칠레 시로 구성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그 선집이 300페이지라면, 스페인 시가 30페이지, 아르헨티나 시가 20페이지, 멕시코 시가 20페이지, 우르과이 시가 5페이지, 니카라과이 시가 5페이지, 아마 페루 시는 10페이지 정도(그러나 마르틴 아단은 없었다), 콜롬비아 시는 3페이지, 에콰도르 시는 1페이지를 차지했다. 그렇게 150페이지 정도에 이르게 된다. 나머지 150여페이지에서는 칠레 시인들이 마음껏 풀을 뜯고 다녔다. 이 시 선집은 - 그 책의 이름이나 저자들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 당시 칠레 시가 자기 스스로 갖고 있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시인들은 가난했지만 시인이었다. 시인들은 국가의 지원으로 살아갔지만 여전히 시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 이후 칠레 시인들은 칠레의 올림푸스 산에서 내려왔다. (다섯 명의, 어쩌면 네 명일 수도 있고 세 명뿐일지도 모른는 위대한 시인들을 구하고 있는 올림푸스 산은, 반면에 다른 지역에서는 중요성이 거의 없다.) 일렬로 서서, 마지못해, 벌벌떨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옛날 집인 그 유명한 "카사 데 라스 베카스(*보조금의 집?)"에, 잘나가는 작가들이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 지켜보았다. 자기 스스로 소설가라는 둥, 여류 작가라는 둥, 신진 작가라는 둥 말하고 다니는 그런 작가들이 말이다. 최근에 그 집에 도착한 사람들은, 쉽게 추측할 수 있듯,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마술적 어휘로 방세를 대신했다. (영화인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설가들은 현대적이었고, 그러므로 현대 사회가 지켜봐야 하는 실질적인 거울이었다. 예외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 순간까지 시인들은 정성을 다해 묵시록적인 미학과 국가주의의 잔인함을 혼합시키는 작업을 했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 그들은 판매 순위의 명확함에 굴복하면서 시를 그만두었다. 칠레는 더이상 시의 나라가 아니다. 옛날에 나왔던 스페인어 현대 시 선집에 포함시킬 만한 현재 칠레 시인은 한 쌍도 떠올리기 힘들다. 당시엔 책의 절반 이상을 칠레 시인들이 독점했음에도. 지독한 무지, 툭하면 싸우는 편협함이 현재 칠레 소설에 남은 오직 하나의 유산이다. 시인들, 서른 살에서 쉰다섯 살 사이의 가난한 칠레 시인들은,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는 건지, 그곳에서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멍한 상태로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다른 지역에서는 악몽일 수도 있겠지만, 칠레에서는 좋은 점이다. 속임수와 핑계를 방편으로 획득한 문학의 위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시의 책무는 한 움큼의 먼지로 줄어들어버렸다. 지금 칠레 시인들은 다시 한 번 악천우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시를 읽을 수 있다. 칠레 시를 읽고 다시 또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썼던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몇몇은 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꽤 좋다는 것도. 그리고 그들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86-87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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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 18:12


POST : Entre paréntesis

베를린



얼마 전에 나는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낭독하기 위해 베를린에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소설 번역자와 친구 하인리히 폰 베렌베르크로부터 시작하여, 베를린 사람들의 환대는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밤낮으로 도시를 걸어다니면서 흥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두 가지 사건만 제외하면. 첫 번째 일이다. 주최측에선 나를 반제 호수 근처에 있는 맨션에서 숙박하게 했다. 반제 호수는 도시 외곽에 있다. 그곳은 1811년에 폰 클라이스트가 불행한 여인 헨리에테 포겔과 함께 자살한 곳이다. 그는 사실상 새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못생기고 생기 없는 새였다. 어둡고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자신의 날개를 펼 필요가 없는 그런 새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스무 살 때 폰 클라이스트를 읽은 이후부터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홈부르크 왕자]를 떠올려보았다. 작가와 자신의 아버지 사이의 싸움, 개인과 국가 사이의 싸움을 극화한 작품이었다. 아우스트랄 출판사의 선집으로 오래 전에 출간됐던 [미하엘 콜하스]도 떠올려보았다. 용기와, 용기의 쌍둥이 자매라고 할 수 있는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1806년에 출간된 [칠레의 지진]이라는 단편 소설도 생각났다. 우리는 여전히 그 소설에서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교훈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폰 클라이스트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최측에선 나에게 다른 작가들도 그 맨션에서 숙박한다고 말하고는 열정적인 것에 대한 문화적인 활동이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해가 지면,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 동유럽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 아프리카 사람들은 성으로 나가, 그 성에 있는 수많은 방들 중 어딘가에서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술을 마신다고 알려주었다. 처음 숙박하던 날 나는 그곳에 늦게 도착했다. 그들은 수도관처럼 생긴 일종의 우체통에다 방 열쇠를 넣어두었다. 방 번호가 적힌 메모지도 함께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 열쇠는 성에 접근할 수 있는 문 하나를 열 수 있었다. 과거에 종업원 방으로 사용된 곳의 문도 열 수 있었고 내 방 문도 열 수 있었다. 놀라웠다. 맨션엔 유령조차 없었다. 넓은 곳이었고, 홀에 깃발들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인리히는 그날 낮 동안 시대극이 촬영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깃발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홀에는 커다란 탁자가 있었고 또 다른 홀에는 켜지지 않는 낡은 철제 램프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그곳엔 모든 곳으로 향하는 복도와 벽 높은 곳까지 드리운 음영, 어느 곳에도 다다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마침내 내 방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창문이 열려 있고 벽에는 모기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제 호수의 모기라니, 몇 년 동안 본 적이 없는 해충이었다. 파나마 강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 자체로 이미 특이한 곳이기 때문에 파나마 강에서든 아마존 강에서든 모기를 만나는 것은 귀찮은 현상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당신의 방에 모기가 잔뜩 있는 걸 본다면 그건 굉장히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불만이 가득한 채로 스프레이 모기약을 얻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으나 호수 옆에 있는 그 넓은 멘션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들도 없었고 종업원들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 주에 거기서 숙박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발돋움 하여 소음을 내지 않으려 했고 방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모기를 잡았다. 마흔 번째 모기를 잡고 나서야 잡은 모기를 헤아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차마 창문을 열어보지는 못하고, 창문의 크리스탈 틈새로 코를 바싹 갖다댔다. 반제 호수의 가장자리에서, 폰 클라이스트의 유령이 어슴푸레 빛나는 모기 떼와 함께 춤추는 것이 보였다. 어쨌거나 사람은 어떤 상황에든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나는 잠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본 두 번째 이상한 일은 더욱 더 강렬한 것이다. 나는 친구와 함께 그녀의 차를 타고 비스마르크 거리로 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15미터가 채 못 되는 도로의 일부가 요렛 데 마르 거리로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18-120p), ANAG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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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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