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Bolaño!

POST : Entre paréntesis

블라네스의 봄


아래 글에 '독신 기계'라는 말이 나온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들뢰즈의 용어인 것 같은데 들뢰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므로 검색을 해보았고 그마나 링크된 글이 읽을 만했으나 이해가 안 되는 건 여전했으므로 아는 분 있으면 누가 설명좀 해주세요 뿌잉뿌잉. 어쨌거나 아래 글에서는 '봄'이 '독신 기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봄을 찬양하는 내용인 것 같기는 한데 구체적인 맥락이 잘 파악이 안 된다. 전반적으로... 망했다. -_-;



블라네스의 봄

블라네스에 봄이 온다.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심지어 마을 주민 중에서 가장 무뚝뚝한 사람에게까지 똑같이 오는 봄은, 웃음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시선을 연습한다. 마치 독신 기계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주로 이해할 수 없고 논쟁할 수 없는 기계이다. 그것은 마을에 도착한다. 어디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바다나 산에서 올 것이다. 백인과 흑인들이 함께 씨 뿌리며 열심히 일하는 야채 밭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서 오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랴.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고랑 가운데에서, 씨를 뿌리던 중간에 멈춘다. 주민들 중 가장 무뚝뚝한 사람이 파리로 가득한 모퉁이에서 문득 멈추는 것처럼. 봄이 도착한 것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 독신 기계는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
가장 불행한 아이들도 포함하여 - 더 잘 이해한다. 그게 전부다.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호안 데 사가라는 이렇게 말했다. 봄은 마을과 블라네스에 도착하여 블라네스 비야나 블라네스 수르 메르가 된다고. 우리의 작은 상상의 도시, 우리의 도시가 독신 기계의 변덕에 넘어갔다고. 봄은 어딘가에 도착했다. 비록 왜 출발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바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봄이 어딘가에 도착한 걸 보면 바다가 놀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약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하면(즉, 만약 사람들이 독신기계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면), 봄은 산트 호안 탑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 탑은 고딕 양식이며, 마을에서 영구적인 냉정함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마치 건물 구석구석에 사계절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블라네스에서, 봄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 - 호아킴 루이라의 내세관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나 브라바 해변의 새빨간 새우들이나 살아 있다는 것의 즐거움과 그것에 관해 전혀 논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 - 이 도착하기에 이상적인 입구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14-115p), ANAGRAMA



'Entre parént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탈란어로 번역된 [페르디두르케]  (2) 2011.11.24
칠레 문학  (2) 2011.11.24
회고록(Los libros de memorias)  (0) 2011.11.07
토메오(Tomeo)  (0) 2011.11.03
서점 주인(La Librera)  (2) 2011.10.28
top

posted at

2011. 11. 7. 17:32


POST : Entre paréntesis

회고록(Los libros de memorias)


모든 책 중에서 회고록이 가장 거짓된 책이다. 회고록 안에 있는 거짓은 의심 받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에 다다르고, 회고록의 저자들은 대개 자신을 정당화하기 바쁘다. 거품과 회고록은 함께 어울리기 마련이다. 허위와 회고록은 죽이 잘 맞다. (비록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나쁘게 말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회고록 저자들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인생에서 수치스러웠던 에피소드를 냉정하게 풀어놓는 저자들도 본 적이 없다. 마치 그들의 삶에서 수치스러웠던 일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 어떤 회고록 저자들도 자신의 비겁함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들은 용감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태풍의 눈 속을 통과하는 것처럼 살기 마련이다. 현대 문학사에 있어서 이런 회고록 저자들의 가장 최근의 예로서, 파블로 네루다의 [내 삶을 고백한다Confieso que he vivido]를 들 수 있다. (*한국에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반면 에르네스토 사바토의 최근 책 [죽기 전에Antes del fin](세이스 바랄 출판사)는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책이다. 이 책은 그가 침묵한 지 20년도 더 지난 후에 출간된 것이다. 사바토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단지 세 권의 장편소설만을 썼고 아마 더 이상은 소설을 쓰지 않을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를 포기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처음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책의 분량이다. 고작 188페이지이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다루기에는 분명 충분하지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신경쓰지 않고 책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우리 독자들은 188페이지가 충분한 분량이며 심지어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그는 불행이 존재하고 유토피아 역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유토피아에서 우리는 숨을 쉬거나 숨을 멈춘다. 이것이 사바토가 우리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었던 전부이다.  



ㅡ Roberto Bolaño, [Entre paréntesis](114p), ANAGRAMA


 

'Entre parént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레 문학  (2) 2011.11.24
블라네스의 봄  (0) 2011.11.07
토메오(Tomeo)  (0) 2011.11.03
서점 주인(La Librera)  (2) 2011.10.28
제빵사들(Los pasteleros)  (0) 2011.10.21
top

posted at

2011. 11. 7. 15:19


CONTENTS

¡Viva Bolaño!
BLOG main image

RSS 2.0Tattertools
공지
아카이브
최근 글 최근 댓글 최근 트랙백
카테고리 태그 구름사이트 링크